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좋아하던 아이
사람들에게 과거가 뚜렷하게 기억이 나는 시점은 어디부터일까. 유치원 혹은 그 이전?? 나의 기억은 유치원과 그 이전에도 닿아있지만, 그 이야기까지 하기에는 너무도 멀고 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다만, 내가 어릴 적부터 지는 것을 싫어했던 것 그리고 유난히 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 정도만 말해도 될 것 같다.
충청남도 끝자락 어느 시골의 군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내가 살던 작은 소읍의 한 가운데에는 읍사무소가 있었고, 읍사무소 맞은 편에는 작은 파출소와 소방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 편 쪽으로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가 있었다. 지금은 가보면 몇 걸음 되지도 않는 그 거리를 어린 시절에는 총총 걸음으로 한 참을 걸어갔던 것이 기억이 난다. 학교는 높은 건물이 4층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학교의 복도를 반짝이게 닦기 위해서 왁스칠을 하는 날이 종종 있었고, 왁스칠을 한 다음 날의 왁스 냄새라든가 혹은 비가 오는 날, 우산에서 빗물이 떨어져서 마루와 맞닿아 만들어내는 냄새는 어슴프레 하지만 남아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끝자락이었을까, 아직도 한 반에 40명이 넘는 아이들로 빼곡했고, 시골의 소읍이기는 하지만
"이촌향도"마저 활발하게 진행되기 이 전이어서, 학교는 꽤 북적거렸다.
한 반의 아이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살던 작은 소읍에도 인구가 꽤 됐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아니 어쩌면 인구는 적었을지도 모르지만, 굳이 내가 인구가 많은 것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닷새마다 한 번씩 열리는 5일장이 꽤 크고 성대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5일장의 백미는 물론 먹을 거리를 파는 곳이 되겠지만, 가령 내 눈 앞에서 바로 튀겨지는 어묵들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쉽게 맛볼 수 없는 통닭들, 그리고 맛이 달달한 꽈배기를 비롯해서 그 모든 것이 어린 시절 나를 유혹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복잡한 먹거리 시장을 벗어나면 신작로로 부르는 큰 길 건너편에는 이 쪽과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는 했으니, 그 것이 바로 동물을 파는 장이었다.
그 곳에 가면 꽤 많은 동물들이 있었는데, 아니 동물에서부터 곤충까지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우선, 종종 소가 끌려 나왔고, 귀여운 "시고르자브종" 강아지들은 이제 막 어미에게서 젖을 떼고 새 주인에게 가기 전까지 낑낑거렸으며, 한 쪽에서는 "음메~~!!"하는 소리와 함께 흑염소가 가끔은 화도 내었고, 그 반대쪽에서는 "꼬꼬댁~~!!!!"하며 장탉들까지 어우러져서 마치 작은 동물원같았다.
나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만 그 곳에 구경을 다녔는데, 내게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강아지였다.
이 녀석들은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종종 강아지를 가져오신 아저씨들께 한 번만 안아보면 안되냐고 여쭤봤지만, 사람 손을 타서 좋은 것 없다고 거절을 하시고는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다음 장날 또 가서 강아지들을 보고, 구경을 하다가 학원에 가야하는 시간이 되면 마지못해서 자리를 뜨고는 했다. 세상에서 새끼일 때 예쁘지 않은 동물은 없다고 했지만, 이제 막 눈을 뜨고 젖을 뗀 "시고르 자브종"의 견공들은 정말 탐스럽기 그지 없었다.
나의 고향에는 장날과 상관없이 "우시장"이 있었다. "소"들을 사고 판다는 그 곳은, 내게는 신비의 세계와 같이 느껴져서 어떻게든 한 번 찾아가보려고 했지만, 그 장소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떤 친구는 큰 도시로 나가는 쪽에 있다고 했으며, 다른 친구는 더 시골 쪽으로 들어가야 그 시장이 있다고 했다. 두부류로 나뉜 패거리 중에 어떤 패거리의 말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내 힘으로 "우시장"을 찾아가는 것이 무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는 "소"를 키우는 친구네 집이 있어서 구경을 가서, "소"에게 관심을 표해도, "소"는 내게 별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나도 "소"에는 흥미를 금세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우시장"이 있을만큼 내 고향은 시골이었고, 나는 고향을 좋아했다. 그리고 장날을 기다렸고, 장날에 어머니께 얻어 먹는 호떡이나 도너츠는 항상 최고였다. 그리고 그 것을 얻어먹고는 학원으로 가기 전에 종종 동물들이 있는 장으로 가서 실컷 동물들을 바라보고 돌아오는 그 모습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 때까지만해도, 나는 동물들을 좋아했지만, 내가 수의사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고향에 있는 동물병원은 동물병원이라는 좋은 이름 대신 "가축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장터의 한 쪽 끝에 위태하게 서있었기에, 동물병원은 어린 마음에도 영원히 멀고먼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좋아하고 사랑하던 나의 고향을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5일장도 없고 좋아하는 시고르자브종 강아지를 자주 볼 수도 없고, 더구나 우시장따위는 없는 딱딱한 도시 위에서 나는 쓰디쓴 차가움을 맛보며 살아야만 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장터를 돌며 강아지와 토끼, 그리고 닭을 보던 그 시절이었다.
2020-05-18
Vet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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