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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고양이 Nov 02. 2021

열무비빔밥 먹고싶다

이것은 필사적으로 잠에서 깨기 위한 새끼 인턴의 과몰입


우리 집에서 열무 비빔밥을 먹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열무김치를 넣어 먹는 비빔밥

두번째, 생열무를 넣어 먹는 비빔밥.



 첫번째부터 열거해볼까요.


우리 엄마는 줄기를 좋아합니다. 아삭하고 물기가 많다고 좋아하죠. 저는 톡 쏘는 맛이 일품인 국물을 좋아합니다. 그럼 열무김치를 먹을 때면 엄마는 건더기를 많이 건져먹고, 저는 국물이 많은 것을 제 쪽으로 가져옵니다. 


열무김치에다 밥을 비벼먹을 때는 주로 여름철 입맛이 없을 때 입니다. 뜨신밥에다(뜨신 밥이 없으면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열무 김치 건더기를 건져서 가위로 잘게 썰고, 거기다 약간의 고추장과 집에 있는 나물반찬을 잔반처리하듯 넣은 다음 참기름을 살짝 두르면 끝이죠. 참기름은 많이 넣을 필요 없습니다. 외할머니 댁에서 공수해온 조금만 넣어도 향이 진하게 퍼지는 진짜 좋은 참기름이거든요. 거기다 가끔 계란후라이를 얹어주면 그날은 환상입니다. 맛있는 비빔밥. 비주얼은 그닥이더라도 결국 싹싹 비워내고 말죠.



하지만 전 열무김치를 그닥 좋아하지 않으니 빨리 두번째 방법으로 넘어가봅시다.


날이 풀리면 마트에 생열무가 나옵니다. 그 전에도 나왔는지는 모릅니다. 겨울에는 국에다 밥 말아먹었으니까요. 어쨌든 생열무를 한 단 삽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씻습니다. 흙이나 불순물이 씹히면 기분이 나쁘잖아요. 우리의 이는 소중합니다. 20살이 되기 전 다 나버린 영구치로 우리는 최소 100살까지 살아야한다고요. 참고로 이집트 파라오들의 주된 사인은 치아질환이었다고 합니다. 고대의 제빵기술 중 밀가루에서 모래를 거르는 기술은 떨어졌나봅니다. (출처 우리집 책장에 꽂혀있는 <피라미드에서 살아남기> 中 )


어쨌든 열무를 다 씼었으면 먹을 만큼만 도마에 올려두고 나머지는 비닐봉지에 넣어 김치냉장고 안에 보관합니다. 김치냉장고는 참 좋습니다. 뭐든지 들어가면 수명을 늘려줍니다. 냉장고 문을 제대로 닫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엄마의 잔소리가 대략 7분간 이어집니다. 밥솥에서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안내가 나오기 전까지 열무를 썰어봅니다. 너무 크면 입에 들어갈때 걸거칩니다. 잘게 쫑쫑썰어줍니다. 그러나 너무 잘면 안됩니다. 식감이 다 죽으니까요. 적당히 쫑쫑 썰고 나면 도마에는 잘게 썬 열무가 수북합니다. 상추도 있다면 썰어줍니다. 야채가 다양하면 맛있잖아요. 부추도 좀 썰어줍니다. 다 못 먹을 것 같죠? 우리의 위는 위대합니다. 위는 뇌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더 먹을 수 있다 생각하면 더 먹을 수 있어요. 인간의 의지로 안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4분 남았을 즈음 계란 후라이를 합니다. 엄마는 완숙, 저와 동생은 반숙입니다. 사실 어떻게 먹든 상관없습니다. 스크램블로 먹어도 좋고 다 좋습니다. 계란과 기름이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날 식사는 맛있는 식사였다로 기억되거든요.


밥을 푸고 난 다음 열무를 올립니다. 상추도 부추도 비율에 맞게 올린다음 계란후라이를 얹습니다. 들깨빻은 것을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한 숟가락 넣고, 그리고 우리집 고추장을 한 숟가락 넣습니다. 우리집 고추장은 외할머니께서 만든 것으로, 많이 맵지 않고 달달합니다. 여기다 김가루도 충분히 넣습니다.


 이때 '안 많겠지?' 하면서 고추장을 충분히 넣습니다. 비벼보면 색이 많이 빨갛습니다.. 그럼 엄마는 간이 셀 것이라며 밥 혹은 야채를 더 넣어줄 것입니다. 이렇게 두끼 분량을 건강하게 먹는다는 이유로 한끼에 먹습니다. 많이 먹으면 안 질리냐고요? 많이 먹으면 많이 맛있죠.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넣습니다. 안 넣어도 맛있지만 안 넣으면 '아 맞다!'하면서 두고두고 후회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비염이라 큰 차이는 모르겠으나 넣으면 감칠맛이 더해진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열무비빔밥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죄책감이 들지 않습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튀김이나 고기를 먹는 것도 아니고, 국물을 먹는 것도 아니니까요. 물론 다량의 탄수화물이 한꺼번에 들어갑니다. 전 그결과로 약 두달만에 3키로가 쪘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감내해야할 몫이었음을 이미 알고 있는 까닭이죠. 










 기숙사에서 살다보면 아채와 채소, 과일이 아쉽습니다. 집에서는 싫어잉 하고 쳐다도 안봤는데 지금은 몸에서 안먹으면 당장 파업해버릴테다 하고 경고를 주네요. 기력이 없습니다. 고기를 먹어서 생기는 기력이 아니라, 야채와 채소를 먹었을 때 그 푸릇한 기력이 없어요. 피부가 탁해지는 것 같고 생기가 없습니다. 밖에 나가 샐러드나 생 야채가 보이면 '야채다!'하고 좀비처럼 허겁지겁 먹습니다. 어른들이 나물 반찬을 찾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맛도 있겠지만 생존에 가까운 심정이었음을.


  배고파요. 열무비빔밥 먹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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