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사랑 이야기

영화 <헤어질 결심>, <화양연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by likeverytime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헤어질 결심>

이 영화에서 헤어질 결심은 크게 두 번 나온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헤어질 결심은 '해준'이었다. 해준은 사건 용의자였던 '서래'를 심문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그녀에게 점점 빠져들게 된다. 후배 '수완'은 서래의 살인을 의심하지만 해준은 서래의 알리바이를 이유로 그녀의 남편 기도수 사건을 자살로 결론 내린다. 그리고 사건 종결과 동시에 해준과 서래의 관계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심한 불면증을 앓던 해준은 그 원인이 벽에 붙은, 해준이 놓지 못한 미제 사건 사진들이 원인이라는 서래의 말과 사진들을 모두 불태우는 서래의 행동으로 해소된다. 서래 역시 자신의 일을 해준에게 부탁할 정도로 둘은 신뢰를 쌓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기도수의 사망 원인은 서래의 살해였다는 단서를 찾아내고, 해준이 지금까지 지켜온 형사로서의 품의가 완전히 붕괴된다. 그렇게 해준은 헤어질 결심을 한다.


두 번째 헤어질 결심은 '서래'였다. 사랑한다는 말 없이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온 몸으로 말하고 있던 해준이 자기가 그런 말을 했냐고 되물을 때도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했던 서래였다. 하지만 이포에서 해준과 재회한 뒤 서래의 두 번째 남편이 살해되고, 그가 담당 형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과 피를 무서워하는 그가 피가 가득한 현장을 보게 될까 걱정되어 현장을 훼손했을 때. 그때가 서래가 헤어질 결심을 한 순간이라 생각된다. 그렇게 서래는 부산에서 증거는 바다 저 깊은 곳에 던져 버리라던 해준의 말처럼 자신을 바다 깊은 곳에 묻어 버렸다. 하지만 이 둘은 헤어질 결심만 했을 뿐 누구도 결심을 지키지 못했다. 해준은 첫 번째 헤어짐에 다시 불면에 빠졌고, 서래는 해준이 더 이상 붕괴되지 않게 자신을 묻었지만 결국 해준의 가장 고통스러운 미결 사건으로 남았다.


함께 있을 때 가장 자신답게 있을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가장 나다운 것을 버려야 하는 모순적인 사랑. 이 보다 더 망한 사랑이 어디 있을까?




2. <화양연화>

花樣年華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같은 날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온 '첸 부인'과 '차우'는 이삿날부터 자주 마주친다. 평범한 이웃이었던 둘은 차우의 넥타이와 첸 부인의 가방이 각자의 배우자 것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의심은 곧 확신이 된다. 그들의 불륜에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떤 마음일지 궁금해진 두 사람은 우리도 해보자며 비밀스러운 만남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모든 말과 행동에는 진심이 섞여 들어갔다. 시간이 흐르자 두 사람의 소문도 무성해져 가고, 차우는 첸을 위해 그녀를 떠나겠다 다짐한다. 그렇게 이별 연습을 해보는 '차우'와 '첸 부인'. 하지만 거짓 관계, 거짓 이별임에도 오열하는 것을 보며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됐다.

하지만 첸 부인이 남편을 떠나지 못할 걸 아는 차우는 싱가포르로 떠나기로 한다. 뒤늦게 첸 부인은 차우를 기다렸지만 그는 이미 떠난 후였다. 그렇게 그들의 연극은 끝났지만 사랑은 끝내지 못한 채 이별한다.

지나간 시절은 먼지 쌓인 유리창처럼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는 없기에 그는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유리창을 깰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갈지 몰라도

3년 뒤 첸 부인은 아파트로 돌아와 차우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차우는 캄보디아 나무 구멍에 비밀을 속삭이며 영화는 끝이 난다. 결국 이 둘의 사랑은 떳떳하게 말할 수도, 완성시킬 수도 없었지만 망했기에 더 아름다웠던, 어쩌면 비로소 완성된 그들의 화양연화였다.




3.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너의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엘리오'는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잠시 집에 머물며 근무하게 된 '올리버'를 만난다. 엘리오는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깨닫게 되고, 그런 그에게 올리버는 사랑하는 법을 알려준다. 그렇게 둘은 한 여름밤의 꿈 같은 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올리버의 일정이 끝나고, 그들의 꿈도 끝이 나게 된다. 동성애가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이지만, 엘리오의 아버지는 엘리오의 감정을 이해하고, 올리버와의 이별을 성숙해지는 과정이란 의미로 위로해 준다. 어쩌면 이 장면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부모에게 내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건 가장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여름이 완전히 끝난 겨울, 엘리오는 결혼한다는 올리버의 전화를 받는다. 그토록 기다린 연락이었지만 엘리오와 올리버는 더이상 서로를 붙들고 있을 수 없기에 서로의 이름만 한참을 부르다 이내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입 밖으로 뱉지 못하여 서로의 이름으로 대체된 사랑. 그래서 이 망한 사랑은 어쩌면 가장 가슴 아픈 사랑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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