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내 의지와는달랐던...나의도시...
눈이 무겁게 내리는 밤이면 종종 잠에서 깨어난다.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나만 짐작할 수 있는 그들이 쌓이는 소리. 분명 조금 이른 시간 잠이 들었으니까, 지금은 아침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주위가 어둑한 것을 보니, 또 다른 낮을 잡아먹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내가 먹는 약의 정체니까.
그런 식으로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것, 그것이 병원에서 하는 일과, 내가 먹는 약이 내게 작용하는 방법이디.
보통 사람과의 삶과 달라지면 눈을 뜨고 있는 시간 동안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진다. 어째 또 눈을 감고 깊은 수마 속으로 빠져들지 모르기 때문에, 처리해야 할 일들은 빨리 쳐리하고 다시 약을 먹고 침대에 누우면 난 다시 가슴 아팠던 과거가 등장하는 꿈속으로 스며들어가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그것이 내가 학기가 아닌 방학 중에 하는 일이다.
나의 도시는 달콤한 적이 없다. 단 헌 번도. 나는 이 도시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성장할 때 좋은 기억을 가진 적이 하나도 없다.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6학년 때, 성적이 너무 좋으니, 시골인 고향에서 그대로 살기는 아깝다는 주변 생각에 이주를 하게 된 것이 달콤한 나의 도시에 정착하게 된 계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 등살이 세다는 도시 아이들과 친해지지도 못했다. 나는 공부를 해야 하는 시간에 내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늘 불안에 떨었다. 단 한 해, 두 해 사이 나는 현명하고 성적이 좋은 아이에서 평범한 아이를 지나쳐 삐딱한 아이로까지 한 번에 내달렸다. 나보다 도시에서 몇 년 일찍 태어났다는 아이들이 만든 이너써클 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였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왜 고향에서처럼 성적을 내지 못하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냥, 내가 모든 것과 싸워 이겨서 다시 고향에서처럼 최고의 우등생의 자리를 되찾기를 바라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나는 두 가지를 모두 다 할 힘이 없었다. 때로는 무섭고 두려웠으며, 언젠가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증오스러웠다. 나의 청소년기는 나의 의지와는 달리 타인의 의지에 의해 지나가버렸다. 멋진 일이었다.
누군가의 삶, 한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시절들이 타인의 의지에 의해 지나가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멋진 일이었다. 아버지의 한쪽과 동급생 및 선배들과의 마찰에 의해 나는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만들어버렸다.
대학은 꼭 서울로 가고 싶었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 그래도 나와 조금이라도 친하고 나를 일부라도 인정해주는 친구들이 있는 그곳으로. 나는 재수를 하게 됐다. 서울은 큰 도시라는 것을 떠나 내가 무엇을 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아름다운 도시였다. 씀쓸한 입안의 느낌이 가득한 날에도 나를 따스하게 감싸준다고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몇 년 동안 책과 거리를 두고 헤매었으니까, 단 몇 개월 사이에 좋은 성적이 나올리는 없었다. 그래도 그 해 12월 나는 딱 서울의 중위권 대학교에 갈 수 있는 성적을 받았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다시 나의 아름다운 돟시에 주저앉게 되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나의 도시, 그리고 나의 학교.
모든 것이 아름답기만 한 나의 도시에서 나는 또 주저앉아서 헤매고 있었다. 더 이상 그 어떤 것에 대해서 원하는 것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이 아름다운 도시는 왜 내게 그리 상처만 안겨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주하고 또 저주하고, 사고를 치고 또 사고를 쳐도 이곳은 안온하게 나를 품에 끌어안고 있었다. 이 도시는 마치 나의 부모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듯했다.
이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죽어라고 공부를 했다. 서울이 아니라도 좋았다. 우선 내가 살아남아야 했다. 시골 어디 멀찌감치라도 괜찮았다. 다만, 부모님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도피를 인정해 줄 만한 과를 찾아야 했다. 의대, 한의대, 치의대 등등 모든 과에 입학하기 위해서 공부를 했다. 인간이기를 포함한 상태였지만,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서 달리고 또 달렸다. 입에서 지쳐 힘든 거품이 나오고, 몇 번을 의자 위에서 까무러치고, 쓰러지기를 여러 번 한 끝에 나는 이곳을 탈출하는가 했지만, 나는 다시 이 달콤한 도시의 아름다운 모교의 품에 다시 안겼다.
이제는 죽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악연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본가는 이 도시의 근교에 있는 작은 베드타운으로 이주를 했다. 그나마 차를 갖고 집과 이 아름다운 도시를 출퇴근하는 것이 감사할 정도였다.
해가 지고,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가야 하는 시간이 되면,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나는 오늘도 이 아름답고 달콤한 도시에서 하루를 또 지냈다. 나는 이 도시를 떠날 수 없고, 영원히 이곳에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것 또한 싫다. 그곳은 달콤하고 따스하며 나를 품어주는 나의 도시만큼, 못지않은 나의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때로 나는 이 모든 달콤함과 행복함이 전생의 내 덕으로 이뤄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덕으로 인하여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계속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음악을 크게도 틀어본다. 괜시리 초조해지고 답답해지는 감정을 추스릴 수 있는 그 어떤 행동을 해본다. 하지만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멀어져서 행복한 우리 집으로 가는 것은 분명 목이 갑갑해지는 일이다. 그냥 혼자 자위할 뿐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니까. 이게 최선의 행복이다.
신호를 앞에 두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만난다. 버스 안의 삶의 얼굴들을 면면히 살펴본다. 그들 중에도 웃는 사람들은 몇 일까... 하지만, 이런 것은 멍청한 일이다. 사람은 다 자기의 감정과 표정을 숨기며 살아간다. 그것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어쩌면 그들은 내가 퇴근할 때 자유로이 쓸 수 있다는 자동차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를 부러워할 수도 있다. 그런 부러움이라면 나도 당신들과의 삶의 자유와 기꺼이 맞 바꿀 의도가 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다 듣다 보면 아무도 그런 거대한 음모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다.
내 앞의 도로에 길이 트였다. 오른쪽 발의 엑셀레이터에 힘을 주기 시작한다. 이대로 곧장 세상 어디론가 달아나 볼까, 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이 든다. 이렇게 아름답고 달콤한 나의 도시가 주는 그 호의를 너무 몰라주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나는 돌아가는 동안, 내내 어디서든 길을 벗어날 궁리를 한다.
달콤한 나의 도시에 온 지, 30여 년이 지났다. 30여 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일까지 마쳐야 할 보고서, 그 주 금요일에 있을 시험, 그다음 주에 있을...'
늘 나의 도시와는 다른 일들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 감사하다. 만약, 이 달콤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떠나게 된다면, 아마도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달콤한 도시에 잡혀버렸으므로.
이대로 나는 밤의 무게를 느끼러 가면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또 새벽에 눈이 떠지면 사락사락 눈이 쌓이는 그 모습에 반해 멍하니 바라보며 한쪽 입가로 미소를 지으면 된다. 브라보 달콤한 나의 도시...
2021-09-04
사진, 글 고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