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참 많이도 아팠던 날이 있었다. 다른 것보다 더 아픈 것은 내가 누군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에 대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황폐화되었었다는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의 결말은 둘 중 하나이다. 하나는 성공(그것도 끝까지 유효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면 번아웃. 그 둘 중에 나는 후자였다. 하루에 열 시간이 넘는 시간을 몰입하는 스터디 시간에도 불구하고 최종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뱅뱅 도는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아... 내가 참 이런 사람이었나?? 의문은 가끔 가지되, 답은 없다. 그러니까 미스터 노바디.
해가 떠오르면 햇살에 몸이 닿을까 봐 집안의 어두운 그늘만을 찾아서 숨어 다니던 시절이었다. 집 깊숙이 그 누구도 나를 찾지 못할 정도로 숨어있다가, 세상을 아우르는 해의 인자함이 자신의 힘을 거두고 그 끝을 살짝 남길 때쯤, 나는 해넘이를 보러 나와 짧다면 짧게 진행되는 그 아름다운 순간을 바라봤다. 하루에 한 번 밖에 없는 그 시간을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바라볼 뿐, 그 어떤 다른 시간에도 어둠 속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내게는 모든 것이 다 결핍되어 있었다. 그것도 병원에서의 상담을 통해서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이지만. 결핍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된 날, 나는 상담실에서 수십 분을 울었다. 그렇다. 나는 모든 것에 결핍되어 있었다.
겉으로는 많은 것이 주어진 듯했지만,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존재가 내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
그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내 기억이었다. 사람은 기억이 있어야 어디서부터 자신을 찾아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기억도 없었다. 기억이 없다는 것, 결핍, 그 어떤 부족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수없이 많은 고민의 시간 끝에 나는 사진을 선택했다.
글로 남기기에는 부담스러운 시간들, 감정들을 아주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당시의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단순한 생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카메라를 구입했다. 모서리 한쪽이 깨져있던 플라스틱 토이카메라가 그것이었다. 디지털카메라는 엄두도 내기 어려웠고, 필름 카메라 중에서도 조금 있어 보이는 것도 가격이 부담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공부하는 것 외에는 단 일만큼의 관심과 허용도 허락지 않으셔서 내가 갖고 있던 비상금을 털어 나는 로모카메라를 구입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해와 마주하다."
구매한 로모 카메라는 가격이 몇 만 원 되지 않았는데 필름을 넣고 찍는 카메라였다. 당시에는 필름 가격도 저렴해서 필름으로 찍는 것에 부담이 없었다. 사진을 찍는 데는 카메라와 필름만 있어서 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빛인데, 나는 해가 떠있는 시간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있으니 참 힘든 결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부터라도 기억을 저장하기로 했다. 그래서 해가 드리워진 거리로 나가기로 했다.
내 한쪽 손에는 모서리가 부서진 토이 카메라, 한 손에는 지금도 기억이 뚜렷이 나는 코닥 필름의 "울트라 맥스 400"이었다. 이 둘로 나는 첫 사진을 찍었다.
토이 카메라로 찍은 첫 사진은 가로등이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던 막 그 무렵, 골목에 들어오던 가로등의 불빛이 너무 좋아서 찍었던 내 첫 사진을 나는 자주 들여다본다. 그럼에도 해와 당당히 마주하기는 두려워, 어둑해질 때 찍었던 나의 첫 사진.
종종 해가 길어질 무렵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나의 기억은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일상으로 조금씩 돌아올 수 있었고, 다시금 학업으로 돌아갔다. 나는 6년제 수의대를 졸업했지만, 국가고시에 한 번 떨어졌다. 지나가는 개도 붙는다는 국가고시에 떨어진 느낌은 죽고 싶다는 감정뿐이지만, 다행스레 지금 나에게는 사진이 손을 마주 잡아주고 있다.
그리고 2023년 상반기에는 사진집(비록 전자책)도 출판할 수 있었다. 유튜브를 통해 내가 사진을 찍는 모습도 나 스스로 볼 수 있었고(말할 수 없이 비만인이 되어버린) 이제 네이버에서 내 이름을 검색해도 나오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따라서 이런 질문들은 간혹 나를 따라다닌다.
"본업이 무엇이시죠?? 수의사인가요?? 사진작가신가요??"
이 질문은 늘 내가 대답을 하기에 곤란하게 만드는데, 그 어느 것도 버리고 싶지 않은 동등한 무게를 갖고 있어서일 것이다.
이럴 때는 "저는 아직 수의사가 아닌데요, 그냥 수의사 지망생일 따름입니다."라고 대답한다.
현재에 가장 맞는 대답이기도 하고, 곤란함을 피하기도 좋기도 하고...
"네, 저는 수의사지망생입니다."
2023-07-04
Photo/Written by HA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