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세계가 다르더라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서.
나의 부모님은 말이 없으셨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꼭 필요할 때에만 대화했고,
그 외의 말들은 늘 ‘쓸데없는 것’, ‘시끄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저 말하는 법을 몰랐던 사람들이었다.
자기 약함이 드러날까 두려워,
침묵을 답이라 배우고, 약이라 믿었고,
그렇게 나에게도 가르쳤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어릴 적부터 침묵 속 고요가 편안했다.
가족들과 마주 앉아 숨 막히는 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면,
나는 늘 방바닥에 엎드려 나만의 고독 속에 들어가 있었다.
내게는 책이 있었다.
빈약하지만 아끼던 책장 속 책들을 꺼내 놓고,
환한 방 안이 어둑해질 때까지,
잠이 들 때까지, 나는 줄곧 읽었다.
책 속 세계는 조용하지만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끝없는 세계였다.
광활한 지평선을 달리다가도,
깊은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해저를 유영하듯—
나의 세계는 경계가 없었고, 끝도 없었다.
그곳에서는 귀한 진주 같은 문장들을 만나기도 했고,
바다의 파도처럼 부서져야 비로소 아름다운 말들,
사막의 모래알처럼 가볍지만 마음을 변화시키는 말들,
하늘의 구름처럼 포근한 말들까지—
나의 세계는 말로 이루어진 보물들로 가득했다.
어른이 되어,
내 세계와 부모의 세계가 ‘대화’라는 방식으로 서로를 마주했을 때,
나는 비로소 그들의 세계가 얼마나 좁고 단출한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 작은 세계에서는
아직 비어 있는 아이의 마음을 채워줄 말이 턱없이 부족했고,
이미 말로 가득 찬 나의 세계에는 그들의 침묵이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점점 더 말이 없어졌다.
그 초라함을 감추고 싶어서, 자꾸만 작아졌다.
엄마는 종종 말한다.
자신이 말하는 법을 몰랐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고.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던 그 시절이,
자신을 자꾸 괴롭힌다고.
그럴 때면 나는 말로 그들을 안는다.
내 세계에서 가장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들을 모아,
그들의 마음에 하나씩 천천히, 체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채워 넣는다.
“괜찮아. 고마워.”
그 한마디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부모는 늘 후회하고 미안해한다.
지나가 버린 것들, 채워주지 못한 것들에 대해.
하지만 나는 안다.
그 결핍이 나에게 더 큰 세계를 열어주었고,
그 고독의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그래서 오히려 감사하다.
내 안의 고요 속에서 자라난 예쁘고 귀한 말들로,
당신들의 마음을 꼭꼭 채워드릴 수 있어서.
그렇게, 당신과 나의 세계가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