나는 장수생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장수생이다. 아직도 대학교에 재학 중이고, 졸업을 하기 전에 자격증을 취득해야, 그제 서야만 나는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 사회라는 커뮤니티에 입학하지 못한 장수생이다. 장수생으로 산다는 것은 한 편으로는 인생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산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때로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괄시를 받을 수도 있고, 코웃음을 치거나 비웃음을 입에 무는 사람들을 봐도 내가 선택한 길이니 그들의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그것이 장수생의 아픔이자, 서글픈 현실이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 앙드레 말로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라는 앙드레 말로의 말을 흰 종이 위에 나의 글씨로 크게 적어서 내가 앉아 있는 책상의 맞은편에 붙이고 공부를 한지도 몇 년간. 하지만 나는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도전을 하고 있었다. 오직 꿈을 닮아간다는 그 희망적인 격언을 믿고 매일 같이 심장 두근거리는 삶을 살았다.
새벽 3시 30분이면 나를 깨우는 알람 소리가 핸드폰에서 울렸다. 더 자고 싶고, 몸이 천근만근이어도 침대의 모서리를 부여잡으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방으로 가서 잠을 깨울 커피 마실 물을 끓이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 시작이었다. 새벽 3시 30분, 나의 숨소리, 함께 섞여 나오는 하품 소리 그리고 물이 끓어가고 있는 주전자의 소리. 이 둘을 제외하면 사방은 적막했다. 주전자에서 치치칙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끓기 시작하면 나는 머그잔에 담겨있던 일회용 커피믹스를 향해 물을 붓고 작은 스푼으로 휘휘 저으며 대충 그 날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 또 한 번 계획을 세웠다. 매일 같이 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믹스 커피의 단맛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지고 텁텁하고 쓴 뒷맛이 남겨질 때면 나는 책상에 앉아서 스탠드의 불을 켜고 묵묵히 내 할 일을 시작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 시작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면 내가 살아가는 하루의 길이가 더 길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새벽 3시 30분에 매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최소 6시간의 수면 시간은 확보하자는 처음의 목표와는 다르게 때로는 4시간 혹은 4시간 30분이 될 때도 있었고 어느 날은 3시간을 바듯이 잔 날도 있었다. 수면 시간 6시간은, 적어도 6시간을 자야지만, 꽤 오래 이어질 시험 준비 기간에 집중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계획에서였다. 그럼에도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는 주말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로 하고 잠을 줄여가며 그 날의 계획을 채워나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관건이었다. 왜냐하면, 나도 사람이기에 어느 순간이 되면 나도 해이해질 것이고, 그러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있기에, 이 긴장감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만의 또 다른 방법 하나를 추가했다. 그 방법은 다 쓴 볼펜과 다 쓴 연습장, 무지 노트 혹은 흰 복사지를 모아 놓는 것이었다. 내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끝까지 얼마나 잘 견뎌왔는지에 대한 척도가 될 그것들을 나는 하나씩, 하나씩 빈 상자에 모아놓았다.
새벽에 일어나면 영어 듣기 평가의 받아쓰기를 가장 먼저 시작했다. 듣기 평가의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받아쓰기를 하면 조금 더 효율적이고 좋았다. 듣기 평가 자체는 키 포인트가 될 수 있는 한 단어만 들어도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많이 있기에, 한 문제를 풀어도 그 문제에 나오는 모든 단어의 발음과 문장을 귀에 익히는 것에는 받아쓰기만 한 것이 없었다. 그렇게 받아쓰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훌쩍 지났다. 두어 시간 받아쓰기를 하고 나면 어느새, 여름이면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날이 밝아오면 언어 공부를 하든가, 수학 공부를 하든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했다. 보통 수학이 많이 약해서 수학에 집중을 했다. 한 문제를 갖고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푼 경우는 수도 없이 많았다.
수학 문제를 풀다 보면 풀리지 않고 제 자리에서 빙빙 돌 때가 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져서 뒤의 해설집을 살짝 참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한 번 해설집을 보고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그 습관이 생겨서 자주 들춰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수학 문제를 풀 때면, 뒤의 해설지를 잘라서 다른 곳으로 던져버리고 우직하게 문제지만 바라보고 풀었다. 문제가 바로 풀리지 않는 것도 당연히 있었다. 그것은 당연했다. 그럴 때면 잠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풀고, 또다시 풀고, 하는 방법으로 나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씩 해결을 해나갔다.
