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스승들

나는 길 위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운다.

by 고대윤

그를 처음 알 게 된 지도 벌써 15여 년이 훌쩍 지났다. 나는 그 당시 갓 서른을 넘긴 아직도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였고, 그는 막 지금쯤 내 나이가 된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이제 막 갓 출고한 나의 새 차를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에서 음주운전자가 주차를 하면서 자동차의 한쪽 면(범퍼, 운전석 휀더, 앞문, 뒷문)을 다 파손시키는 사고가 난 뒤였다.


이제 출고한 지, 갓 보름도 되지 않은 차를 무턱대로 파손된 곳 전체를 교환을 하자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교체를 한다고 해서 내 마음에 들도록 교체가 될 지도 의문이었고, 그 뒤에 차를 다시 입양 보낼 때 "사고차량"으로 판정되어 손해를 볼 것을 생각하면 속이 쓰렸다.


그때, 내게 그를 소개 준 사람은 내게 차를 판매한 분이었다. 그렇게 그와 나의 15여 년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그리고 잠시 다닌 대학 몇 학기들 등, 십몇 년의 교육 기간 동안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사람들 사이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양성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의 유기적 관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잘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 보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혹은 나보다 더 약한 사람에게 더 강해져서 이 사회의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화이트"컬러의 직종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무게감과 그들이 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무거운지에 대해서 그들은 입에 침을 튀기며 강조를 했고, 그들과 유사하게 성장하거나 비슷한 형태의 직종을 갖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한 것인지를 인지시키기 바빴다. 대신, 그들은 육체노동을 하는 "블루"컬러로 대변되는 분들의 노동의 가치를 지극히 낮게 평가하고 그것으로 육체노동의 가치를 한 순간에 평가절하시켰다.


학부모의 직업들로 아이들을 분류하거나, 아이들의 개성을 무시한 채 오직 성적만으로 일렬로 줄을 세운 채, 오직 그것들로 평가하는 그들의 교육은 구역질이 나게 만들었다. 무엇이 대한민국의 교육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대한민국의 "참 교육"에서 멀어졌다.





"그"만의 사연을 들었던 날, 내게는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그", 자신만의 이야기가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 남자라는 생각 외에, 한 집안의 가장으로 갖아야만 하는 남자의 삶에 대한 무게를 내게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인생에 있어서 "행복"이란 단어가 사람들에 따라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가치가 어떻게 또 평가될 수 있는지, "학교"에서 내게 가르치지 않은 혹은 서점에 널려있는 자신들의 삶을 자랑하기 위해 바쁜 그들의 책에서는 절대 찾을 수 있는 "삶" 속에 깊이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조각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내게 보여줬다.


그와 나에게 있어서, 그는 나에게 내 차를 수리해주는 분 이상의 가치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아직도 다른 이들과 똑같은 고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혹은 어떤 위치로 인식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에게서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삶의 비밀들을 전해 들었고, 그 비밀들을 통해서 조금씩 세상을 향해서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나의 "학교"는 나에게 특별한 것을 가르치지 못했지만, 나는 이렇게 우연히 "길"위애서 나의 "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진정한 "선생님"이라면, 누구나 다 가르칠 수 있는 보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분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했다.


2021-05-


"형님, 형님과 저의 인연을 조금 써도 될까요??"

"아~~!! 안 돼~~!! 책 안 팔려!!!"

"아직, 책 낼 주제도 되지 않는데요, 저도 주제 파악은 합니다. ㅎㅎ,형님은 저의 멘토시잖아요."


나는 그에게 나의 "멘토"라는 단어를 주저 없이 가져다 붙였다. 그만큼 그는 내가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데 큰 힘을 주었다. "멘토"라는 단어가 만약에 "화이트"컬러들에게만 붙일 수 있는 단어라면, 혹은 많은 지식을 쌓았다고 겉으로는 자신의 지적 능력을 자랑하는 배 나온 돼지들에게만 붙일 수 있는 단어라면 나는 절대로 단호하게 절대로 그 단어를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는 늘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그를 통해서 남자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남자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의 낡고 헤어지고 자동차 페인트가 가득 묻은 그의 바지를 비싸고 윤기가 흐르는 수백만원의 정장보다 더 가치있게 바라본다. 그리고 만약 기회가 닿는다면 그에게 그의 작업복을 언젠가는 꼭 한 벌을 물려 받고 싶다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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