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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Sep 29. 2021

여행의 길이

(삶) 끝끝내 알게 되는 결론

"여행"을  소재로 한 글이나 책들은 너무도 많아서 손에 꼽을 수가 없다. 가령,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불리는 이병률 작가부터 "여행의 이유"를 집필한 소설가 김영하, 그리고 국내에서도 꽤 유명했던 해외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까지, "여행"을 대상으로 한 수없이 많은 책들이 평생 동안 여행만을 한다는 집시들처럼 이 세상을 떠다니고 있다.


"여행"이라고 하면 무턱대고 설레는 것은 아마 우리가 인생(人生)이라 부르는 모든 과정도 다 "여행"과 비슷하지 않아서일까. 인생에 가장 닮아있는 인류의 행동, "여행"은 그래서 가장 편안했던 그 예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리라.




"여행"이라 하면 우선 보통 며칠이 걸리는 여행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적어도 자동차나 열차 혹은 비행기로 몇 시간 이상을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이동하여, 집이라 불리는 일상의 거처와는 다른 전혀 낯선 장소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평상시 늘 바라보는 시선의 끝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기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의 길이"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가장 짧은 길이로 가정을 한다면, 이동 수단에 오르는 순간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두 발로 일상의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까지가 아닐까.


조금 더 길게 본다면, 우선 "여행"의 목적지를 선택하고, 숙소와 이동 수단 등을 결정하면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그렇게 계획된 "여행"은 비교적 "길이"가 상당한 여행이 될 것이다.




나의 "여행"은 비교적 짧다. 아니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의 "여행"이 어떻게 "여행"이냐고 비웃을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의 기준에서 보면 나의 "여행"은 "여행"이 될 수가 없다. 하지만, 내게는 항상 모두 최고의 여행이자 쉼이다.


대전 터미널, "여행"이라 말하면, 우선 얼마나 멀리 갈 것인가부터 생각하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행"을 결정하는 첫 번째 요인은 목적지이다. 얼마만큼 먼 곳으로 이동을 하는가에 따라 왠지 스스로의 "여행"이 만족스러움을 가져올 것인지를 판단한다.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동거리"와

"만족감"은 정비례를 이룬다. 그 거리에 맞는 교통수단과 숙소의 선택은 "여행"의 설렘을 끌어올린다. 마음에 드는 경로와 집을 대신할 편안한 쉘터의 선택을 점차 욕구를 자극한다. 그리고 목적지의 도착은 '내가 여행을 왔구나!!'라는 현실적 인식이 폭발하며, 그 순간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린다. 어쩌면 바로 이 점이 "여행의 목적"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너무 큰 안도가 돌아올 때는 위협이 된다. '아, 아직 여행에서 출발하기 전이었으면.' 혹은'아직 하루만 더 남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재충전을 하고 다시 삶의 그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마저 남길 확률도 충분히 높으니까 말이다.




나의 여행은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비교적 아주 짧거니와 거의 내가 생활하는 곳의 대부분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너무 좋아 보이는데 가보지 못했던 곳 혹은 한 번 가봤는데 다시 가보고 싶은 곳들이 내 여행의 목적지다.


카메라의 배터리를 완충하고, 여분의 배터리를 꼭 챙기는 일에서부터 내 여행은 시작이 된다.(나의 카메라는 실제로 너무 나이가 들어서 이제 배터리도 가물가물하시다.) 그리고 여행하다가 혹시 모를 도시의 사막이나

시골의 정글에 빠져서 식수를 구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깨끗한 물이 가득 찬 물병을 가방에 챙겨 넣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렇게 어느 정도 여행 준비가 끝났으면, 자동차의 트렁크에서 오래 걸어도 제일 편안한 신발로 갈아 신고 진정한 여행을 시작한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여행 루틴은 학교에서 출발하여 대전의 새로운 중심가인 둔산동 일대를 구경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것이다. 차로 가면 단 몇 분 안에 도착하고 되돌아올 수 있는 곳이지만, 걸음으로 따지면 만보가 훨씬 넘는 꽤 긴 여정이다. 나는 학교의 후문의 게이트를 나서면서부터 음악을 듣고 주변을 살피면서 이 여행을 향유한다. 여행의 장점은 돈도 별로 들지 않고,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씩 할수록 건강해진다.


나만의 여행은 출발 혹은 이륙되었고, 기분은 점점 상승 곡선을 그린다. 그렇게 조금 걷다 보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는 나를 추월해갔다. 그에게서는 큰 음악소리가 났다.


금요일 오후의 가장 좋은 점은 이렇게 저절로 높아져 가는 흥겨움이다. 이 것은 나와 관련된 누군가에게 눈치를 봐가며 억지로 얻어내는 "휴가"를 위한 "여행"과는 전혀 다르다. 그냥 금요일의 일과를 끝내고 길을 걸으면 저절로 흥이 나온다. 나는 따라가며 그 흥을 또 더 크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를 고심한다. 내가 조금 더 증폭을 시켜 뒤로 전달을 하면 뒤의 또 누군가는 더 큰 소리로 뒤로 전달할 것이다. 그렇게 더 크게 전달이 되다 보면 멀리 떨어진 비싼 해외의 여행지에서의 느낌보다 더 한 삶의 느긋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여행은 때때로 전혀 모르는 사람과 동행할 때도 있다.
때때로는 휴게소에서 쉬며 무엇인가를 충전해야 하기도 하는 법


이제 어느 정도 여행의 궤도에 올라섰다. 그때부터 면 여행은 이제 술술 풀린다. 귀를 통해서 들려오는 음악은 내 자동차에서 듣는 음악에 못지않다. 애써 비싼 이어폰과 비싼 스피커를 찾는 고급 취향의 사람들과는 별개로 나는 음악을 들을 때, 흥만 나면 된다. 여행은 여기서 또 절약된다.


