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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Oct 18. 2021

약 10cm, 서민들의 위로

(삶) 왜 우리는 한숨을 내뿜는가

오늘은 문득 담배를 많이 태우고 싶다는 유혹이 드는 날이다. 그런 날들이 있다. 금연을 한지도 이십 년이 다 되어가지만, 무던히도 한 대를 태우고 싶은 순간, 날 말이다. 단순히 담배에 대한 유혹이 고파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게 있어서 무엇인가가 가슴을 꽉 막고 있거나, 아니면 결핍이 된 듯 한 그런 순간이다.


담배를 태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끝무렵이었던가?? 아니면 2학년 무렵이었던가?? 하여간 그 어스무리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담배를 태우기 시작한 것은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좀 불량해, 그러니까 나를 좀 건들지 말아주겠니??' 라는 식의 글러먹은 마음과 내가 어울리던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꼭 필요했던 불량함과 건들거림에 하나의 포인트를 더 주기 위한 바람이었다.


나는 "헤비 스모커"여서 한두 시간 안에 담배 한 갑을 다 태우기도 하고, 담배를 태우면서 걸어 다니는 것도 꽤 좋아했다. 하지만, 그런 것도 모두 다 잠시, 나는 나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시험에 도전을 하게 되었고, 그토록 좋아하는 담배까지 함께 끊어버렸다.





담배는 사람과 닮아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지나친 것일까. 나는 담배를 볼 때마다 혹은 담배를 태울 때마다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고는 했다. 그리고 담배를 태우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대충은 감이 오고는 했다. 


새로 구입한 담뱃갑에서 첫 담배를 꺼낼 때, 녀석들은 뻣뻣한 채로 곧게 날을 세우고 있는 당당한 모습이다. 마치, 사람으로도 한참 자신감이 차있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뻣뻣한 녀석들도 주위의 동료들이 다 떠나갈 때 즈음이면, 마지막 남은 녀석도 힘이 없고 구부정한 모습이다. 녀석도 이제 많은 것을 내려둔, 어깨조차 좁아진 노년의 한 남자의 모습과 닮아있다.


꺼져버린 담배와 구부려진 등이 더 갸냘퍼 보이는 우리는 닮았다.


이제는 다 꺼져버린 담배는 더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마치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서 힘이 빠질수록 주변의 사회에서 도태되어 가는 것처럼, 그들 역시 이제 아무에게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의 종이컵에 다 꺼진 채로 남겨져 있는 녀석을 보다 보면, 저 녀석을 태웠을 사람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저 담배를 태웠을까. 단순히 그냥 기호 식품으로, 끊지 못해서 담배를 태웠을까?? 아니면 깊은 고민의 끝이 머물고 있는 가슴 한 구석의 회오리를 연기와 함께 내뿜고 싶어서 담배를 태웠을까.


담배를 태우면서 내뿜는 한 숨은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약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더라. 누구나 살게 되면 겪는, 내게는 너무나도 버겁고 힘든 결정과 순간이지만 타인에게만은 그 수심을 들키고 싶지 않을 때, 나는 종종 담배를 태웠었다. 그래서일까. 꺼져버린 담배의 모습 속에는 담배를 태웠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의 담배를 태우는 모습은 담배의 종류와 향처럼 다양하다. 하지만, 담배를 태우는 손에는 이상하리만치 처연함이 함께 한다. 그 처연함을 보며 담배를 "서민"이 즐길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위로라고 생각하면 지나친 것인지도 모른다. 길거리에서 차를 운전하며 한 손을 내밀고 담배를 태우며 자신의 겉을 치레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자신의 겉을 더 크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행위들.


그런 사람들의 행위에 나는 관심이 없다. 그런 사람들의 담배는 한 개비에도 겉멋이 들어있어 눈살이 찌푸려질뿐이다. 진짜 열심히 매일을 살아가는 분들의 담배 한 대에는 그분들의 노곤함과 함께 아스라이 안락한 만족까지 얼굴 전역에 퍼져간다. 그 모습을 보고 나면, 다행히 저 담배가 필요한 분들에게 갔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주말 오후, 행락객으로 붐비는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담배를 태우는 아버님을 찍었다. 아버님은 밀리는 행락객과 담배 한 대 사이에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문득, 한참이나 올라버린 담배 가격이 떠올랐다.


나는 헤비 스모커였다. 하지만 이제는 담배를 태우지 않는다. 이제는 태우지 않는 것이 익숙해졌지만, 더 이상 태우지 않는 것은 어쩌면 10cm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뿜어지는 연기 속에 담을 만큼 내 고민과 한 숨은 가벼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은, 살아가는 것의 비중은 언제나 바뀌기에, 그리고 떠 나니는 듯 한 삶의 감정들의 얽매임은 언제나 바뀔 수 있기에, 더불어 견딜 수 있을 만큼 견뎌냈던 현재까지의 삶보다 더 쓴 내 나는 삶이 내 앞을 가로막을 수 있기에, 나는 장담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이 조금만 더 가벼워지면, 담배 연기도 더 가벼워질까. 비록, 담배를 태울 수밖에 없어도, 그 연기는 조금이라도 더 가볍게 올라갈 수 있는 여유가 많은 삶에 찾아들기를...


2021-10-18


사진/글 고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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