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카메라...

그런 카메라로는 좋은 사진을 담을 수 없지!!!!

by 고대윤

사진을 찍자고는 마음을 먹었지만, 막막한 것은 그 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다시 뒤로 밀려나 그대로 또 어두운 구석에 주저앉아 있는 것은 절대 싫었다. 나의 아버지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내가 가지고 있는 실력이나 매력을 우선 한 번 평가 절하하고 시작하는 분이셨다.


"아, 니 까짓것이..." 혹은 "그런 것은 왜 해?? 돈 아깝게??" 등등(사실, 본인은 세상을 다 돈으로 치장하고 다녀서 현재는 집안 형편이 거덜이 나있을 정도지만), 우선 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쳐도 부정적인

소리부터 들려왔다. 내가 처음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요."라고 말을 건넸을 때도, "의대도 못 간 녀석이(나는 수의대니까) 뭐를 하겠다고, 쯧쯧쯧..."이라고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했다.


중고나라 등에서 중고 카메라의 가격을 살펴보았을 때, 나중에 알게 된 렌즈 교환식 카메라들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리고도 웬만한 정상적인 형태를 갖춘 녀석들도 구입할 경제적 여지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로모 LC-A+"라는 카메라를 장터에서 찾게 되었는데, 솔직히 이 녀석이 마음에 드는 녀석은 아니었다. 이유인즉슨, 한 쫌 모서리는 금이 가서 곧 부서질 것 같았고, 필름실은 조금 헐거웠으며 왠지 곧 모든 것이 부서져 내릴 것 같은 재개발을 기다리는 아파트 같은 분위기를 한 껏 내뿜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나는 당장 사진이 찍고 싶었고, 또 시점에서 뒤로 양보하면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아서 녀석의 가격을 보았는데, "Oh, my god!!" 그 카메라도 내가 갖고 있는 비상금보다 비쌌다. 하지만, 판매자 분과 녀석의 옆구리 상처 등, 내 상황 설명을 구차하게 설명하고 나서 나는 다음, 다음날 녀석이 담긴 상자를 내 품에 안게 되었다.




생각보다 녀석의 붕괴 정도는 괜찮았다. 강남 한복판에 입지 하고도 재개발만 기다리는 몇몇 아파트들보다는 상당히 양호해 보였다. 붕괴가 일어날 부분들도 내가 미리 살짝살짝 손을 보았다. 이제 사진을 찍으러 어디로 갈 것인가, 내 발걸음이 끄는 첫 번째 목적지는 어디인가를 정해서 떠나는 것뿐이었다.


가로등2.JPG 로모 LC-A+, 첫 번째 사진



나는 그리워했던 순서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타인에게는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하지만 나에게는 그리움의 종점처럼 느껴지던 유년 시절의 중간으로 숨어 들어갔다. 나의 첫 여행지는 내가 살던 아파트의 맞은편 골목이었고, 나는 그곳에서부터 더듬더듬 내 기억의 조각을 다시 맞춰가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인근에서, "누구야, 저녁 먹어라~~!!"라는 따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렇게 따스한 목소리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래서, 그래서였는지 나는 문득 낯선 아주머니의 목소리에도 목젖이 울컥거렸다.


나는 그 기억의 조각을 어떻게 하면 남길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그 골목에 있는 가로등을 찍었다. 해가 어느 정도 기울면 아주 먼 옛날 내가 살던 골목에도 들어오던 노란색 "나트륨 등"을 떠올릴 수 있을만한 딱 그런 친구였다. 왠지 가슴이 조금 따스해지는 것 같았다. 정작 내 가족들에게서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지만, 내가 듣고 싶던 그런 소리를 듣다 보니 비어있던 속이 따스한 국물로 채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번 셔터를 누르고 보니,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이곳, 저곳을 떠돌기 시작했다. 이제 막 겨울의 끝에서 아직은 살랑살랑 사람들의 옷을 여미게 하는 꽃샘추위가 있던 날이었다.




한 롤의 사진을 찍으면(사실, 필름을 한 롤씩 밖에 살 수 없었다.), 그 사진들 중 가슴에 남는 것, 혹은 날 닮은 녀석들은 나만의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블로그는 유명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 같은 보통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난 그곳을 나의 첫 일기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한 달, 두 달... 한 롤, 두 롤... 시간이 갈수록 사진은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08620003.JPG 내가 살았던 곳의 자전거, 홀로 있는 모습이 마치 내 모습 같아...


