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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Oct 01. 2021

수많은 "김양"누나들은
어디로 갔을까...

(공간) 다방과 카페, 공간의 재해석

아직 어릴 적, 그러니까 내 나이가 국민학교(나는 국민학교 세대이다.)에 입학하기 전에는 내가 사는 지방도시에는 "카페"라는 공간은 없었다. 어른들이 차를 마신다고 하면 가이라 하면 보통 두 군데, 식사와 함께 마시면

"레스토랑"이라고 하는 조금은 값나가는 밥집이요, "차"만 마신다고 하면 "다방"이라 불리는 공간이었다.


보통 어른들은 "다방"을 하루에도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나 같은 아이들에게는 "다방"은 금기시된 장소였다.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신들이 당당했다면, 왜 "다방"에 아이들이 출입하는 것을 금기시했을까, 생각해보면 역시나 어른들만의 무엇이 그곳에서 행해지지 않았을까??라는 어렴풋한 추측밖에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발전도 빨리 했지만, 그에 맞게 문화도 대충 엉성하게 커나가면서 보통 사람들과 어떤 문화가 뚜렷하게 맞춰지면서 성장이 되지 않았다. 가령, 커피도 그러한 대상들 중에 하나라서 "커피"라는 음료를 떠올릴 때, 자연스레 "다방"이라는 장소로 연결이 되어 어른이라는 인간들은 파벨 로프의 개처럼 다들 "다방"으로 자연스레 발을 옮기고는 했다.


조정래 작가가 쓴 소설 "태백산맥"에서 참 재밌는 대목들이 나온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커피", "인", "문화인", "다방"이라는 단어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아주 단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가령, "이제는 입에 인이 박혀서 커피를 안 마시면 못 살겠다니까..."라거나 "입에 인이 박히시다니 역시 읍장님은 문화인이십니다.". "자자, 다방으로 가시지요."라는 대목들이 그것이다.

(이 것은 정확한 대목은 아니다. 현재 내게 태백산맥은 없고 20여 년 전에 봤던 기억으로 쓰는 것이니까)




그 대목이 나오는 시점에서부터 대한민국은 채 6~70년도 되지 않는 시점에서 참 많은 변화를 겪었다. 나도 그 뚜렷한 변화를 겪으며 자라온 세대이고, 그래서 적응을 하며 살아가기가 힘든 사람이다. 


내가 "다방"에 처음 갔던 것은 아마도 7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누군가와 약속이 있어서 "다방"에를 가야 했는데, 나를 다시 집에 데려다 놓을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서 내가 어떻게 따라가게 된 형술이었다. 어른들이 모이고, 다들 커피를 주문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눈만 뎅구르르 굴리며 사방을 관찰하고 있었다.


밖보다 조금 더 어두운 실내에 웬 아저씨들이 그렇게 많은지, 도대체 이 인간들은 무엇을 하는 인간들인가, 라는 생각으로 잠시 복잡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잠시 내 앞에 놓인 잔에는 흔히 말하는 "프리마"를 몇 스푼 물에 탄 커피 잔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쌍화차", 혹은 "누군가"는 커피를 주문했다. 최근에 카페에서도 "커피"의 종류가 다양하듯이, 그 시절에도 "커피"에는 여러 가지 조합이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 가장 대표적인 조합은 "2-3-3" 포메이션으로 커피 2스푼, 프림 3스푼, 설탕 3스푼의 비교적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입맛을 추구하는 대중들의 "커피" 조합이었다고 하면, "커피"를 조금 마셔봤다고 하는 위에서 언급한 문화인들은 "2-2-2" 포메이션으로 프림 1스푼, 설탕 1스푼이 줄어든 조합이었다. 이 모든 조합들은 특이하게도 주문 뒤 주방에서 다 제조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똑같은 잔에 시커먼 물을 똑같이 따라 나와서, 예쁜 누나가 어른들에게 호칭을 한 번씩 불러주며 "프림"하고 "설탕"을 따로 스푼으로 퍼서 옮겨주는 것이 아닌가.


어렸던 나의 눈에, 왜 저 예쁜 누나는 저런 행동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에서부터 별별 생각이 다 들 때쯤이면 카운터에서 전화를 받은 아줌마가 "김양아, 어디 어디 커피 몇 잔 배달이다~!!."라고 소리치면, 누나들은 또

어딘가로 귀신같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가당치도 않았던 7살 꼬마의 머릿속에는 나중에 나이가 들면 나도 예쁜 누나가 섰어주는 이곳에 '꼭 다시 와야지.'라는 생각을 했으나, 그 희망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내가 예쁘다고 생각했던 "김양"누나가 있었던 "다방"이라는 장소는 시간이 흐를수록 순식간에 사라지지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방"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려고 해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내가 자연스레 "다방"에 가도 될 나이가 되었을 무렵에는 "CaFe"라 불리는 새로운 장소들이 하루가 머다 하고 생기기 시작했다. 그곳은 예전의 "다방"보다 밝고, 내가 항상 의아하게 생각하던 "김양" 누나들의 존재는 없었으며 "2-3-3"이나 "2-2-2" 포메이션이 사라지고 대신 "블랙"커피라는 단어가 처음 입 밖으로 자연스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처럼 "2-3-3"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작고 원통형의 그릇에 담긴 "프림"과

기다란 종이봉지에 담긴 "설탕"이 제공되어서 스스로의 입맛에 맞춰 먹었다.


