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30년 된 초등 반창회 모임이 있었다. 그 시절 졸업앨범 뒷장에는 아이들의 집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삐삐도 핸드폰도 없었지만 다들 시간 맞춰 잘 만났다. 한 명씩 모두 전화를 돌려 약속을 잡았고, 저녁식사시간 전까지만 연락하는 것이 예의였다. 친구와 통화하기 위해서는 그 집 어른들의 관문을 거쳐야만 했다.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면서 뿔뿔이 흩어졌지만 카톡방에는 수십 년이 지나도 10명의 친구들이 모여있었다.
슬의생이 한창일 때 같은 지역 친구들 몇 명과 연말을 보낸 적이 있었다.
다들 얘한테 감사해, 얘 아니었으면 지금껏 이렇게 못 만났어.
생각지도 못했는데 항상 새해가 밝으면 내가 어김없이 나타나 인사를 했단다. 그러면서 서로를 이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딱히 알아주라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내 덕분에 자기들이 연락한다고 말을 해주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인연은 그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내 모든 학창 시절을 지켜봐 온 친구들이기에 내가 1박으로 여행 가는 것에 대한 사고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 줄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정말 얄짤없었다. 고민 끝에 참여하기 힘들다고 말하자 결국 윗지역은 윗지역끼리, 아래는 아래지역끼리 만나자며 모임을 반토막 내는 모습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30년을 공들여 이어 온 모임의 씁쓸한 결말이었다.
나에게만 소중한 관계였다.
난 대학원에서도 어쩌다 보니 간사다. 대학원에서는 학기말에 멀리 떠나 1박 2일로 세미나를 하는 전통이 있다.
내가 간사에 행사추진자라 무조건 1박을 해야만 한다.
망했다. 또 불안이 시작되었다.
교수님, 사실은 저도 몰랐었는데.. 제가 사고 트라우마가 있더라고요.
이번에는 멀리 가지 말고 1시간 정도 거리로 가도 되나요?
그럴 수 있음이 단번에 이해된다며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다. 원우들도 모두 따르겠단다.
덕분에 나는 밤에 집에 왔다 갔다 하면서 행사에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정말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였다. 당연히 안전하게 다녀올 거지만 트라우마라는 놈은 이성적 가정을 모두 무시하고 발동되었다. 나는 과거로 소환되었고, 다시 힘들어졌다.
이해를 받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 후로 나는 누군가 부탁을 해오면 더욱 신경 써서 고민한다. 그 말을 나에게 꺼내기까지 수많은 고민의 시간이 새겨져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큰일이 아니라면 대부분 수용하고,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다른 방법을 같이 생각해 보려고도 하는 편이다. 그러는 동안에 대부분 스스로 다른 방법을 찾아갔다.
그 일로 아쉽지만 인연을 놓아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그 빈자리를 다른 모임이 채우고 있다.
지나간 인연은 참으로 힘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