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신애 Jul 07. 2021

카이스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3

길게 보아야 보이는 것들.. 한 수 가르쳐 주지. 네거티브를 제거해야

"내가 한 수 가르쳐주지!"

기업에서, 국내 최대 NGO에서 리더이자 탁월한 분석가로 일하신 분의 지혜가 궁금했다. '뭐가 더 있을까요'라는 내 질문이 무색하게 양호승 회장님은 잠시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꼭 짚어 말씀하신다.

"일이란 게 말이지. 좋은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악조건을 없애는 것도 몹시 중요해."

이 한 마디에 나는 그냥 무릎을 꿇었다.


1996년도부터 나는 대학에서 일했다. 사립대학-사립대학 법인-국립대학-다시 사립대학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나는 참 많은 부서를 거쳤다. 이미 대학을 떠난 지 오래지만, 그 짧은 기간에 나만큼 여러 부서를 골고루 거친 사람이 별로 없다. 30대 초반까지 불과 몇 년 만에 학내의 주요한 12개나 되는 부서를 거친 것 같고 그동안 나는 해외 방문을 5번의 해외 출장과 3번의 국빈 행사를 비롯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매번 진행했던 것 같다. 눈과 콧대가 있는 대로 높아졌고, 무서운 게 없는 하룻강아지처럼 겁도 없이 덤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하고자 할 때 늘 마음이 상하고 좌절에 부딪히는 것이 있었다. 그렇지만 딱히 뭐라 말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성가신 상황들이었다. 대단히 크고 두드러진 문제가 아니라, 평상시 늘 이런저런 식으로 끼어드는 '안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수십 가지였다. 모금 좀 하려고 하면 예산부서나 재무부서의 모금 이해가 깊지 않아서 '양껏' 밀어붙이기 어렵다거나, 새로 오신 부서장님의 우선순위가 모금이 아닌 다른데 있다거나, 동문회와의 이슈가 있어서 서로 협력하기 어렵고 껄끄러워서 모금에 적극성이 안 생기거나 등등 발목을 잡는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꽤 많이 있었다. 더 답답했던 것은 그러한 것들은 사람의 성향이나 가치관, 우선순위 같은 것들이어서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많았고,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이니 이렇게 대안을 제시하자'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내 눈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어 보였고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큰 담벼락 같은 것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고 파도 고구마 덩굴처럼 계속해서 다른 문제로 이어지고 또 뿌리가 깊기도 해서 당장 결과를 내도록 일해야 할 사람이 그 뿌리를 놓고 씨름할 수 없다고 여겨져서 알면서도 손댈 수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런 문제들은 일개 직원들이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을 내내 리더 흉을 보면서 지낸 것 같다. 리더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데, 우리 리더는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다고 투덜댄 것 같고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통상 우리는 그런 것들을 가리켜 '조직 문화'라고 말하기도 하고, '조직의 생태적 환경'이라고 하기도 한다. 내가 머물던 생태적 환경들은 내가 하는 모금에 별로 우호적이지 않았던 셈이다.


양 회장님께서는 그런 네거티브한 생태적 환경, 즉 독소적인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거다. 가령 돌짝밭에서 돌을 골라내지 않고 씨를 뿌린다 치자. 싹이 나는 것은 잠깐이고, 식물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거나 모양 좋게 자라기 어렵다는 것은 해본 사람은 다 안다. 굳은 땅은 파 엎어야 하고, 메마른 땅은 일단 한 번 적셔놓아야 하고, 해로운 것들이 있다면 먼저 손을 보고 치워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모금을 꿈꾸는 많은 곳들이 자신들의 내부 또는 외부 환경이 어떤지에 대해 신경도 안 쓰고 왜 열매가 빨리 안 열리는지 의아해한다. 내부 분위기가 좋지 않고, 구성원들 간에 괴리감이 크거나 신뢰가 없어 뒤에서 부정적인 말들이 나돌고, 발전에 대한 의지가 없고, 동문회나 후원자 대표와 관계가 악화되어 있고, 돈은 좋지만 기부자 대접하기를 귀찮아하는 정서가 팽배해 있고, 모금이 귀찮고, 돈 달라고 하는 것이 본업을 방해한다고 여기고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 생각하고 등등. 이런 모든 것들은 모금을 갉아먹는 부정적인 요인들이다. 이런 독소들이 학내 울타리에 얼마나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문제를 모르면 답을 못 찾는다. 바로 이것이 모금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소위 '준비도에 대한 진단 평가'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4. 네거티브 요인을 컨트롤하고 모금 친화적 문화를 확산하는 것

