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은 어른 아이의 성장 일기
뚜렷이 기억에 남아서 사라지지 않고 되풀이 되는 장면 혹은 인상을 "추억"이라고 한다면 그 정의에 합당하지 않을까?? 그리고 남아있는 그 기억을 좌우하는 것은 그 순간, 머물렀던 곳에서 나를 감싸고 있던 오감의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추억"은 우리의 일생에 가장 소중한 보물이지 않을까. 그렇게 정의하자면, "사진"은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추억"이라는 존재에 비해서는 그 힘이 여실히 부족하다.
왜냐하면,
"사진"속의 세상에는 사진이 찍혔을 때의 장면 말고는 그 어느 것도 없다.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하지만 나는 찍었던 사진들을 바라보며 눈을 감으면 내가 장면을 보며 셔터를 눌렀을 때의 내 주변을 둘러쌓고 있던 분위기, 소리, 냄새 그리고 뺨을 스쳐갔던 아주 가느다란 공기의 흐름까지도 기억하고 마주한다.
내가 세상과는 멀리 떨어져 나만의 시간 속에서 맴돌고 있었던 당시, 그 어떤 것도 나를 끄집어 낼 수 없었던 그 길고긴 어두운 통로 속에서 다시 빛을 찾아 나올 수 있도록 해준 것도 하나의 카메라와 한롤의 필름이었다.
그리고, 한 동안 나는 "사진"에 미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오직 그 안에서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기를 바랐다. 그리고, 어느 새 몸만 커져버린 "어른 아이"에서 진정한 "어른"이 되는 방법을 모색했다.
종종 사진을 바라보며 가만히 사진 속에 손을 대고 있으면, 사진을 통해서 전달되는 감정들을 읽을 수 있을 때가 있다. 그 사진을 찍었을 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뚜렷이 기억이 난다. 아픈 날도 있었고, 힘든 날도 수없이 많았다. 영하 20도가 넘는 날도 있었고, 기온이 35도가 넘는 날도 있었다. 그 시간의 틈들 속에서 나는 내가 찾고자 하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어떤 때는 손을 불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헉헉대며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넓은 듯 하지만, 작은 세상 속을, 끊어진 듯 하지만 연속되는 시간 속을 헤메고 다녔다.
"인간에 대한 애정 혹은 증오가 없으면 "Street(거리) 사진"을 찍을 수가 없습니다."
- 사진작가, "김홍희'
처음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을 때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마냥 나를 닮은 사물들과 시간들을 눈에 띄는대로 주어서 담았다. 혼자 서있는 자전거는 늘 혼자 거리를 다니는 나의 모습이었고, 어느 집 마당에 걸려있는
색색의 예쁜 수건들은 내가 돌아가고 싶은 옛날 내 집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나는 게걸스럽게 나와 비슷한 시간의 파편들을 모으며 사진을 찍고, 현상하고 기록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시선의 끝에 있는 존재들은 결국 "인간" 혹은 "인생", "삶"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아마도 "거리 사진"을 처음 찍을 무렵, 내 가슴 속에는 인간에 대한 "증오"만이 가득했었으리라. 나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들, 살아오면서 무던하게도 나를 할퀴고 지나가던 날카로운 삶의 가시들을 죽도록 싫어했으니까.
처음 사람에게 내 카메라가 향했을 때의 두근거림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내 일기장 속으로 가져온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나 역시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또한 나는 이기주의자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보다 못난 삶의 사람들을 찍고, 그들을 보며 내 삐뚫어진 가치관이 그리고 그 가치관으로 버텨왔던 내 삶의 현재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애써 보여주고 싶었다.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3년이 갔다. 사람들에게 왜 "거리 사진"을 찍느냐는 눈 먼 비판과 욕설도 수없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비판을 듣고, 욕설을 해대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 끊임없이 사람들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부자들에게는 부자들만의 삶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가난한 자들만의 삶이, 노숙자들에게는 노숙자들만의 삶이, 더불어 그들의 삶 속에서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아갈 무렵, 나는 내 삶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인간들을 "증오"하는 것이 아닌, 그 따스함이 넘치는 삶의 비린내마저도 향기롭게 느껴지는 그 곳 속의 구성원이 되고 싶어서 안달을 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야기들은 몇 년간을 타인과 나를 경계짓지 않으려 노력하며 가장 따스한 사람들 속으로 스며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했던 나의 기록들이다. 이 기록들을 꺼내놓기 위해서 수없이 망설였던 이유는, "거리 사진"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된 나에 대한 비판이나 욕설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혹시라도 내가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된,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해서도 혹시나 폐가 되지 않을까, 라는 섣부른 염려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능청스럽게 세상 속을 영유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뵙지 못했던 90이 넘으신 아버님과 웃으며 대화를 하고, 그 분의 일생을 내 카메라에 담는다. 열 번의 도전으로 "장인"의 반열에 오르신 양복점 사장님과 카톡을 통해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세상 속 그 어딘가에 아직도 내가 찍고 싶은 수없이 많은 전설들을 간직한 거리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늘 설레이고 두근거린다.
"사진"을 통해서 아주 조금씩 나를 치유해나갔고, 세상을 편견없이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 나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나보다 못난 사람은 단 한명도 찾을 수 없었다. 모두 다 자신들의 삶의 공식 속에서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뿐, 그 것을 타인이 그들의 삶에 대해서 평가할 수 없다는 것도 배웠다.
이제부터 나의 이야기이자, 나를 다시 가르친 거리의 이야기 그리고 어쩌면 이 사진을 보고 글을 읽는 당신의 이야기를 넘어선 아니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 즈음에는 나도, 당신도 아니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세상에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른이 되기 위해서 수없이 노력했던 "어른아이"의 성장일기를 그대가 함께 해 줄 것에 대해 미리 감사드린다.
2020-05-01
"그대라서 정말 다행입니다."
사진/글 ; 고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