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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고양이 Oct 10. 2021

돌봄일기 #10 – 영혼이 없는 날들

14~15주차

매일 아침 불안에 떨며 일어난다. 지각하지는 않을까. 하루하루가 벅차다. 이렇게 살다가는 미칠 것 같은데 어떻게 안 미치고 살아 있다.

9월 셋째 주

업무를 이제 어느 정도 능숙하게 할 수 있다고 칭찬 아닌 칭찬을 받음. 본가에 가기 전 최대한 텐션을 올려본다. 이왕 며칠 있을 거 즐겁게 있으면 좋으니까.

9월 넷째 주

금토일월화수 다음에 왜 토요일이 아니지. 본가에서 요양을 마치고 2키로가 쪄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눈바디로는 큰 변화가 없다. 타격감 제로. 

9월 다섯째 주

졸작계획서를 붙잡고 멍하니 있다. 내가 뭘 하고 있지.



9월 총평 : 정신적으로는 몰라도 신체적으로는 기깔나게 나를 잘 돌보았음.     












       

       

인턴을 하고 있다. 단순업무와 같은 잔업을 위주로 시키는데, CS를 맞게 되었다. CS는 쉽게 말하면 고객에게 문의 혹은 불만사항을 접수하고 답변하는 일이다. 이 업무를 하다보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난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3가지로 정리된다.





진상의 현재진행형, 과거형, 부정형.    

 




고객은 진상과, 진상이었던 고객과, 진상이 아닌 고객으로 나뉜다.    

  

진상은 말 그대로 진상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며 문의가 아닌 통보 혹은 선전포고를 한다.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여기 말 안 듣는다는 것을 만 천하에 알리겠다와 같은 비슷한 형식을 사용한다. 그들에게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선택지는 자신들이 만들고 자기가 정한다. 이것은 대화가 아니다. 협상도 아니다. 그냥 마음에 안 들면 엎어버리겠다는 거다. 상황이 종료된 후에도 마뜩찮은 말들로 사람을 찝찝하게 만든다. 진작 이랬으면 좀 좋나 등의 말을 뱉는 그들은 당당히 승리를 쟁취한 모습이다. 쟁취가 아니라 갈취인데 말이지. 이들은 내 인류애를 절반으로 토막 낸다.   

  

진상이었던 자는 처음에는 진상보다 매우 강경한 태도로 나온다. 하지만 그들은 본인이 원하는 것만 해결되면 매우 유쾌하게 변한다. 화를 냈다가도 오해에서 빚어졌거나 문제 상황이 해결되면 ‘좋은 하루 보내세요^^’와 같은 이모티콘도 날려주는 것이다. 제법 귀엽다.   

  

진상이 아닌 자는 말 그대로 진상이 아니다. 앞의 두 분류에는 속하지 않는 모든 고객들을 말한다. 앞의 두 사례에 해당되지 않으면 나는 그들 하루의 행복을 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진심입니다.               






분명 기계가 똑똑하다며, 발전했다면서 왜 이런 건 감정노동 아닌 감정노동까지 인간이 하냐고. 그래도 인간이 하니까 나도 일하고 살겠지? 전부 기계가 했다면 나는 일자리 없이 굶어죽었겠지. 아니다, 노동은 기계가 하면 그로 얻은 수익은 재분배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럼 수익구조와 분배구조가 뒤집어질 테고... 

생각하지 말자. 난 내 하루로도 벅차니까. 






             

영혼 없이 살기

  



‘영혼 없다’는 말은 몇 년 새 자리 잡은 유행어다. 말에 진심이 없는 걸 영혼이 없다고 한다. 그럼 진심은 영혼인가?      


처음 문의업무를 맡았을 때의 말투와 지금의 말투는 완전 다르다. 처음에도 사무적으로는 써본다고 썼지만 지금 보면 너무 무른 말투다. 6개월이 지나고 보면 지금도 물러 터져 있겠지. 그래도 과장님이 이제 말투가 잡혔다고 했으니까. 


고객이 전전긍긍하면 덩달아 전전긍긍했다. 왜 안 되냐고(기한이 지난 교환 및 반품), 배송 등의 문제로 물어올 때 눈앞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왜 기계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타격감이 없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거다. 그 이상은 내가 못해준다. 어쩌라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그렇게 무뎌졌다고 생각해도 누군가 좋은 하루 보내란 말을 하면 코끝이 찡하고, 또 다시 진상고객이 들어오면 눈물이 나는 거다.         


 



객관적인 시선이 아닌 비소를 일침이랍시고 내뱉는 사람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건 속으로만 생각하란 말이야. 네 생각 따윈 궁금하지 않다고. 더 나아질 생각을 해야지, 냉소적인 말투로 말해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무얼 증명하기 위해 그런 태도를 고집하는 걸까.     






난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더미(dummy)처럼 살고 싶지 않다. 영혼이 있으면 영혼을 가진 채로, 살고 싶다.



우리 모두 조금만 더 친절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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