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다른 존재들에 대한 배려

묻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

by 고대윤

어릴 적 내가 살던 시골에는 우시장이라 불리는 곳도 있었다. "소"를 사고파는 시장인데, 이 시장이 꽤 활성화되어 있었다. 또 우시장이 아니라 하더라도, 소를 장날에 끌고 나와서 거래를 하기도 했는데, 그 근처에는 소 이외에도 염소를 비롯해서 강아지, 닭까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소동을 벌이고는 했다. 그래서, 동물 병원은 자연스레 소를 거래하는 곳 옆에 작게 아주 작게 동네 구멍가게 정도의 크기로 존재했는데, 이 곳에서 장날에 강아지를 입양하는 분들은 간단하게 예방 주사를 맞혀서 데려가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대부분 그냥 데려가시는 쪽이 많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강아지는 반려 동물이 아니라 집을 지키거나 혹은 더 잔인하게 말하자면 그 전해의 가을이나 그 해 봄쯤에 입양해서 여름에 어느 정도 자라면 사라지고는 하는 존재였다. 어찌 되었든 강아지는 가족이나 함께 사는 존재로써의 의미는 아니었다고 봐야 옳을 것 같다. 하물며, 강아지가 그 정도인데 고양이는 오죽하랴. 시골에서 쥐를 잡는 존재로써의 고양이가 아니라면, 길고양이는 사람들에게 취급도 받지 못하는 것이 일쑤였고, 때로는 흉물 취급을 받는 것도 다반사였다.


결국, 동물병원의 주 역할은 강아지와 고양이(반려동물)의 건강을 돌봐주고 케어하는 목적보다 소를 주 대상으로 하였고, 소의 임신이나 수정에 대한 문제 해결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시골의 어른들은 동물 병원 혹은 수의사에 대한 인상을 딱 그 정도로만 갖고 있고,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그 인식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수의사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것도 최근이지만, 그것도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개 X알 따개"라고 비하하며 수의사를 한껏 낮춰 부르기도 하고, 비하하려는 것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논하는 것은 그야말로 "소 귀에 경 읽기"에 불과하다.


사람들에게는 이중적인 면이 다분히 존재한다. 그것을 알게 된 것도 오래지만, 나는 종종 동물 보호 단체의 이중적인 면에 대해서 접하게 되면서, 대한민국 사람들이 아직도 반려동물을 하나의 생명으로 존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가령, 동물보호단체로 유명하고 기부금도 꽤 많이 거둬들인 "더 케어"만 하더라도 앞에서와 다르게 뒤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유기견들을 안락사시킨 것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을 법하다.


굳이 "더 케어" 뿐이겠는가. 멀리 가지 않아도, 최근 나의 학교에서 벌어진 유튜브 고양이 사건만 보더라도 이 나라에서의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조금 부족하다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가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진을 찍으러 내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의외로 아주 간단하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심성을 알게 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길고양이나 유기견들에 대해 주민 혹은 시민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것을 보면 대충은 감이 온다. 주민들에게 있어서 길고양이가 발정이 나서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거나 혹은 싸움이 나는 등의 소란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개체들에 대해서 대응하는 태도를 보면 어느 정도는 드러난다고 보면 된다.


나는 아이들의 간식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데, 떠돌아다니는 개나 혹은 길고양이를 만날 때면 그 간식들을 꺼내서 주고는 한다. 한 동안 주인을 못 찾고 떠돌아다닌 개나 고양이들은 그 간식을 정신없이 먹게 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주자마자 간식이나 사료를 먹다가도 고개를 들어서 나를 쳐다보는 녀석들의 눈동자를 보면, 나의 용돈 일부를 덜어가며 간식을 챙기고 사료를 챙겨 다니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눈빛을 보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던 중, 나는 한 번 마을 주민과 부딪친 적이 있는데, 내가 주고 있는 간식을 보며 내게 쌍욕을 하면서 화를 내더라는. 문제는 내가 그 마을에 살고 있지 않기에 녀석들이 어느 정도로 주민들에게 피해를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지에서 왔고, 그 녀석들의 문제를 모르는 내게 그 정도로 욕을 할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굳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유독 그 동네는 텃세도 심하고, 사람들도 거칠었다. 다른 마음에서 겪지 못한 일들도 많이 겪었고,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도 유별났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그 정도인데,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동물에게는 오죽할까.



반면, 어느 곳에는 가보면 대체로 주민들의 얼굴도 편안하고 인심도 후하다. 골목골목마다 길고양이나 떠돌이 개를 위한 사료나 물들이 놓아져 있는 곳도 많고, 심지어는 "길고양이를 해치지 마세요."라고 써서 붙여놓은 곳도 있다. 이런 곳을 걷다 보면 나도 기분이 좋아지고, 그럼과 동시에 내가 이 분들보다 동물들에게 더 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조금의 미안함도 갖게 된다. 얼마 전, 친한 동생과 사진을 찍으러 가게 된 마을에 있는 예쁜 카페 앞에 길 친구 들을 위한 밥그릇과 물그릇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20200621-00281102.jpg 길 친구들을 위한 밥그릇과 물그릇


카페에 계시는 분들은 매장이 닫을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땀을 흘리며 지쳐하는 것을 보자 그분들의 시간을 쪼개서까지 우리에게 할애를 해주셨다. 사람에 대한 배려를 보더라도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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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계신 분들의 배려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짐작이 가던 카페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배려를 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정말 돌아오는 것 하나 없음을 알면서도 나와 함께 하는 반려동물이 아님에도 배려를 하고 케어를 한다는 것은 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사람들에게도 한 참이나 그 배려가 축적된 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느 곳에 가보면 정말 도시 자체가 사람들에서부터 편안하고 여유롭다. 그런 곳은 여지없이 길에서 사는 친구들에 대한 배려도 남다르다. 다른 곳에는 사람들에게도 뾰족하고 날카로운 사람들이 산다. 그런 곳은 또 대부분 그 날 선 감정들이 사람들에게도 돌아온다. 편견을 갖고 보지 않아도 될 것을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많이 겪다 보면 사람들에 대한 것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길고양이와 떠돌이 강아지들에게 무조건적으로 호의를 베풀라는 뜻은 아니다. 그들에게 입는 피해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사정도 충분히 있을 것을 감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같이 살아가야 할, 이 세상에서 함께 지내야 할 존재들이라면, 그들을 향한 날카로운 창보다는 따사로운 시선과 먼저 내미는 손이 훨씬 더 좋지 않을까.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따스함이 우선되면 좋겠다.


2020-07


충청남도 공주


글, 사진 고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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