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서리에 서서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by 고대윤

만개한 꽃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젊은 아가씨들이 떠오른다. 그들에게는 어떤 걱정도 보이지 않고, 자신만의 세상을 누리고 있는 남부러울 것 없는 자신감이 충만하다 못해 넘치는 그들의 향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만개한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만개한 꽃에는 아련함이나 슬픔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떨어진 꽃을 보고 있노라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삶이 갖는 유한성을 떠오르게도 하기도 하고, 삶의 꼭짓점을 지나 조금씩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을 대입시키기도 한다. 그 어떤 것이든 떨어지는 꽃에는 슬픔의 미(美)가 있다.




우울증이 한 참이나 깊을 무렵, 내가 죽어야 한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순간 중, 가장 젊은 순간에 죽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가장 젊은 날, 삶의 가장 찬란함을 갖고 있는 그 시기가 가장 아름다운 "소멸"과 오히려 더 가까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젊음은 오히려 그 반대의 "죽음"과 "소멸"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소멸"을 토대로 자신이 가장 아름다웠던 삶을 그대로 박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떨어진 꽃은 말라간다. 그리고 조각조각 부서져 산화되어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그 산화되는 모든 과정을 다 지켜보지 못하더라도, 떨어진 꽃이 어떻게 사라져 갈 것인가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그들의 마지막은 찬란하다.


내가 떨어진 꽃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 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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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꽃에게 끝없는 젊음만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보며 아름답다고 할까.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변함없는 화려함에 반대로 질릴지도 모른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는지 생각한다. 젊음 시절은 끝이 있어서 아름답다. 그 젊음의 끝에서 우리는 세상의 다른 모습과 마주하고, 삶의 이면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이면을 알게 될 때 즈음이면 젊음은 한참이나 멀어져 버리고, 이제는 우리도 소멸을 공손하게 기다리게 된다. 그 공손한 기다림과 그 기다림의 끝에 마주하는 소멸이 있어서 우리는 젊음을 회상하며 더 아쉬워하고, 그 젊음을 추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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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을 꿈꾼다. 그것이 남아있는 삶의 가장 젊은 날이어야 한다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음에도 또한 수긍을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내가 되었다. 나의 우울증은 늘 나를 가장 아름다운 죽음과 소멸을 꿈꾸게 만들었다. 마치, 젊은 날 사라져 간 수없이 아름답고 유명했던 사람들의 삶처럼, 죽음만이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죽음과 마주하는 시간을 통해서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번 전율한다. 만개한 꽃은 떨어짐이 있기에, 그리고 그 떨어짐 뒤에 소멸이 있기에, 그들의 아름다움은 빛난다. 모든 것이 아름다움만으로 가득 차, 그 어떤 소멸도 없다면, 세상은 오히려 너무 화려해서 단조롭고 지겨워질지도 모른다. 세상은 헤어짐이 있기에, 그리고 소멸이 있기에, 죽음이 있기에 오히려 더 아름다워진다.


꽃은 떨어져서 소멸되기에 그의 만개가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2021-05-11


사진, 글/ 윤


"삶이 모서리에 서서"는 "당신이라서 참 다행입니다"의 한 페이지입니다. 앞으로 모쪼록 부족한 사진과 글이라도 많이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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