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이지 않은 상황들이 계속 이어질 때 갈피를 못 잡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가스라이팅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밀림 속에 있다 보니 방향감각을 잃은 것인지 나의 판단은 힘이 없다.
평소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넘길 일들도 구덩이 속에 들어가 있게 되면 어느 순간 무엇이 옳고 그른 지 판단할 수 없게 되곤 한다.
30세는 이립으로 삶의 기초를 세우고, 40세는 미혹되지 않고 분별하는 나이이며, 50세는 지천명으로 하늘의 뜻을 깨닫는 단계라는데 분별은커녕 다시 질풍노도의 시기로 돌아간다.
게슈탈트의 빈 의자기법이라고 들은 건 있어서 가끔 내 생각이 옳은지 길을 잃을 때 빈 의자에 나를 앉힌다.
그리고 내가 제3자라면.. 나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를 생각해 보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사람들은 어찌 그리 자신들의 생각에 확고한 믿음이 있으며, 어찌 그리 당당할까. 나는 또 왜 내가 옳다 생각하는 길에서 망설이나.
어릴 때 집 거실에는 서예를 배운 아빠가 멋있게 글을 써 액자에 넣어두신 가훈이 걸려있었다.
건강, 정직, 노력
삼 남매를 모두 앉혀놓으시고, 주마다 가족회의를 하셨다. 우리는 서로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나 고민거리를, 아빠엄마는 일하면서 생긴 일들을 나누고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항상 입버릇처럼 우리 집 가훈이니 꼭 지키는 어른이 되라고도 하셨었다.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못하니 무엇보다 건강함이 우선이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신뢰가 중요하니 언제나 정직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다음이 노력하는 자세라며 세 가지를 꼭 지키면서 살라고 하셨다.
지금 회상해 보면 그 당시 아빠엄마는 30대 초중반이었다. 참 멋지지 않나. 나는 질풍노도의 시기로 회귀하는데 부모님은 그 나이에도 지천명이었다.
이름이 싫을 때가 있었다. 일이 안 풀린다고 느낄 때 왠지 나도 개명을 좀 해야 하나 싶었다.
내가 지은게 아니니 더 마음에 안 들 수밖에.. 큰아빠가 지었다던데 너무 대충 지은 거 같았다.
그런데 가끔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내가 옳다고 믿는 도덕책 같은 신념을 내려놓고 싶을 때 내 이름 속에 진실되라는 뜻이 들어있어 중심을 잡곤 한다. 그걸 깨닫고는 개명의 포부는 사라졌다.
생각이 복잡할 때 글 쓰는 게 최고인데,
글을 쓰고 있자니 생각이 복잡해진다.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