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덜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항상 책을 읽으면 조언이 담긴 자기 계발서들을 주로 읽었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환경에 잡아먹히지 않고 잘 크고 싶었다. 소년소녀가장이라는 타이틀에, 누구나 다 알법한 사고 희생자를 가족으로 둔 나는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도 색안경의 대상이 되었다.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환경은 나를 집어삼켰다.
중2 때 국어선생님이 생일도 아닌데, 쇼핑백을 건네주셨다. 책이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생각지도 않던 순간에 받은 선물은 그 후로 내 인생의 방향추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스스로 이겨내는 힘을 만들 수 있도록 조용히 책을 선물하는 선생님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15살에 내가 본 어른들은 부모님의 보상금에 눈이 뒤집혀 남아있는 어린 자식들은 보이지 않고, 돈을 어찌 굴릴지 궁리하는 모습들이었다. 안부대신 돈의 행방을 물었다. 각설하고, 그 후로 책은 나의 부모를 대신했다. 책에서 삶의 태도를 배웠고, 하지 말아야 할 것과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곱씹었다. 힘든 순간이면 책 내용을 떠올렸고, 책과 함께 컸다.
얼마 전, 직장에서 스트레스받는 일들이 점점 늘어나고 쌓여 한계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이제 깃털하나만 떨어지면 나는 100도가 되어 끓어 넘친다.
어느 날 같은 부서 언니가 살짝 말을 걸었다.
내가 서점을 갔는데 네가 생각나서 책을 사봤어.
내가 선물을 해줘도 될까?
말이 어찌나 예쁜지, 밖에서도 내가 떠올라 기꺼이 책을 집어드는 그 사람이 참으로 귀하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그랬다. 힘들다고 느껴질 때 나를 버티게 만들어 주는 것은 요란하지 않게 옆에서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사람이 나를 살게도, 죽이기도 했다.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를 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 책이다. 각자 나름의 철학을 장착하고 써 내려가는 글에는 허투루 흘려보낼 글자가 한 글자도 없다.
도서관에서 이번에도 자기 계발서를 꺼내드는 나를 보고, 한 후배가 중얼거린다.
나는 자기 계발서는 싫던데. 나에게 잔소리하는 것 같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잔소리가 필요했었나.
무관심 속에서 난 손수 잔소리를 찾아다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