평상시에는 거의 가지 않던 카페는 보통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친구 녀석들이(지금은 비록 친구가 아니라 멀어졌지만) 왔을 때, 주말 저녁 무렵에 그런 곳으로 모여들었다. 때는, 밀레니엄을 앞두고 있었지만 흡연도 다 "카페"에서 가능했던지라, 우리는 단 돈 1,500~2,000원 사이의 블랙커피를 주문하고 그 안에서 외부인들이 본다면 "카페"에서 불이 났을 정도라고 오해할 정도로 담배를 피워되며 사회를 저주하고, 교육을 비판했으며, 가장 중요한 여자에 대해서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눴다.


물론, 나는 "2-3-3"이었고, 한양대를 다니던 모임의 리더 격이던 "김 XX"군은 늘 "블랙"이었다. 그는 내게 촌스럽다고 말했고, 나는 그에게 "XX, 인생 살아가는 것도 써서 죽겠는데, 지랄하고 커피까지 쓴 것을 먹어야겠냐??"며 되묻는 것으로 언제나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그토록, 한 번 만나면 반가워마지 않던 친구들과도 다 단절하고 공부를 하는 사이, 세상은 또 변화를 마지않았다.




"카페" 브랜드들이 이제 개인이 하던 "카페"들을 몰아내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 이름도 아름다워서 "우리 안에 천사가 사는 (땡땡 인 어스)", 왠지 찹쌀떡을 연상시키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XX쿠치", 이제는 지구 상의 벌레도 아닌 외계에서 온 벌레가 커피를 주는 "별 벌레" 등등 수도 없는 브랜드가 생겨났다.


어른들이 "에헴"이라고 점잖쳐 빼며 지네들만 드나들던 어두운 시절도 끝이 나버렸다. 이제는 아이들도 가서 음료를 마시고, 학생들은 공부까지 한다. 믿어지시는가?? 다른 말로 표현해보면 "다방"에서 "김양"누나들이 보는 앞에서 책을 보고 있는 풍경이??


대부분의 커피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별 벌레, 혹은 별다방
어린이들이 와서 음료를 마신다고 뭐라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공부를 하는 아름다운 여학생도 있다.


이런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어릴 적 "다방"에 있었던 "김양"누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 시절에는 나는 누나들을 보면서 "예쁘다" 혹은 "옷을 잘 입는다"라는 생각을 했었을 뿐인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어른"들이라 불렸던 검은 짐승들에게는 "김양"누나들이 그냥 "누나"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시간이 또 흐른다. 이제는 "커피"의 상품권을 폰으로도 주고받는다. 가끔은 나도 받고, 나도 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결제하는 곳 앞에서 상품권을 잘 사용하지 못해서 쭈뼛쭈뼛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고, 폰을 열어서 어디를 보여줘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러면, 결제를 하는 분들이 "아이고, 이 촌놈의 노땅 모지라~~!"라고 하며 결제를 도와준다. 나는 사실 이 순간도 엄청나게 싫다. 공짜로 생겨서 좋기는 한데, 왠지 좀 모지란 사람, 그리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아니면

이제 확실히 아저씨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또한, 가격도 비싸다. 커피 한 잔에 몇 천 원씩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밥 한 끼를 생각한다. 이 돈이면 학교 구내식당에서 돈가스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시커먼 국물 가격이 아깝다. 하지만, 이 정도는 먹어야지 현대

대한민국의 국민 생활 정도인지도 모른다.




수없이 많던 "다방"이 사라졌다. 내 어릴 적에는 마주하는 경쟁 "다방"도 많았는데, 그런 것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1,500원에 너는 촌스럽네, 아니냐에 욕까지 붙여가며 웃으며 다투던 나의 청춘 속 "CaFe"도 사라졌다.

이제는 담배를 자랑스레 꺼내서 "Heavy smoker"인 것을 자랑이나 하며 지포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대신, "아메리카노"라고 새롭게 이름이 바뀐 "블랙커피"에 얼음을 첨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쟁반에 담아서 어딘가 조용한 구석진 자리를 찾아 "책"을 봐야지만 더 어울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사진을 찍다 보니 끊겼던 많은 것들을 다시 맞추고 이어나가게 되었다. 이제는 절교한 친구들이지만 가끔 녀석들이 생각이 나기도 하고, 그 옛날 정말 내가 흠모하던 "김양" 누나들이 궁금하기도 하다. 종종 "별 다방"이라는 곳에서 차도 마시고 책도 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그 옛 모습들이 그립다.


2021-10-01


글/사진 고대윤


"참~~!! 어렸었지!!, 늘 지루했지~~!!, 시간아 흘러라, 흘러~~!! 그땐 그랬지!!!!"
-카니발, 그땐 그랬지 中


여러분들도 그러신 날이 있겠죠?? 지나간 시간들이 모래처럼 막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오늘 제가 그런 것 같습니다.

제 어릴 적 모습부터 가장 즐거웠던 시절까지도 막 쏟아져 내려옵니다.

이런 날이 다시 될 수 없기에, 인생이 소중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렇기에 기억이 소중한 것이겠지요.

사진을 다시 찍으며 잊어버렸던 기억들이 종종 이렇게  제 머릿속에서 쏟아져서 흐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 낡은 카메라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넵니다.

이제 완연한 가을 날씨, 부디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한 연휴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고대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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