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대전으로 3일 동안 교육을 다녀왔었다.
가보니 이 바닥 쟁쟁한 사람이 너무 많다.
기업대표, 공인노무사, 중앙부처사무관, 노동위원, 인사담당자.. 내가 제일 하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올해 500명을 뽑는데 2,000명이 지원했단다. 그리고 난 노동법전공 법학석사라 뽑힌 모양이었다.
내가 일하는 분야 종사자들은 신분세탁을 위해 심리상담이나 경영학을 선호했다. 난 심리 쪽은 너무 방대한 영역이란 생각에 애초에 꿈도 꾸지 않았다.
어쩌면 사람 속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나?
굳이 대학원을 가야 한다면 내가 모르는 창업분야를 공부해보고 싶었다. 그 당시 팀장 놈이 내가 대학원을 가려한다는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
창업은 유행을 타
지금이야 팀장 놈이지만, 그땐 님이었다. 나보다 앞서 간 이의 말을 듣는 것도 맞겠다 싶어 다른 전공으로 바꿔 제출했다.
가보니 가관이다. 과목당 40~50분씩, 3과목을 밀어 넣고 한 주 수업이 하루 2시간 반 만에 끝났다. 다들 직장인이니 배려해 준단다. 돈은 내가 내는데 배려를 왜 자기들이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피카소 그림을 보여주는 모더니즘 미술과목이 있기도 했고,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이도 있었다. 결국 안 알려줬다. 비가 오면 A4 한 페이지 분량의 과제로 수업을 대체하는 교수도 나타났다. 수업이 있는 목요일마다 5주째 비가 왔을 때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다음 학기에 시간강사로 팀장 놈이 새로 왔다. 나는 제대로 영업을 당했다.
여하튼 이왕 벌어진 일 수습은 해야겠고.. 박사과정까지 바라보고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으니 여기서 논문이라도 건져야겠다고 결심하고, 2학기에 들어서서 논문을 써보고 싶다고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눈이 뎅그래진다. 원치 않는 게 말하지 않아도 땅바닥까지 뚝뚝 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다들 논문대신 5학기를 등록하고 한두 번의 출석만으로도 졸업장을 따갔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변수였다.
며칠이 지나, 이야기를 주워들은 팀장 놈이 한술 더 뜬다.
뭐 하러 써. 여기는 논문 안 써도 박사 갈 수 있어
이리저리 지도교수를 찾아 헤매는 나에게 명예교수님도 말했다. 때로는 인생을 살며 분위기에 순응하는 것도 필요하단다.
결국 난 3학기에 자퇴를 선택했다. 가만히만 있어도 석사 따는데 자퇴하냐며 아깝다고들 했지만 필요 없었다. 이듬해, 다른 대학 법학전공으로 다시 입학했다. 법을 선택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학사는 자연계였다가 법학을 선택한 나를 다들 의아해했다. 그리고 학기 내에 논문을 써 석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심사를 받으면서 한 달 내내 "내 인생에 박사는 없다"를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주제가 좋으니 계속 연구해 보라는 교수님 말씀에 또 혹해서 박사과정을 등록했다. 자고로 어른의 말씀은 흘려듣는 게 아니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여태껏 대학원생이다.
쉬운 길, 안전한 길이 과연 정답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남의 조언을 귀담아듣는 태도도 물론 필요하지만 결국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인지라, 때로는 내 결정을 믿고 나아가는 소신도 필요하다. 어디선가 읽은 글에서 사람의 행복은 자기 주도적인 결정에서 나온단다.
우여곡절 많은 그 학위가 내 직렬 커리어 끝에 서있는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난 나를 이렇게 소개한다.
좌뇌와 우뇌를 모두 활용하는 인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