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춤추듯 걷는 사람들
스무 살 초반, 방황에 방황을 이어가고 있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세계는 나의 작은 우주였다.
우연히, "상실의 시대"를 건네받고 난 뒤, 나는 단 하루 만에 그 두꺼운 책을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그의 글과 나의 현실과 겹치는 교집합을 찾아서 동그라미를 쳤다. 교집합 이외에도 자꾸만 잡아끄는 그의 문체와 한 편으로는 치기 어린 그리고 한 편으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 같아 바닥 없이 떨어지는 그 특유만의 정서가 좋아서, 이미 발매가 되었던 책들을 다시 사서 모았다.
어떤 녀석은 헌책방에서, 어떤 녀석은 아예 출판을 했던 출판사에 문의를 해서 새책으로 모을 수 있는 것들은 새책으로 그리고 중고 밖에 모을 수 없는 녀석들은 중고로 모으는 동안 그나마 몇만 원 통장에 모여있던 돈들마저도 다 사라졌지만, 대신 내 책꽂이에는 "무라카미"의 분위기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냥 좋았다, 마냥 좋았다. "왜 좋았느냐??"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좋은 것에 이유가 있겠느냐."라고 말할 만큼 좋았다.
한 권, 한 권 천천히 읽어나갔다. 한 번에 다 읽기도 아까워서(내 마지막 비상금까지 다 털어서 산 소중한 책이기에) 하루에 일정 부분만 읽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부터 시작된 나의 "하루키"에 대한 뜨거운 애정은 "1983 핀볼"을 지나 "양을 쫓는 모험" , "댄스, 댄스, 댄스"를 지나 다시 "상실의 시대"를 거챠 그 뒤로 이어지는 책들까지 쭉 이어졌다.
꺾인 20대의 대부분은 "하루키"가 채워줬다.
세월이 흘렀다. 나는 시험에서 몇 번의 고배를 마셨고, 그렇지 않아도 쓴 세월의 맛을 더불어 내 속 안에 들이부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일들도 많았고, 해도 안 되는 것도 많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하루키"의 책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하루키"가 마냥 싫어졌다기보다, "하루키"가 말하던 그 허무의 힘을 내가 스스로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맞지 않을까. 할 수도 없고, 해도 안 되는 일들에 대한 분노와 그로 인해 생기는 허무함을 나를 무한한 어둠으로 빠뜨려 버렸다.
그렇게 20대 속 나의 "하루키"와 나는 서서히 이별을 했다.
어느 날, 서재에 있는 책꽂이에 먼지를 뿌옇게 입은 채로 꽂혀 있는 많은 "하루키"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하루키"들 중에서 하나를 뽑아서 거실에 쭈그리고 앉아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나와 재회한 추억의 "하루키"는 왜 그리 늦게 왔냐고 아쉬워하지도 않았고, 다시 찾아줘서 고맙다고도 하지 않았다. 평생 함께 하는 친구라면 그러하듯이 아무 말도 없었다.
"하루키"의 소설 중에 "댄스, 댄스, 댄스"라는 책이 있다. "춤추듯이 걸으라."는 표현은 왜 그리고 난해했던지, 누구와 함께, 그러니까 "여자"와 함께 춤을 추라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의미인지 알 수 없이 늘 아리송했던 그 시절. 어쩌면 책 표지의 붉은 색과 "댄스"라는 단어가 주는 오묘하고도 유혹스런 분위기 (가령, 댄스장 혹은 무도회장이라는 단어로 떠올려지는)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그 의미를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내 앞으로 한 사람이 지나쳐 지나갈 때까지.
그는 분명 보통 사람보다 키가 작았다. 행색은 남루하고,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담배 냄새가 지나갈 때까지 온 사방에 진동을 하는 것도 같았다.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노숙자 혹은 부랑자라고도 불릴 그의 모습과는 반대로 그의 걸음은 힘차고 어떤 리듬이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의 걸음을 보며...
"댄스, 댄스, 댄스!!!!"
그렇게 멀어지는 그의 이름을 끝까지 보고, 주변을 둘러보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다 춤을 추는 듯 보였다. 떨어진 물을 닦아내시는 선생님도 리듬을 타듯, 마치 발레를 하듯 보였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가 소중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댄스,댄스,댄스"
나는 항상 사회의 화려한 면, 멋진 면에서만 많은 것들을 찾으려 했다. 다른 면에 있는 것들,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어떤 대상의 가치를 무시했다. 그것은 나의 잘못이었고, 나의 어설픈 오만이었다.
내 주위가 내게 심어놓은 어리석고 섣부른 오만과 시선에 나는 항상 괴로워했었는지도 모른다.
삶은 자신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런 것은 타인에게 중요하지 않다. 만약, 자신의 삶에 그대로 흘러들어 가, 그 리듬에 따라 살아간다면 그것은 그대로 "댄스(춤)"이 되갰지.
나는 몰랐다. 결코 몰랐다.
뭐든지 좋아야 했다.
최고급 아파트, 최고급 자동차, 최고급... 뭐든지 좋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춤을 출 수 있는 "필수 조건"이 아니었다. 큰 "충분조건" 중에 하나는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미미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문득 느끼는 순간이었다.
큰 호흡, 한 번!!
그 뒤부터는 모든 사람들의 발걸음이, 아니 과장은 하지 말자, 대부분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 나름의 리듬과 무게와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당장에는 아무렇지도 않겠지, 힘들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당신은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다. '나는 그 리듬의 의미조차 모르고 있었거든.'
리듬을 맞춰 걷다 보면, 당신의 삶의 리듬에 맡겨 걷다 보면, 언젠가는 더 행복해질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당신은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다. 겨울에는 따스한 커피 한잔이면 충분했을 수도 있고, 뜨거운 여름에는 차가운 생수 한 병이면 행복과 고마움이 넘쳤을 것이다. 지금처럼만 걷자.
더 큰 보폭도, 더 잦고 빠른 보폭도 필요 없다. 우리 지금 여기서 걷고 있는 이 보폭대로, 그렇게 걷자.
그렇게 춤추듯이 걷자. "댄스, 댄스, 댄스"
2021년 9월 22
글/사진 고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