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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고양이 Nov 03. 2021

김치찌개 먹고싶다

이것은 필사적으로 잠에서 깨기 위한 새끼 인턴의 과몰입2

배가 고픕니다.

오늘은 김치찌개가 먹고 싶습니다.








김치찌개에 김치말고 들어가는 단백질원은 집집마다 다양합니다. 

햄, 소시지, 어묵, 돼지고기, 꽁치, 두부 등등.

우리집은 예로부터 꽁치를 넣은 김치찌개를 끓였습니다.

 (사실 첫 김치찌개의 기억은 어묵이었으나 가장 맛있는 김치찌개의 기억은 꽁치입니다. 언제 수정이 더해질지는 모르나 현재 최신수정완성본은 꽁치 김치찌개입니다.)



 김치찌개를 맛있게 끓이기 위해서는 세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1. 맛있는 김치를 준비할 것
2. 푹 끓일 것
3. 멸치액젓을 준비할 것


 이 세가지가 전부라고 하면 과언입니다. 집집마다 다른 비법이 있을테죠. 

댓글로 적어주세요. 나중에 자취할 때 참고하게.



  어쨌든 우리 집 비법의 첫번째는 맛있는 김치입니다.

김장김치는 아까우니 냅두고 전에 담았던 김치통을 꺼냅니다. 무겁습니다. 하지만 감당해야죠. 잠깐의 무거움을 참으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으니까요. 가끔 보면 김치국물에 담겨있지 않은 김치포기는 겉에 연한 하얀색으로 곰팡이(보송보송한 것 아님)가 생깁니다. 먹어도 됩니다. 탈 안납니다. 하지만 정 찝찝하면 가위로 잘라줍시다. 


우리나라 식가위의 위력을 아십니까? 칼로 썰기 힘든 것을 숭덩숭덩 잘도 잘라주죠. 해외에서는 고기를 가위로 써는 게 이상하다고 합니다. 불쌍한 사람들, 이렇게 편한 것을 모르다니. 몇년 전 호미가 해외에 알려지면서 정원을 가꾸는 외국인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합니다. 거긴 이런 게 없나보죠? 이제 우리는 우리나라 식가위의 위력을 전해야 할 때입니다. 


 약간의 문화 자부심과 애국심을 채우며 김치를 한입크기로 썰어줍니다. 두 포기 정도 썰어줍시다. 4인가족 기준 큰 포기 두 개지만 작은 포기만 있다면 세 개도 괜찮습니다. 사실 냄비에 넘치지 않을 양이면 됩니다. 넘치면 가스레인지 닦기 귀찮으니까요. 양파도 있으면 썰어넣어줍니다. 모양은 중요하지 않아요.


 여기서 외할머니집에서 공수해온 들끼름 조금과 식용유를 섞어 냄비에 넣습니다. 엄마는 너무 많이 넣으면 기름 둥둥 뜬다고 싫어하지만 저는 넉넉한 것이 좋으니 두바퀴 휙 둘러줍니다. 들기름을 넣는 이유는 들기름을 넣어서 김치를 볶으면 김치가 누렇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딱 먹음직스러운 황금빛으로 변하죠. 안 넣어도 됩니다. 없으면 생략하고 더 푹 끓이면 됩니다. 하지만 있다면 넣어보십쇼. 후회하지 않을겁니다.


 김치줄기가 숨이 좀 죽어 반투명해졌다 싶을 때 꽁치통조림을 넣습니다. 하나면 충분합니다. 통조림 하나에 꽁치가 대여섯토막정도 들어가있거든요. 만약 불이 세서 김치는 숨이 덜 죽었는데 눌러 붙는다 싶으면, 혹은 그냥 좀 더 익힌 다음 물 넣고 싶다 하면 꽁치통조림 국물을 넣으세요. 고든램지가 맨날 입에 달고사는 '카라멜라이징'아시나요? 우리말로 하면 '진짜 맛의 진수가 들어있는 냄비에 눌러붙은 것'입니다. 꽁치통조림국물이 눌러붙은 걸 싹 씻겨내줄겁니다. 그럼 당신은 절반 이상 성공한 셈입니다. 거기서 볶다가 당장 불 끄고 밥 비벼먹지 않은 것 만으로도 당신은 장합니다. 여기까지 참은 우리는 이제 물을 넣어봅시다. 



 김치가 잠길만큼 물을 넣습니다. 

두부도 넣어줍니다. 꽁치와 김치만 있으면 양이 아쉬우니 두부를 적당히 썰어 넣습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계속 기다려요. 뚜껑을 완전히 닫으면 넘치니 살짝만 비스듬히 걸쳐둔 채로 계속 끓입니다. 여기서 비법 2가 나옵니다. 적당히 끓고 됐다, 먹자 하고 입에 넣으면 김치줄기가 서걱 씹힙니다. 이렇게 되면 양념이 푹 배겨 보드라운 잎 부분만 먹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초등학교까지 김치찌개를 먹었죠. 

어느날 엄마는 김치찌개를 제 앞에 내려다두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날은 우리집 김치찌개의 새 역사가 시작된 날입니다. 줄기까지 보드라운, 챱챱 먹을 수 있는 김치찌개가 완성된 것이죠. 기다림의 미학은 딴 게 아니고 이런겁니다. 


 이제 다 됐으면 간을 봅니다. 

보통 이정도면 따로 간을 안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가끔 싱거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는 비법 3이 등장합니다. 냉장고에서 멸치액젓을 꺼내 쪼륵 부어줍니다. 쭉도 아니고 찔끔도 아닌 쪼륵입니다. 쪼륵. 기억하세요. 멸치액젓은 쪼륵. 김치찌개뿐만이 아니라 맛이 좀 아쉽다 싶으면 멸치액젓을 쪼륵 혹은 쪼록 넣어줍니다. 그럼 놀라울 정도로 맛의 균형이 잡힙니다. 원리는 모르겠습니다. 뭐 농축된 맛이 김치찌개를 만나 활개를 치는 것 아닐까요.










  김치찌개를 한냄비 끓여놔도 사흘을 넘기지 못합니다. 집 식구들 아침 저녁으로 푸고 나면 금방 없어지고, 저랑 동생이 밤에 몰래 꽁치를 건져먹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때 공부한다는 핑계로 늦게까지 깨어있다가 모두 잠들고 나면 몰래 한 그릇을 퍼먹습니다. 나름 티나지 않게 먹으려고 꽁치 반토막, 김치 조금, 국물 간이 푹 밴 두부. 두부가 밥 역할을 해줍니다. 한 그릇만 먹으면 아쉽습니다. 양말을 신어 발소리를 죽이는 철두철미함을 뽐내며 부엌으로 가 한 그릇 더 퍼먹습니다. 몰래 먹는게 더 스릴넘치고 맛있습니다. 다음 날 확 줄어든 김치찌개를 보고 엄마는 알아챘을테지만요. 그렇게 고3때 살이 10키로가 쪘죠. 다행히도 집을 떠나니 금방 빠지더군요.


하도 김치찌개를 먹으니 동생은 김치찌개에 질려버렸습니다. 원래도 하얀국물을 좋아하던 애가 더 하얀국물러버가 되었더군요. 하지만 어쩌라고입니다. 기숙사에선 그 맛을 느낄 수 없으니 본가에서 끓여먹는 수 밖에요. 뱃속 뜨뜻하게 채워주면서 알찬 건더기 집어먹는 재미가 있는 김치찌개가 그립습니다.

 

배고파요. 김치찌개 먹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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