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 것은 사랑이겠지.
사람에게는 끝내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도 같다.
동물을 좋아하던 내가 끝내는 아주 늦게라도 아픈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수의학과에 입학을 하고
수의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반려견 "유키" 덕분이라고 할 수밖에 없으니까,
"유키"와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고 "운명"일 수밖에 없으니, 나는 내 "운명"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너무나 늦게 철이 들었다. 아니 대학교에 진학이 너무 늦었다.
맨 처음에는 인문계열로 대학에 진학을 했지만, "의대"에 진학을 하고 싶던 나는 내 청춘의 대부분을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다 써버렸다.
그럼에도 결론조차 말하면 나는 "의대"에 진학하지 못하고 "수의대"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 진학을 한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의미한다.
결혼도 포기해야 하고, 나의 2세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의미할 수도 있다.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나에게 결혼을 기대하던 연인과도 헤어져야만 했다.
그 이별의 결과, 나는 한 동안 아파하고 힘들어했다. 애써 노력해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었건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탈감과 박탈감으로 인해 나는 많은 것들을 포기했었다.
그때, 나는 "유키"라는 나의 반려견을 입양하였다. 눈처럼 하얗고 털이 몽실몽실한 아이...
그래서 "눈"처럼 깨끗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붙여준 이름 "유키", "유키"는 우리 집에 온 이후 나의 아들이자 동생이 되었다.
"유키"는 이제 10살이 넘었다.
사람의 나이로 따지면 60살이 넘은, 그러니까 이제는 노견으로 분류되는,
하지만,나는 애써 "노견"이라고도 하지 않지만 말이다.
사람의 나이로 따져도 60살 정도라고 애써 낮춰서 말하는 이유는
"유키"가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을 떠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한 이야기로, 부모님은 내가 "수의대"에 만족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이 글을 읽는 수의대 학생들의 오해가 없으면 좋겠다, 전적으로 우리 부모님의 견해시기에)
되도록이면 "의대" 앞에 "수"자가 없는 사람을 치료하는 "의대"에 다시 진학하기를 바라셨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수없이 반복된 입시 과정 동안 나는 너무도 지쳐있었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피폐해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생명"의 "무게"보다는 이 지구 상에서 존재하는 것들에 우선순위적으로 "가치"를 먹이고 그것을 일렬로 세워놓았을 때, 가장 의미 있는 것을 치료하는 것이 최고라고도 생각했다.
희망, 혹은 꿈과 현실과의 괴리는 사람을 극단적인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내 주변을 둘러싼 이들의 기대와 내 안의 욕망과 또 한쪽에 자리 잡은 내 괴로움과 아픔의 싸움으로 한 동안 나는 건강에 있어서도 최악의 상태를 오고 갔다.
어느 날은 집 안에 틀어박혀서 단 한 번도 방 밖으로 나오지 않은 적도 수없이 많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이 힘들었던 시간, 내가 다시 일어서게 해 준 존재가 "유키"와 낡고 보잘것없는 "카메라"였다.
그렇게 사진을 찍게 되었을 때도 나는 풍경사진이나 모델 사진을 찍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 카메라를 갖고 풍경사진을 찍는 곳이나 모델 사진을 찍는 곳에 가도 그 누구 하나 반겨주는 사람도 없었겠지만...
골목길을 헤매고, 또 헤매었다.
이 길을 갔다가, 다시 저 길을 가고, 오늘은 이 마을, 내일은 저 마을...
어느 날에는 "유키"가 내 옆 자리에 앉아서 함께 이 마을, 저 마을을 함께 돌아다녔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내가 애써 거부했던 시간과의 조우였다.
부자가 되어야 하고, 명예가 있어야만 되는 탐욕스러운 나의 욕심과는 반대되는 시간과 순간들...
나는 그 순간들을 진정으로, 진심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첫 만남이 곧 이별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재개발 지역에서 만난 아이들, 그리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녀석들...
신기한 일들이 벌어졌다.
"의대"에 진학해야겠다고 그토록 갈망했을 때와 다르게, 친구들이 조금씩 더 내 가까이로 다가왔다.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을 핥기도 하고, 혹은 손을 내밀기도 했다.
사진을 찍어도 가만히 있는 녀석들도 많아졌다.
내 가방에 아이들의 간식을 넣는 횟수도 잦아졌다.
오늘 만났던 아이들을 다음번에도 만날 수 있으면 꼭 이 간식을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설레기도 했다.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는 친구들을 사랑하는 분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그때부터 진정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반려견과 반려묘 아니 꼭 강아지와 고양이가 아니더라도...
그 어떤 생명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작은 생명이 아프면 그만큼 자신들도 아파하는 사람들...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그런 분들에게는 "수"의사라는 직업이 새삼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그때부터였을까, 시나브로 내 아픔을 조금씩 털고 일어나기 시작한 때가
친구들을 치료하는 만큼, 그 친구들의 아픔으로 함께 고통스러워하는 분들의 가슴도 함께 치유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때가...
돈을 조금 못 벌면 어때, 지금도 늦었지만 조금 더 천천히 가면 어때...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일렬로 세워놓는 순서만은 아니니까
나는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는 될 수 없지만, 사람의 마음은 "치유"할 수 있는 "수"의사는 될 수 있으니까...
다녀가면 행복해지는 동물병원을 만들자, 반려동물이 아파서 와도 갈 때면 미소를 지으면서 돌아가는 병원,
혹은 반려동물로 인해 마음까지 아픈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미소 지으면서 돌아가는 병원...
행복한 동물 병원을 만들자...
그리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세상을 치유하자.
아픈 동물이 있나요??, 마음이 아프신가요??
그러면...
행복한 동물병원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그곳에서 제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020-04
Vet 하루
작년 5월 어느 날
동생에게 큰 사고가 났습니다.
몇 번의 수술에도 동생의 경과는 좋지 않았고, 모든 것을 다 부정적으로 말하는 의사들과 대화를 하는 것은 제 몫이었죠. 그들은 자신들만의 언어로 설명을 하는 것이 물론 편한 것도 있었겠지만, 환자와 환자 보호자를 마치 내려다보는 것 같은 태도는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환자와 환자 보호자가 오직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의사" 밖에 없습니다.
만약, "의사"가 그런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매일 내면의 적과 싸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의사"선생님들의 노고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수없이 많은 환자들을 치료해야 하는 그 수고스러움과 고통을 어떻게 다 제가 알겠습니까...
하지만, 환자가 정말 힘들 때, 위급할 때 전화 한 번이라도 받아주는 씀씀이가 있다면 "환자"와 "보호자"는 그 감사함을 평생 잊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반려견을 떠나보낸 한 분께서 제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더라도, 부디 전화 한 번이라도 받아주시는 따스함을 잃지 않는 "수"의사가 돼주시길 바란다고요.
"네... 노력하겠습니다, 실력은 비록 부족하더라도 생명을 향한 따스함은 잊지 않는 행복한 동물병원을 꼭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