과학 과목에 접근하는 것도 특별한 법 없이 우직하게 하나하나 따라갔다. 가령, 생물에서 광합성을 설명하면, 그것을 이해하고 암기하려고 노력했다. 암기를 할 때면, 곰처럼 답답한 방법이지만 손으로 계속해서 적으면서 암기를 했다. 분명, 이 방법이 효율적이거나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나 역시 인정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험생들 사이에서 가장 좋다고 하는 기본서를 놓고 하얀 종이 위에 손으로 적어나갔다. 중요한 내용이 나오면 다른 색으로 한 번 더 체크를 하고, 다른 색으로 다시 써보며 그냥 우직하게 공부했다. 언젠가 내 필통을 보며 누군가가 왜 그렇게 펜이 많냐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해서 지금도 필통 가득 빵빵하게 펜을 채우고 다니고 있다.
진실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니 나는 진실되게 말하고 있지만, 안 믿는 사람도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수험생활을 시작했던 그 해 3월부터 11월까지 대략 200자루가 넘는 볼펜을 사용했다. 그리고 연습장도 엄청 사용했는데, 어떤 날에는 일반 연습장이라 불리는 무지 노트를 한 권이 넘게 사용한 날도 허다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무지 노트 연습장의 가격이 부담스러워 일반 A4 복사지에 적어가며 공부를 했다.
새벽 3시 30분, 새하얀 무지 노트의 투명한 덮개를 열고, 책상 첫 번째 서랍에서 새 볼펜 하나를 꺼내면 그 날의 내 학습 준비가 모두 끝났던 셈이었다. 매일 같이 반복을 하는 행동임에도 새하얀 무지 노트 연습장의 첫 페이지를 보는 기분은 설레었다. 그리고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서 연습 노트를 반으로 한 장, 한 장 정성 들여 접어가며 연습장의 맨 위에서부터 문제 풀이를 빼놓지 않고 적어나갔다.
참 열심히 했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많이 지쳤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다. 손의 곳곳에는 굳은살이 박이고 펜을 잡는 것이 아프기도 했다. 손으로 볼펜을 잡는 것이 힘이 들 때면 입으로라도 계속 소리 내서 읽으면서 공부했다.
화장실에 있는 순간도 아쉬워서 단어장을 따로 만들어서 화장실에서 넘기면서 암기를 했다. 반복해서 읽어 나가다 보면 마치 손으로 쓰면서 암기하는 듯 한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수학 학습지(문제지)는 무려 60권 가까이 풀었던 것 같다. 수없이 많이 풀었던 학습지는 시험이 끝나고 그냥 버리지 못해서 조그만 수레에 옮겨서 버려야 했으니까.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 만큼, 그 해에 나는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희망사항이었을 뿐, 원하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 해 성적이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노 베이스의 장수생이 '이 정도까지 올라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라고 이야기할 만큼 성적이 올랐다. 조금 무리해서 원서를 잘 쓰면 좋은 결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언어도 성적이 나쁘지 않았고, 수학도 문안했다, 영어는 거의 만점을 받았고, 과학도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성적이었을 뿐, 나와 같은 계열, 비슷한 과를 지망하는 학생들의 성적은 더 좋았다. 그러니까, 내가 노력했어도 그들에게 진 것이라는 사실만 남았다. 그 해, 입시 결과 최종 마무리는 합격을 앞두고 대기 번호 5번 안에 드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안타깝고 허탈하고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왔다. 상자 안에 있는 빈 볼펜들의 개수와 내 옆으로 쌓여있던 무지 노트와 수학 문제지 등이 어지럽게 널려져 더 슬펐다. 받아들여야 하는데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졌다는 것을 수긍하고 그 패배를 인정하는 것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시 공부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만둘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상당히 오래 걸렸다. 그만큼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최선을 다했으니까, 후회는 남지 않는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후회가 남지 않은 것 같았지만, 그다음 해 봄까지 나는 흔들렸으니까. 실패는 결국 내게 공손함을 가르쳤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인재들이 있고, 그 인재들 사이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더 열심히, 더 노력하라는 진실을 깨우쳐주었으니.
삶은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인생의 교훈을 가르친다. 배우는 모든 것에 대가가 없는 것은 없다. 나 역시도 그런 대가를 치르면서 인생을 배운 것이다. 그 해에 나는 마침내 내가 원하는 꿈에 닮아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인생의 교훈 하나를 가슴에 새겼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ing 중이다. 내일에 대한 생각을 하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 그것이 시험이든 아니든, 딱히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인생 그 자체에 대한 태도가 언제나 변함이 없다는 말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실패를 할 것인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실패의 경험은 어쩌면 실패라고 말할 수도 없는 커다란 실패를 수없이 되풀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꿋꿋하게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 오래전 그랬듯이, 한 번을 넘어지면 한 번을 다시 일어서고, 두 번을 넘으면 다시 두 번을 일어서면서. 우리의 삶에 있어서 실패가 없으면 성공도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나는 끊임없이 넘어지고 다치는 실패를 통해서, 성공을 희망하고 내일을 기다린다. 그것이 내가 오늘을 사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