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연에 대하여
자네를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보내야 했지만 티베트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집에 그만 도둑이 들어
필름이 들어있던 카메라를 가방째 들고 갔어. 니콘 카메라를 잃고도 '어? 그 안에 필름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든 건 자네가 사진을 보내달라고 간곡히 청을 했기 때문일 걸세. 자넨 군대 주소를 적어 주려다 그 주소는 머지않아 바뀔 수도 있을 거라 말하며 고향집 주소를 적어 줬었지. 영원치 바뀌지 않을 주소라고 말했어. 영원히 바뀌지 않을 주소라는 말에 난 울컥했던 것도 같아. 나도 그런 주소를 갖고 싶었네. 내 집이 아니라면 거짓말처럼 버젓한 주소라도 말이지.
-이병률, 끌림 캉허우밍 중에서...
작가 이병률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의 책 몇 권을 읽게 되면서 나는 그가 문득 아니 끝이 없이 부러워졌다. 그는 무엇인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슬픔이 가득한 것 같았지만, 나에게 그의 삶은 동화 같은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는 비록 슬픔으로 기억될지라도, 한 없이 많은 삶들과 인연을 맺었고, 주소가 없다 하더라도 수많은 곳을 자신의 집처럼 생각했으니 그 어찌 부럽지 않았겠는가.
나는 그의 인생의 단 한 조각 속에만 들어가서 그 시간을 꿈처럼 이라도 겪어보고 싶었다.
차트랑가를 만난 해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똑같이 지내는 내 삶에 어느 해에는 무슨 일, 어떤 해에는 또 어느 일, 이렇게 기억에 새겨진 적은 없었기에. 하지만, 차트랑가를 만난 날은 뚜렷이 기억이 난다.
5월 31일
나는 그와 5월 31일, 충청남도 서천군 홍원면에서 만났다.
내가 평상시 다니던 영역 밖으로 조금 멀리 나왔던 그날, 영역 밖으로 멀리 나온 만큼 설레기도 했지만, 상당히 낯설었던 그날이 떠오른다. 나는 흰색 스니커즈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흰색 면티셔츠 위에 흰색 리넨 셔츠를 입고 있었다. 갑자기 조금 이른 더위 때문에 나는 무엇인가를 해보기도 전에 지쳤고,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에 잠시 서성이던 중, 그(오른쪽, 차트랑가)와 그의 친구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사람의 사진(Portrait)을 잘 찍지 않는다. 모델이 되어주는 이도 낯설고 더 낯설고 힘든 것은 그들 앞에서 내가 조금 더 프로처럼 보이며 멋진 샷을 날려야만 할 것 같다는 부담감 때문일까. 나는 캔디드 형식의 사진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이상하게도 나를 이끌었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일까.
나는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Hey!! Is your camera?? looks good!!!"
"Haha!!! yes, Although it's old, it's my precious camera.kiki!!"
말이 잠시 끊겼다. 그는 나를 따스하고 장난스럽게 응시했다. 나 또한 질 수 없었다. 처음 보는 그와 그의 친구가 수십 년을 함께 한 내 친구들 같아서...
"Bro... May I take your pictures?? Uhm... Cheese, Ok??"
내 엉터리 영어를 듣고 있던 그는 역시 재밌다는 듯 이, "오케이"로 답했고, 나는 그들의 사진을 연속해서 몇 컷을 찍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차트랑가"라는 것과 고향을 떠나온지 대략 4년 쯤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의 고국은 캄보디아라고 전했다. 그의 사진을 전해주기 위해서 그의 이메일을 내 수첩에 꾹꾹 눌러적었다.
그에게 꼭 사진을 보내줄게, 나의 친구라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날, 친구 차트랑가와의 만남 덕분이었는지, 내가 찍고자 하는 장면들과 마주했다.
집에 돌아와서 사진을 컴퓨터에 옮긴 후, 그에게 사진을 보내주려고 이메일 주소를 적고 사진을 첨부했는데, 없는 주소란다. 헐... 이 친구가 나에게 거짓말을 했을 리도 없고, 아마도 우리가 소통하는 동안에 글자 한 두자가 잘못되었으리라. 난감했다. 더 난감했던 이유는 내가 이미 이병률 작가의 "끌림"을 읽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사진을 꼭 전해주고 싶었다.
