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분을 결정하는
찰나의 색.

(시간) 새벽, 그 삶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by 고대윤

새벽이 중요한 이유는 그날의 여러 가지 들을 좌우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령, 새벽부터 비가 오면 나 같은 사람은 기분이 굉장히 낮아져서 그날을 보내기가 힘들어지기도 하고, 대중교통을 운전하시는 분들에게도 새벽은 많은 것들에 영향을 좌우한다.


나?? 나는 두말할 것도 없다. 우선, 아침잠이 많은 내게 새벽은 절대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오래전, 새벽이라는, 그리고 아침이라는 단어도 싫었는데, 우울증과 공황장애 그리고 불면증을 겪으면서 이제는 수면의 질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이 사는 것인지 아니면 살아져서 살아가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게 돼버리면서, 새벽은 내게 있어서 최악의 순간이 되어버렸다.




부지런히 살 수 있는 것을 복이다. 어떤 사람들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일을 시작하거나 그 장면을 통해서 밖으로 보이는 그들의 겉모습만을 보며 그들의 삶이 턱없이 힘들고 고달프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열심히 단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부끄러운 자기변명일 뿐이다. 새벽을 사는 사랍들의 몸에서는 일반인들과 다른 빛이 풍긴다. 그것은 아마도 해가 떠 있는 낮만을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뚜렷한 차이점일 것이다.


그만큼, 새벽은 특유의 힘과 빛이 있다. 하루 중 가장 짧은 두 찰나의 순간은 정반대의 느낌을 갖고 있지만, 반면에 사람의 가슴에 가장 묵직한 힘을 주는 특별한 순간들이다. 그래서 나는 새벽이 싫지만 가끔 일찍 일어나 새벽이라는 색 속으로 들어가고, 내가 사랑하는 노을의 빛 속에서 헤엄을 치는 것이다.




새벽의 색을 보기에는 이를수록 좋지만, 겁이 많은 나는 때로는 너무 이른 새벽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한 번 거리에, 도심이나 부도심에 갈수록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한낮 바보 같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미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새벽의 색 속에 동화되어 매일을 시작했고, 시작하기를 완료했거나, 아니면 반대로 하루를 완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그 시간에 하루를 완료를 했다고 해서 그들이 절대로 근면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근면하다 못해서 존경스러우며, 그 존경스러움은 그들의 오늘이 그 시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에 숨겨져 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나는 하지 않는다. 아니할 수가 없다. 때로는 수면제에 의한 두통으로 매일 오전까지도 일어나지 못하고 힘겨워할 때도 많으니까. 하지만, 나태해질 때쯤이면 이제 한 번 새벽의 색 속에 동화될 필요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새벽 출사를 결심한다.




코로나 시대에 가장 힘든 것은 안 사도 되는 물건들을 종종 생각보다 비싸게 구입해야만 한다는 것에 있다. 가령, 마스크라든가 하는. 대전의 중앙로로 들어가는 큰 길가에 이르자 갑자기 내가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하~'

나의 건망증이란...


큰 대로변에 위치한 백화점 주차장 출입구에 잠시 주차를 하고 마스크를 구입한다. 마스크 구입비 1,200원.

현금으로 계산하면 좋으련만 내 호주머니 안에 있는 돈은 십 원짜리까지 다 합쳐서...

'음... 730원'

이럴 때는 잽싸게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카드로 결제를 한다. 적은 금액을 구입하면서 카드로 결제하는 것이 미안하다. 이런 미안함은 어디서부터 키워왔는지 참, 잘한다...


낮에는 사람이 붐비는 이곳도 새벽에는 한가하다.


이제 한 두 집에 불이 켜졌다. 저 불들은 밤새 켜져 있던 것일까.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주변을 둘러본다. 근처에 주차장이 보인다. 아직 곤히 잠들어 있는 친구가 보인다.

저 친구는 새벽형은 아닌 것 같고, 만약 전 날 열심히 일했다면 아직 곤히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DSC_7094.jpg 새벽, 너는 아직 잠에 취해있다.


이제부터 나는 잠시 진짜 새벽 속으로 들어간다. 나보다 훨씬 일찍 잠을 깨시는 분들이 게시는 곳으로 나는 잠시 스며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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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새벽 시장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아직 적막한 그 곳에 둥둥 떠다니는 묘한 기분과 색을, 나는 그 기분과 색을 사랑한다.


DSC_7103.jpg 대전의 랜드마크 중 하나가 시장과 대비되어서 보인다. 자 이제 빨리 움직이자.


이제 나는 진짜 새벽 속으로 스며들어가 본다. 그곳에는 지난번에 봤던 그분들이 또 계실까. 계시겠지, 계실 것이다. 자 이제 나는 그분들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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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대전역 앞에 매일 새벽에만 잠깐 열리는 변개시장, 이 분들은 늘 한결 같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눈,비에도


번개시장은 봐도 봐도 신기하다. 내가 아무리 일찍 도착을 해도, 내가 갈 무렵에는 언제나 파장 시간이다. 이분들의 새벽의 색은 무엇일까?? 새벽의 의미는 무엇일까?? 부모, 자식 아니면 그 무엇...

문득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궁금증이 나를 또다시 뛰게 한다.




대전역 앞 광장에서 장터가 열리는 동안, KTX 첫 차를 타고 출근을 할 사람들이 모여든다. 과연 얼마나 될까??라고 궁금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열차가 서울에 도착을 할 때쯤이면 좌석이 모두 다 차있다면, 나도 다른 예상을 한 당신도 다 틀린 것이다. 우리는 아직 새벽의 색에 물들지 못했다.


그들의 뒤를 따라 나도 에스컬레이터를 오른다. 그들과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지금 생활의 최전선으로 나가는 것이고, 반면 나는 비겁하게 그들의 에너지를 받으러 온 것이다. 그들의 색은 사람들이 점차 역 안으로 모여들수록 뚜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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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발 서울행 KTX 첫 차를 타러 가는 사람들, 나도 그들에 은근 묻혔다.


그들의 삶은 숨 가쁘다. 그리고 여유 없어 보인다. 하지만 숨 가쁘고 여유 없어 보이는 것이 삶의 질이나, 행복의 농도에 비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중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음에, 행복해 할 수도 있다. 하고 있을 때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되어서 주저앉아 있을 때는 그 소중한 감정들조차 알 수 없다. 비록, 그들이 지금 당장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에서 멀리 두고 있을지라도, 나는 그들의 발걸음 하나, 하나와 손짓 하나, 하나가 다 소중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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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많은 것들이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 또한 알고 있다.


조금 후, 세상이 밝아지면 밤의 어두웠던 면모가 드러난다. 밤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존재들은 새벽의 색과는 전혀 다른 것들일 테니까.


물건들 뿐만이 아니겠지.


내게 '자~~!! 이제 이 것을 보고 말을 해봐!"라며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이 내게 보여주길 원하는 모습들도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미 새벽은 물러가버리고, 우리는 이제 "아침"이라는 뒤섞여 버린 시간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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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삶의 시작이다.


새벽의 색은 뚜렷하다.

그 전날의 시간들이 고통스러웠더라 하더라도, 오늘을 이끌어나갈 자신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또 다음을 향해서 한 발씩 나아간다.

그리고 그 한 발자국의 시작은 모두 "새벽"에서 비롯되었고, 우리는 그 "새벽"을 맞이하기 위해 오늘을 이겨내고 다시 또 숨을 쉰다.


"새벽"은 힘들지만 이겨낼 수 있고, 아프지만 달콤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색이 가득 찬 시간이자 공간이다.


"새벽"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2021-09-26


글, 사진 고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