카이스트에는 서남표 총장님이 계셨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분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신문과 풍문으로 전해 들은 것들을 종합해본 결과 나의 해석이다.) 2006년에서 2013년까지 서 총장님은 7년간 카이스트에서 일하시면서 '개혁'의 아이콘이 되셨다. 카이스트가 월드클래스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 중에 기존 방식에서 거부하고 있던 것들을 이것저것 다 건드리셨던 것 같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신 것이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정적인 사람의 생각은 바꾸기 어려우므로 그 사람을 바꾸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모금 측면에서 보면, 당시 카이스트에도 모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상당히 많으셨다고 들었다.


서 총장님은 '총장의 역할은 학교 발전을 위한 재정을 확보하는데 절반 이상의 시간을 쓰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셨다. 즉, 모금을 우선순위에 두셨는데, 다른 분들과는 입장차가 상당히 있었던 듯하고 서 총장님은 이러한 분위기를 바꾸고자 사람들을 바꾸셨던 것 같다. 당연히 이런 식의 접근은 큰 반대에 부딪히게 마련이고, 서 총장님은 소통의 부재라는 맹비난을 받아 자리에서 물러나셨다. 결과를 보면 서 총장님의 패배로 보인 듯했지만 그 과정에서 서 총장님은 밭을 갈아엎으신 듯하다. 교육 방식과 학내 문화를 국제 수준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를 하셨고, 모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들로 대체하신 것 같다. 그 결과 캠퍼스 안에는 모금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조직 문화가 안착되었고, 모금을 싫어하거나 피하는 사람이 주된 목소리가 되지 않고, 모금을 당연히 해야 하고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 것 같다.


대학의 사람들을 만나보면 홍해처럼 두 부류로 확 갈라진다. 모금을 경시하거나, 모금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결과는 안 봐도 안다. 태도가 행동을 결정하게 되니까. 이런 의미에서 카이스트가 모금을 잘할 수 있는 치명적인 이유는 캠퍼스 안에 모금에 대한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한 누군가가 있었고, 그 결과 모금하기 좋은 문화와 풍토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5. 먼저 뿌려놓은 것이 있어야 나중에 열매를 거둔다

오늘 씨를 뿌린다고 내일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것이 제일 어렵다. 대학 총장의 임기는 4년. 이 기간에 무슨 시도를 한다고 해서 원인 대비 결과를 규명할 수 있을만한 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 즉, 전임 총장 때 결정하고 꾸준히 씨를 뿌리고 노력을 해두면, 그다음 총장 때 열매가 걷힌다는 얘기다. 가끔씩 어느 대학이 현재 모금이 잘 되고 있다고 소문이 나고 언론에 보도되곤 하는데, 그것은 대부분 당대의 업적이 아니다. 내부 사람들은 다 안다. 외부에다 대놓고 그렇다고 말을 못 하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대학 총장의 임기 동안 노력한 결과가 당장 눈앞에 나타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음 임기를 위한 선거를 앞두고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우니, 단기적 성과에 집중하게 되고 긴 안목에서 정말 필요한 것들은 아무도 손대지 않게 되니 캠퍼스의 모금 밭은 엉겅퀴와 가시덤불이 우거지고 땅의 기력도 쇠해간다. 카이스트에는 서남표 총장님이 15년 전에 갈아놓은 밭에서 이제 씨가 뿌려지고 첫 열매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해서 열매를 딴다는 얘기가 들릴 것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이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대에 가서 그다음 총장님이 발을 갈고 가꾸는 노력을 소홀히 하게 되면, 그다음 대에는 반드시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경작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모금은 농경의 원칙이 적용된다. 때를 따라 하늘의 은혜도 구해야 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천혜와 같은, 예고 없는 고액기부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수고하지 않고 열매를 얻을 수는 없다. 좋은 농사를 지으려면 먼저 좋은 밭을 일구고, 좋은 씨앗들을 찾아야 하고, 수시로 돌보고 가꾸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정말로 카이스트와 우리나라 모든 대학, 그리고 모든 모금 조직들이 이러한 방식을 잘 받아들이고 체질로 만들어서 계속해서 잘 유지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끝>

작가의 이전글 카이스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