나의 글 때문이었을까, 그냥 사진 때문이었을까 혹은 한참 날씬하고 예뻤던 외모 덕분이었을까, 이웃들이 모이기 시작했다.(마지막은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어떤 중년 남자가 한 말이었다.) 여하튼, 나는 예전과는 달리 밝은 모습을 많이 되찾게 되었다. 모두 한 분, 한 분이 다 감사한 분이셨고, 그 감사함을 가득 담아 나는 늘 내 포스팅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에게 답글을 담아, 내 이름 끝에 "드립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그 마음을 누군가는 또 있는 그대로 받아주겠지, 라는 기대와 함께.




하지만, 그 역시 나만의 착각이었다. 나와 친한 척, 배려하는 척하던 중년 남성, 여성들은 자신들끼리 또 모여 나의 뒷 이야기를 하고, 내 사진을 잘근잘근 씹었으며,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와 내 카메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둥, 나는 내 얼굴을 너무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어필을 한다는 둥, 별별 이야기를 다 한다는 것이 내게도 전해졌다. 심지어는 내 블로그에서 중년의 돌싱 남녀가 만나 연애를 즐겼고, 함께 여행을 다니며, 나의 뒷이야기를 했다는 것도.


어릴 적부터 내재되어 있던 폭탄이 터져 오르는 순간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폭탄을 그 중년 남자는 건드려버렸다. 안 그래도 누군가에게 나의 폭력성의 대상이 필요할 무렵, 그는 나의 뇌관을 건드려 버렸다. 화가 치밀어 올랐고, 전화를 여러 번 했지만, 답이 없었다.


17360004.JPG 로모 LC-A+ 지하철 2호선


사진을 찍는 이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카메라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갖고 있는 10만 원도 되지 않는 싸구려 플라스틱 토이 카메라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자신들의 여유 있는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일까. 믿었던 만큼 배신감도 커졌고, 내 안의 화는 더 커졌다.


"프로는 사진을 자랑하고, 아마추어는 카메라를 자랑한다"는 말이 있다. 당신은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는 지금 당신의 수중에 있는 카메라이다. 당신과 함께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거침없이 일을 해 주고 즐거움을 주는 카메라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라는 것을 지금 이 순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 '사진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

사진작가 김홍희, 나는 사진이다.


유명한 사진작가의 말로 위로해보려고 해도, 섭섭한 마음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아주 먼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를 통해서 건네 온 말을 들으니, 내가 사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 같으니 조금만 더 투자를 해서 진정한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도였다고 했다. 나는 이미 나와 그의 사진이 갈 길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38930010.JPG 로모 LC-A+, 전주, 우리에게 안식이 있게 하소서.
49140012.JPG 로모 LC-A+, 우리 인생에 폐점은 없었으면 합니다.


90930028.JPG 8월 32일, 나는 여름의 끝과 마주하고 앉았다.


그런 이들이 비웃던 카메라는 시간이 갈수록 내 손에 더 익숙해져서 마음껏 사진을 찍기 편해졌다. 어떨 때는 내 의도대로 사진이 나오면 더 좋았지만, 내 의도대로 나오지 않아도 그 사진도 다 내 삶의 단편이고, 내 실수도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씩 마음도 편해졌다.


사진은 내게 느리게, 아주 느리지만 때로는 마음을 크게 흔드며 내 상처들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내 카메라를 비웃었던 자의식에 찌든 "사진작가"께서는 멋진 경치 앞에서 연출을 하는 사진을 찍을 때, 나는 땀내 나는 현장의 모습을 찍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가 어느 아침, 명소에 가서 자리다툼을 하고 있을 때, 대전 시내 한 구석을 더 뛰고, 더 훑어봤다. 그럼으로써 나는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과 만나고, 그 세상이 들려주는 또 다른 이야기들로 나의 현재를 다시 채워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전까지의 거짓으로 만들어진 환영이었다면, 그 이후의 나의 삶은 땀내 가득한 현실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추운 날에는 코를 훌쩍이고 얼어붙은 손과 발을 동동거리며 길을 걸었고, 더운 여름에는 다 식어서 미지근 함을 넘어선 물을 마시며 걸었다. 그리고 그 한 걸음, 한 걸음 속에 나만의 사진이 만들어졌다.


