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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고양이 Aug 09. 2021

돌봄일기 #7 – 가슴에 말뚝 박기

그렇지 않고는 이 구멍이 설명되질 않아

10주차

첫 인턴출근. 출퇴근으로 뜻하지 않은 규칙적인 생활. 과한 긴장으로 꿈자리가 사나움. 불안함도 공허함도 편안함도 아닌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일주일. 가슴통증 빈도는 줄었으나 아직 잔재. 엄마가 다시 약 타서 보내주기로 함. 마지막으로 드디어 매복사랑니 실밥 제거.











가슴          



이번 본가에 내려가서 한의원을 방문했다. 내가 한의원을 가는 이유는 딱 2가지이다. 기력이 허해져서 한약 먹을 필요를 느꼈다거나, 허리가 아프거나. 이번에는 둘 다 해당되지 않았다. 새로운 이유가 추가되었다. 가슴이 아파서.     


무슨 실연당한 사람 같은 소리냐 할 수 있는데, 문자 그대로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길고 차가운 쇠꼬챙이로 왼쪽 가슴을 푹 찌르는 통증. 한번 통증이 시작되면 적게는 십여 초, 길게는 10분 정도 지속된다. 어렸을 때는 이유 없이 아픈 가슴을 붙잡고 전생에 화살에 맞아 죽기라도 했는가 라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때 자주 느꼈던 통증이지만 그때는 별 생각하지 않았다. 한창 성장기라 몸의 기운이 들쑥날쑥해서 그러는 거겠지. 심리적인 요인 때문이겠지. 그때는 가슴보다는 허리가 더 아파 신경 쓰지도 않았다. 아무 일 없다고 쓸어내린 가슴이 이제 와서야 들고 일어난 것이다.      






가슴의 열     



한의원에서 문진을 하고, 원장쌤과 진료를 본 결과 가슴통증의 원인은 ‘열’이었다. 원래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이지만 가슴과 배쪽에 뭉쳐있어 순환이 잘 되지 않아 옛날에는 수족냉증과 변비가 심했었다. 지금은 생활습관이 많이 바뀌어서 손도 따뜻하고 볼일도 잘 보지만, 아직 완전히 정상체질이 된 건 아니었다.      


몸의 열이 가슴에 맺히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열을 받을 때 두 개가 뭉쳐져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라 했다. 제때 열을 풀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면 기흉 같은 것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사실 겁나서 인터넷에 쳐보니 심리적인 원인으로 가슴이 아플 때 주로 왼쪽 가슴과 가슴아래의 통증을 호소한다던데, 내 경우가 그 경우였던 것 같다.) 침을 맞고 약을 한번 먹어보고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면 한 번 더 먹자는 처방으로 진료는 끝났다. 원장선생님은 스트레칭을 하라는 권유와 함께 가끔 술을 먹는 것도 열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나는 기뻐했고 엄마는 못마땅해 했다.     


 원장선생님은 아주 옛날부터 나를 보고 ‘가지가 많은 나무’라고 생각했다. 아직 뿌리와 줄기가 단단하지 못한데 가지가 너무 많아서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린다고. 그날은 그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생각을 많이 하지 말라고 했다. 생각을 하고 머리를 쓸수록 열이 올라오고, 내 성질과 기질 자체가 생각이 많은 편이니 생각을 줄이고 어떤 것은 흘려보내는 것이 앞으로 좋을 거라고. 

그런데 어떻게 생각을 안할 수 있지.     





아무생각하지 말자라는 것은 내 인생에 있을 수 없는 문장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문장이 있듯이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내 생각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생각이 많은 밤, 잠에 들기 위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기 보단 다른 생각을 해야 했다. 현실에서는 일어날리 없는, 공상의 세계. 내가 그 소설 속 주인공이 된다면. 영화 속 그 장면에 있다면. 수천 번의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다 지쳐 잠에 들었다.     


그것도 한계에 부칠 때가 있다. 심호흡을 하자. 호흡에만 집중해보자. 집단상담에서 배웠던 명상을 해보는거야. 통증은 무방비 상태에 있을 때 찾아온다.   

   

쇠꼬챙이가 가슴에 박혀 빠지질 않는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가슴이 부풀어오를수록 통증이 심해진다. 참을 수 없을 지점에서 숨을 멈춘다. 그리고 다시 숨을 내쉰다. 이번에는 그 지점보다 작게 숨을 쉰다. 아프지 않다. 1분정도를 그렇게 작게 숨을 쉰다. 답답해서 크게 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로 천천히 숨을 쉰다. 그리고 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아픈가? 아프지 않은가? 아프지 않다면 다행이고, 아프다면 가슴을 붙잡고 다시 숨을 죽인다.     







말뚝 박기



아주 오래 전부터 했던 상상이 있다. 내 가슴, 통증을 느끼는 가슴 아래와 가슴 부분에 말뚝을 박아 넣는 것. 옛날 드라큘라가 살아나는 것이 무서워 말뚝을 박아 죽였던 사냥꾼처럼, 내 가슴에 말뚝을 박아 넣는 것. 순간적으로 심장이 꿰뚫리면 많이 아플까. 숨을 쉴 수 있을까? 어쩌면 숨을 쉴 필요도 없이 구멍이 뚫린 폐가 훤히 들여다보이지는 않을까.      


그렇게 말뚝을 상상하면 가슴의 답답함이 조금은 날아가는 것 같다. 지금의 답답함은, 현실의 어떤 사건이 아니라 말뚝 때문이라고. 말뚝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내가 빼낼 순 없어도, 적어도 내 눈앞에서 보이고 만져지는 것. 


말뚝은 가슴을 지나 등을 뚫는다. 그 상태로 사람들 사이에 서면 등이 춥다. 허리를 곧게 세우려고 해도 뚫린 구멍 때문에 몸을 떨며 벽에 밀착한다. 울렁거릴 속도 없지만 속을 게워낼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가슴의 통증은 사라지고 비워진 공간만 남는다.     





말뚝을 상상하면 가슴의 답답함이 조금은 날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내 등의 뻥 뚫린 구멍을 설명할 수 있다. 아무도 못 보는 내 구멍을, 그것 외에는 설명되지않는 그 구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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