여행이 목적지를 향해 갈 때 만난 곳과 다시 돌아올 때 만난 모습은 확연히 달라져있다. 이렇게 다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 해도 행볻한 일이다.


중간 지점의 오아시스에서 한 번 정도 점검을 한다. 음료를 마시고 주변을 둘러본다. 바람도 살살 불고 너무나도 좋다.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사람들은 여행을 하는 것이리라.




버스, 그리고 정류장


"여행"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힘겨울 때도 있었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많지 않은가??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말이다. 종종 저는 이 "여행"을 빨리 마치고 싶어서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여행"에서는 아무런 답이 필요하지 않았고, 또 여행의 목적조차도 그리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면서 내 꿈을 다시 연결시키고 이렇듯 짧은 여행을 자주 하면서 삶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거창한 여행만이 전부가 아니라, 당사자의 주변 속에 숨겨져 있는 작고도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큰 여행의 소득이 아닐는지.


면세점은 아니지만 지나가면서 눈 쇼핑도 한다.


무엇이든지 거창하게만 만들려고 했던 나의 성향은 그대로 짐이 되어 돌아왔다. 작은 것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들은 애써 대차게 외면해버렸다.


'근데... 그런 것이 뭐??'

혹은

'별 것도 아닌 것들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삶의 앞과 뒤를 점점 더 단절시켜갔다.


오늘은 이곳에서, 또 다음 주에는 다른 곳에서 같은 시간대의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느끼고 그것을 사진으로 담고, 연결시키다 보면 각자의 여행지에서 자신만의 여행을 영위하는 사람들과 내 여행이 왜 다른지를 어렴풋이 알게도 된다. 그것이 바로 "여행"의 목적이다.




겉으로 빛나는 모든 것들이 다 값어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을 나이가 되어간다. 다 "여행"이 준 선물이다.


이제 다시 살아가는 나만의 고유한 피난처로 돌아갈 시간이 온다. 사실, 아까 이미 "여행"의 전반부를 넘어서서 벌써 돌아섰어야 되는데, 취해있다 보니 이렇게 더 연장을 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여행"에서 아쉬움을 담아서 돌아오는 것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일견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돌아가는 길에는 봤던 모습들도 조금 다른 모습들을 보고 싶다. 시간의 흐름은 우리가 바라보는 것을 매우 달라지게 만들기에.


사람이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불빛조차 아름다운 여행


하늘이 내려준 환한 조명이 내려가고, 사람이 어렵사리 만들어 낸 인위적인 불빛이 거리를 물든다. 물론 자연적인 것이 좋지만, 우리가 만든 불빛 아래에서도 새로운 느낌을 받으며 돌아오기에는 충분히 아름답다.


나는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그 모습을 한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왜 거리에 스며들게 되었을까...'


시간만 나면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다. 그만큼 나는 거리를 "여행"하는 것을 사랑한다.

이 "여행"의 장점은 그 끝이 아쉬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 다시 얼른 삶으로 돌아가 나의 시간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살고자 하는 무엇인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길이"는 언제나 짧다. 그래서 아쉬움도 있지만, 돌아올 때는 더 큰 무엇인가를 안고 온다.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현재 타고 있는 기차의 몇 호칸과 좌석 번호가 맞지 않나 초조해하지 않아도, 언제쯤 휴게소가 나올까 걱정하지 않아도, 꽤 많은 것을 이 짧은 "여행"에서 우리는 얻을 수 있다.




한없이 즐기는 "여행"도 좋지만, 가진 것을 계속 쌓아나가야 하는 "여행"도 좋다. 마치 기나긴 "학술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처럼, "여행"의 조건이 조금 변색되어도 아름답다.


"여행"의 끝길에 자신들만의 "학술여행"에 빠져버린 두 남녀를 만난다.


금요일 그들의 여행은 시작되지 않을 것일까??


두 남녀의 여행은 책 속에서만 진행 중인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는 것일까?? "여행"의 목적과 그 길이는 다양하기에, 그들만의 "여행"에 뿌듯한 마음이다.


이제, 내가 출발했던 "후문"게이트로 돌아왔다. 이제는 "일탈의 여행"을 끊고, 나만의 전쟁처로 돌아갈 차비를 한다. 오늘 또 다른 삶들의 모습을 만났다. 그리고 그 "짧은 여행"에서 너무 행복했다. 여행 경비라고는 가만히 그늘에서 한가로이 마셨던 물의 값이 전부다. 그것도 집에서 가져온...


"여행"을 했더니, 피곤하다. 하지만 이 "여행"과 달리 나는 또 "여행"을 떠날 것이다.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그리고 좋을 수도 있고, 때로는 기대보다 힘들고 아플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내딛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람이 "여행"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2021-09-29


글/ 사진 고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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