39540008.JPG 로모 LC-A+, 서울 부암동, 이탈리아는 이런 모습이 아닐까??




그토록 아끼고 수백롤의 필름을 채워주던 내 작은 카메라는 역시 블로그 이웃이던 한 놈이 훔쳐 도망가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 나는 사람에 대한 기대보다 사진에 더 큰 애정을 갖고 살았다. 역시, 사람에 내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은 한계가 있었고, 그 한계를 함께 하고자, 그 대상에게 더 애정을 쏟는 대신, 필름 한 롤, 한 롤을 더 구입하여 사진을 찍는 것에 더 몰입하였다.


이제는 나도 디지털카메라를 쓴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대략 8년여 전, 내게 카메라의 중요성을 피력하며 날 우스운 사람으로 만들었던 그 사람이 쓰던 카메라보다 더 오래된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도 이제 나는 그리 크게 그것에 여의치 않는다. 큰 카메라라도 상관없고, 구식 카메라여서 기능이 많이 저하된 카메라라도 상관없다. 어두운 곳에서 본 대상이 아름다우면 밝은 곳까지 따라가 찍으면 된다. 먼 곳에 대상이 있으면 내가 다가가 찍으면 된다. 모든 것은 다 마음먹기 따름이라는 것을 배운다.


나는 내 가슴의 작은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수없이 많이 뚫려 있던 작은 구멍들 중 많은 곳을 채워 넣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는 구멍들을 위해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도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필름 카메라든, 디지털카메라든 아니면 핸드폰 카메라든 그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사람의 모든 병을 치유하는 만병 치료제가 있다면, 내 병을 치료하는 만병 치료제는 카메라이다. 그렇게 내 옆에 낡던, 낡지 않던 녀석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내 사진은 누군가의 사진처럼 벽에 걸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앞으로 끊임없이 사진을 찍을 생각이다. 벽에 걸려서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사진이 아닌, 내 가슴속의 작은 구멍 하나를 채워주는, 그래서 나의 아픔을 시나브로 가라앉혀주는 나의 치료제로써 나는 계속해서 셔터를 누를 것이다.


2021년 9월 3일


사진/글 고대윤


몇 년 전이었을까, 나는 아버지가 그리 칭찬해마지 않는 대전의 유명한 사진작가께서 찍으신 사진을 액자에 담아 들고 왔을 때, 큰 웃음이 터졌습니다. 건방졌지만, 왠지 모르게 그 사진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지던 것은 제가 찍고 있는 제 나름의 사진이 제게는 최고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겠죠. 저는 길거리 사진가입니다. 어느 날을 거리의 모습을 담고 어떤 날은 거리의 삶을 찍고, 또 어떤 날은 삶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대상의 시간을 쫓기도 하지요. 어떤 이들은 제게 늘 한 가지로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왜 약자의 사진을 찍느냐??"라고요.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래서 그 약자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주셨죠?? 단 한 번이라도 차가운 음료수 혹은 뜨거운 잔술 한 번이라도 대접해드린 적 있습니까??"


저는 위선 또는 가식이 싫습니다. 그런 것들로 인해서 제 삶이 무너져 내렸었거든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가 저를 낮추고 다가갈수록, 그분들도 제게 나무라거나 화를 내시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죠. 저는 그분들을 존경합니다. 만약, 네게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닥쳤을 때, 저는 그분들처럼 그렇게 강한 생활력으로 버틸 수 있을까요??


거리 사진을 찍은 지 5년 여가 돼가지만, 한 번도 마찰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먼저 인사하고, 먼저 웃으며 다가서는 제게 화를 내신 분들도 없고요. 찍은 사진을 꼭 보내달라며 제게 주소와 핸드폰 번호를 남기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매년 비슷한 절기, 비슷한 장소를 다니며 삼각대를 설치하며 서로에게 욕을 하고, 애써 없던 모델도 만들어서 찍은 사진들과 어떤 사진이 더 진솔한 사진일까요??


그 대답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문득, 제 로모 카메라가 생각나는 날입니다.

조금 뒤에 있을 "외과" 시간에는 녀석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 적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읽으신 모든 님들 부디 건강한 오후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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