나는 사진을 현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잘 알고 지내는 현상소에 가서 현상을 해서, 마음을 담은 목재 액자에다가 넣었다. 그리고 짧게나마 글도 적었다.
그리고 딱 일주일 뒤, 나는 그곳으로 다시 향했다. 다시 도착한 그곳에 그들은 없었다. 사방이 적막한 것이 그날과는 전혀 달랐다. 난감했다. 하지만 이렇게 된 바에야, 끝까지 전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들을 기다렸다. 주변을 서성이기도 하고, 차에서 드러누워 한 참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가 있었나, 그 집에서 나는 인기척이 들렸다. 그들은 아니었다. 그 집의 주인분이셨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저 이 친구들 이곳에 사는 친구들 맞나요??"
"어~!! 맞아요!!!! 그런데 웬 사진이에요???"
"아, 제가 친구들을 찍어서 전해주기로 했었는데, 이메일이 안 맞는다고 해서 직접 가지고 왔습니다."
"저런, 정말 웬일이야~~!! 근데 어떡하나!! 오늘은 우리 주인 양반하고 꽤 멀리 나간다고 했는데...
아마 기다려도 한 참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요. 그냥 내가 전해줄게요. 많이 좋아하겠네. 내가 고마워요."
"그럼, 어머님 꼭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꼭 좀요, "
"염려 말아요, 내가 뭐라도 해주고 싶었었는데. 이렇게 총각(??)이 대신해줘서 내가 고마워요. 사는 곳이 어딘지는 몰라도 꽤 먼 곳 같은데, 조심히 가요."
그렇게 차트랑가와 친구의 사진은 내 손에서 어머님의 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 사진이 꼭 차트랑가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아니, 전달되었다고 믿는다.
그 이후, 나는 또 한 참을 앓았다. 또 죽으려고 했다. 시간이 쉴 새 없이 흐르고 가끔 그들이 떠올랐지만 그들을 찾지 못했다. 보고도 싶었지만, 더 멋지게 사진도 찍어주고 싶었지만, 나는 나를 일으키지 못했다. 가끔, 나는 그래서 내 친구를 향한 편지를 쓴다. 부치지도 못할 편지, 받지도 못할 편지.
하지만, 누구보다 오래된 친구처럼 나의 친구 차트랑가에게 편지를 쓴다.
안녕, 차트랑가...
잘 지내나?? 내가 어머님께 전해달라고 부탁했던 사진과 편지는 잘 받았지??
내 손으로 직접 주고 싶었다네.
사실, 친구와의 만남처럼 내 인생에 있어서 동화 같은 일은 없었거든.
처음 만나는 자네가 참 좋았네.
나는 자네의 미소에서 이미 한 동안 닫아놓았던 내 가슴의 문을 활짝 열었던 것 같아.
그리고 자네는 내게도 동화같은 인연을 선물해준 거야.
종종 자네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할 때가 있어.
그럴 때면 자네 사진을 꺼내보며 어딨는지 묻는다네, 닭살 돋지?? 키키
고국으로 돌아갔던, 아니면 여기 한국에 그대로 있건...
부디 건강히 잘 있게나.
그리고, 나와 자네가 만든 사진을 보면, 아주 가끔 아주 가끔 내가 떠오르면 좋겠네.
자네는 내 인생에 가장 짦은 인연이었지만, 가장 인상깊은 친구였어.
자네와의 만남에 감사하네.
자네의 친구로부터...
받을 사람이 없는 글은 때로는 사람을 숙연하게 만든다.
어쩌면 내가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면, 나는 그에게 그 어떤 글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그가 잘 지내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 테니까.
한 번으로 짧게 끝나는 인연은 때로는 인생에 있어서 더 긴 여운을 남긴다.
나는 그런 여운이 내게도 찾아올지 몰랐다.
이병률 작가가 사진을 전해주지 못했다는 것에 감사했다.
내게도 그보다 더 동화 같은 인연이 함께 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한다.
2021년 9월 11일
글/사진 고대윤
차트랑가, 잘 지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