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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고양이 Aug 29. 2021

돌봄일기 #9 – 아주 가끔 당신이 미운 밤

밤마다 중얼거리기

12주차

실수 많이 하는 인턴생활. 마음 같아서는 석고대죄하고 싶은데 실수했다는 사실에 얼어붙어 며칠 동안 예민함. 찌르는 가슴통증이 덜해지는 대신 가슴 아래가 콱콱 뭉치는 느낌에 별안간 지하철에서 쓰러지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될 뻔 함(다행히 사태 모면함). 비가 온다. 초여름의 생기도 한여름의 열기도 초가을의 산뜻함도 그 어느 것도 없는 비가 오고 우울한 주.

13주차

태풍으로 비가 잦고 마음이 안정됨. 날이 잠깐이라도 밝으면 우울해짐. 룸메이트와 ‘닭한마리’, 뿌링클을 해치움. 코로나가 끝나면 봐뒀던 예쁜 카페를 가기로 약속함. 기숙사 때문에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음성. 그러나 꿉꿉함을 없애려 튼 에어컨 때문에 비염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옴. 

꿈에서 비둘기가 목이 잘리고 동생이 죽었다.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는 습관 중 하나는 ‘중얼거리기’. 자주 중얼거린다. 앞에 누군가가 내 말을 듣고 있는 것 마냥 인터뷰 형식으로 중얼거린다. 어떨 때는 대사를 내뱉는다. 작품은, 내가 미래에 쓸 희곡들 중 하나. 머릿속에서 날라 다니는 생각들을 내뱉지 않으면 못 견딜 때가 있다. 물론 때와 장소를 가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순간들은 대체로 혼자 있을 때만 나타난다.       






    

중얼거리기




저주에 가까운 말, 비꼬는 말, 화내는 말, 두려움에 떠는 말, 횡설수설, 진정시키는 말 등등. 제정신이라면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말들이 머릿속에서 폭죽놀이 하듯 터지고 혀 밑에서 간질거린다. 수많은 말들을 하지만 절대 하지 않는 말이 있다. ‘나’를 긍정하는 말. 그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나는 아주 가끔 나를 타자로 인식한다. 물론 내가 나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내가 마치 남인 것 마냥 허공에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주로 하는 말은 질책이다. 



그러면 안됐지, 왜 그랬니? 멍청하게, 그럴 줄 알았어.


그런 말을 듣는 대상이 ‘나’라는 사실이 견딜 수 없다. 그래서 남한테 말하듯이 내 욕을 내가 한다. 욕을 듣는 나도 ‘나’지만 욕을 하는 나도 ‘나’니까, 둘 중 한쪽은 그나마 욕을 안 먹어도 되니까.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고 나면 내가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생각한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보면 원인은 계속 거슬러 올라가는데, 가끔은 모든 논리를 점프해서 빅뱅(우주대폭발)이 잘못했다 까지 가버린다. ‘나’는 모두에게 잘못한 사람이고 잘못된 아이가 된다. 사실 명확하게 알고 있다. 내 결핍이 어디에서 온 건지, 그때 나는 그렇게까지 잘못하지도, 잘못된 아이도 아니었다는 것을.   

  

그럴 때면 미워지는 당신을 원망한다.






아주 가끔 당신이 미운 밤




때에 따라서 미워지는 당신은 달라진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내가 잘해보려 했지만 나를 밀어낸 사람들, 어렸던 나에게 어느 것 하나 허락해주지 않았던 사람들, 내가 지금 이렇게 살게 만든 사람들. 당신을 두고 중얼거린다. 


그때의 내가 하지 못했던 말을 토해낸다. 입만 벙긋거리며 흉내 내다 점점 목에 힘이 들어가고, 목구멍에서 한 음절이 튀어나오는 순간부터 열이 확 치민다. 열에 들떠서 버벅대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내 눈앞의 당신에게 완벽하게 말할 수 있을 때 까지. 그때의 나를 내 뒤에 두고, 당신 앞에서 서서 말한다. 그건 그 애 잘못이 아니고, 설령 잘못이라 하더라도 당신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할 말을 다 하고 나면 당신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면서 조금 나아지는 기분을 느끼는 나 자신이 끔찍하게 느껴지고, 기분의 원인을 찾고, 그러다보면 다시 당신을 원망하고. 밤에는 당신을 원망하다 아침이 되면 그래도 무작정 불행하지 않길 원하고.     





아주 가끔 당신이 밉다.     


 

그때의 나에게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 했어야만 했는지, 나는 왜 그런 당신과 계속 함께하고 싶었는지. 잘 지내보고 싶었는지. 아주 가끔 당신이 밉다.     




사실 매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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