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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고양이 Aug 18. 2021

돌봄일기 #8 – 두드러기

몸은 벌써 알고 있다.


11주차

조금은 겁나는 인턴생활. 오랜 친구들에게 강제로 위로와 격려의 말을 받아냄. 뜻하지 않은 규칙적인 바른 생활로 잔잔한 활력이 생김. 한동안 정제된 탄수화물을 끊은 결과 밀가루를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는 체질로 바뀜. 젠장.









얼마 전 두드러기가 났다. 오랜만이었다. 청결하지 못한 거취로 바뀌면, 이를테면 본가에 있다가 기숙사로 옮기면 보통 두드러기가 났었다. 이번에는 기숙사 청소도 빠짐없이 하고, 자극적인 걸 먹지도 않았다. 두드러기 요인이라면 딱 두 가지, 스트레스와 밀가루다.      


매복사랑니를 빼면서 한동안 유동식만 먹었고, 조금 나은 뒤에는 닭 가슴살과 요거트만 먹으면서 뜻하지 않게 식단조절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내장에 태초의 상태로 돌아가고 난 다음부턴 조금만 먹어도 배불렀고, 몸도 가벼워진 것 같아 꽤 만족했다. 빵을 먹기 전까지.     


홈플러스 매대에 놓인 빵이 먹음직스러워 하나 집었다. 다음 날 한쪽을 뜯어 먹고, 그 다음날 나머지를 뜯어 먹었다. 그날 밤 등과 허리가 가렵기 시작했다. 그때는 별 생각을 않았다. 주말에 친구와 디저트카페에 가서 디저트를 신나게 해치우고 돌아온 밤, 사타구니부터 시작된 두드러기가 허벅지와 등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그냥 피부가 건조해서 가려운 수준이 아니었다. 모기에 물린 것처럼 피부가 부풀어 올랐고 피부의 열과 가려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찬물샤워를 두 번 해야 했다. 비상용으로 처박아놨던 두드러기 약을 먹고 30분이 지난 뒤 겨우 가라앉았다.      


앞으로 정제된 탄수화물은 많이 못 먹겠구나. 젠장. 

하지만 이 모든 원인이 밀가루가 아니라는 쪽에도 희망을 걸어보고 있다. 한의원에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긴장이 풀리면 몸의 열이 피부로 올라오는 거라 말한 적도 있었고, 작년과 재작년 두드러기로 고생했을 때 병원에서는 딱히 요인은 없고 그냥 ‘아다리가 안 맞아서’ 올라온 것일 수도 있다고 진단 내렸다.  













태어날 때부터 예민한 성정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엄마 뱃속에서부터 온갖 예민함은 다 달고 있었다. 축구선수처럼 발을 뻥 차는 차고 자꾸 움직여 엄마의 잠을 방해하는 신체적인 행위는 하지 않았다. 대신 모든 음식을 거부했다. 입맛도 없고, 보신하라고 지은 한약도 냄새가 나서 입에도 대지 못했다. 잘 못 먹으니 성질은 날카로워지지, 못먹기만 하면 몰라 늘 속이 울렁거리고 다 토하는 통에 엄마는 말 그대로 ‘예민보스’였다. 제대로 자지도 못했을 때는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빠가 미워 한 대 때렸단다.      


잠이 오냐? 그 말에 아빠는 잠이 오는데 어떡하노...하면서 엄마를 달래다 잠들었다고 한다.    

            

들어가는 족족 다 올려버리는 속에 그나마 들어가는 것은 매운 것이었다. 미식거리는 속을 참고 새빨간 짬뽕을 먹었는데, 그나마 먹을 땐 멀쩡했다가 한 두 시간도 되지 않아 죄다 게워냈다고 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들어간 덕인지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잘 먹는다.         


  

오늘은 왜 엄마의 입덧 이야기를 꺼냈는가 하면, 나의 첫 예민함을 입증해주는 단서이기 때문이다.      








무던함과 예민함




나는 꽤 무던한 아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다. 이거먹자, 저거먹자해도 그래, 마음대로 해 라고 답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정말 상관이 없음 절반, 상대에게 맞춰주기 위함이 절반이었다. 편식은 안 된다는 방침에 따라 싫어도 먹으려고 애썼고,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어린 아이들이 징그러워하는 개불이나 소간도 곧잘 먹었다.(물론 어른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시작했으나 먹다보니 생소한 것들이 참 맛나더라.)     


그렇기에 엄마로부터 너는 무척이나 예민한 아이였다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꽤 당황했다. 내가 어딜 봐서? 예정 분만시간보다 하루나 늦게 태어난 내가? 나올 생각을 않고 엄마 뱃속에서 꿈지럭거린 내가?   


  

잠을 자지 않고 분유를 먹지도 않아 계속 울어댔으며(아빠는 또 엄마에게 자다가 한 대 맞았다.) 고집이 세었고, 천식이 있어 조금만 공기가 탁해져도 바로 기침을 달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하반신의 모세혈관이 죄 터져 피부가 온통 붉게 부어올랐고 좋지 못한 대인관계에 남들보다 일찍 찾아온 사춘기로(그게 사춘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키우기 힘들었다고 했다.     





담담한 표정으로, 혹은 졸업했다는 으쓱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 예민하고 무던한 아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십대의 모든 순간을 날 세우고 살았으니 예민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내 탄생이 예민했건 무던했건 어쨌든 내 십대시절은 무심해야할 부분에서 예민했고 예민해야할 부분에서는 무심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는 무심하게 굴고 내 감정에는 예민하게 굴었어야했는데 정확히 반대로 행동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촉각을 곤두세운다고 사회성이 길러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내 감정에 무심하게 군다고 해서 내가 단단해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오히려 자라지 못한 ‘나’만 속에 늘어갔다.  




         

 나는 지금 어떤지 하나도 모르겠다. 무던한가, 예민한가? 예민한 척 자기연민에 빠지는 무심한 사람인가, 아니면 예민한데 무덤덤한 척하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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