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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Feb 27. 2024

이름 앞에 세 글자가 생겼다.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이름 앞에 무슨 단어를 붙일 수 있을 것인지, 한없이 걱정하고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법조인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었고, 그 길과 거리가 멀어지고 점점 소원해질 때는 내가 갈 길이 도대체 어디인지 알 수 없어 고민만 가득하던 때도 있었다.


솔직히 처음부터 수의사가 목표는 아니었다. 수의사라는 직업에 점점 더 매력을 느낀 것은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는 반려견 유키와 함께 살 무렵부터였고, 그전에는 다른 수의사보다 다른 직업에 더 매료된 적도 있었다.


수의사가 나쁜 직업이라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한 참 찍을 때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기도 했고, 그 사진을 바탕으로 글을 쓸 때는 작가가 되고 싶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어른이라는 딱지가 붙은 지도 한 참이나 지났어도 방황에 방황을 거듭했다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참 많이도 아픈 시간들이었다.

그런 시간들은 나를 아프게도 만들기도 하고 성숙하게 만들기도 했다. 때로는 모든 것이 너무 힘들어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런 만큼 삶은 나를 혹독하게 다그쳤다.


복학을 결심한 뒤, 나는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 연어가 다 크면 고향으로 돌아오듯이, 나도 자연스레 고향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고향을 찾은 뒤에 따라오는 안도감이라고나 할까, 그 안도감은 내가 복학 후 일 년 동안은 학교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줬다. 


하지만 본과 2학년 봄 동생의 갑작스러운 사고와 그 후유증은 내 시간을 또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에게는 말하기 어려운, 장남이 어느 면에서는 부담해야 하는 갈등 속에서 나는 한 학기를 바듯이 채우고 둘째 학기부터는 휴학을 선택했다.


1년 동안의 휴학은 내 일보다는 동생과 가정의 일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나는 괜찮을 거야...'라고 끝없이 되뇌었던 것은 순전한 자기 위로였다.




1년이 지난 뒤 복학 후의 나는 현재까지 계속되는 끊임없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가위를 눌리기도 하고 악몽에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그것은 아직까지도 내 앞에 나를 대신할, 나를 사람들에게 소개할, 나를 줄여서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그 한단어가 없다는 무서움이었다.


무서웠다. 진심으로 무서웠다. 시간은 가지만 아무것도 보장되지 못한 시간 속에서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못하고 주변을 떠도는 것이 무서웠다. 혼자 시험을 준비하고, 혼자 보고서와 실습을 잘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해, 국시를 앞둔 4학년 마지막 학기에 내 반려견과 이별을 했다. 녀석은 내 눈앞에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나는 국시에 대한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험과 마주했고 또 보기 좋게 떨어졌다. 




축하합니다!라는 단어에 왜 그리도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아마 이제는 밤에 덜 걱정하며 잠들 수 있겠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내 친구에게 떳떳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더불어 이제 내 이름 앞에, 나를 대신할, 나를 함축해 줄 단어가 생겼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직도 나는 그 무엇에도 익숙하지가 않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일을 해야 할 인턴 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구직을 하지 못한 것 또한 나에게는 계속되는 불안감의 연속이기는 하다. 하지만 어느 곳에 내가 서있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뚜렷해졌다. 더불어 이제 그 어떤 사회 속에서 주변만을 돌지 않아도 된다. 


축하드린다는 흔한 말은 나를 부드럽게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내 앞에 달릴 세 글자, 그 세 글자로 인해 나는 다음 세상을 향해 도약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어떤 세상으로 나아갈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 어떤 세상으로 나아가도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더 힘든 시간은 없으리라 믿고 버틸 자신이 생겼다. 나는 이제야 사회의 한 사람이 되었다.



2024년 2월 27일


By 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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