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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고양이 Nov 04. 2021

찹쌀밥 먹고싶다

이것은 필사적으로 잠에서 깨기 위한 새끼 인턴의 과몰입3

배가 고픕니다.

오늘은 찹쌀밥이 먹고 싶습니다.







요즘같이 날이 쌀쌀하면 따뜻한 음식으로 속을 덥히고 싶습니다.

국물도 좋지만 그냥 국물보다는 건더기가 있는 국물이, 그냥 국보다는 밥이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찹쌀은 찰기가 있고 입에 들어가면 반지르르한 윤기가 촉감으로 느껴집니다. 늘 먹던 현미밥보다 잘 들어갑니다. 우리 집은 이 찹쌀밥을 백숙 먹을 때 하곤 합니다. 그냥 밥솥에 해도 맛있지만 제일 맛있는 방법은 백숙과 함께 끓이는 방법입니다.



 우선 닭을 준비합니다.

백숙용 닭이면 됩니다. 물론 저는 친할머니댁에 애교를 부려(기숙사에 있으니 영양이 부족하다, 이번에 뭐 학점이 잘나왔느니 등등) 얻어낸 토종닭을 준비합니다. 할아버지는 동물을 잘 키웁니다. 옛날에는 말도 키워 팔았다 하더라고요. 친가집은 과수원농사를 하기때문에 전에는 멧돼지 수렵허가를 받아 덫을 놓고 사냥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따라 갔을 때는 멧돼지를 잡지 못했지만 고라니는 실컷봤죠. 할아버지는 덩치 큰 놈으로 잡아다 초벌로 손질을 해줍니다.


토종닭은 살이 부드럽지 않고 질깁니다. 찔기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질깁니다. 다리도 길쭉하고, 목도 길고 덩치도 큽니다. 수북한 털을 뜯고 나면 살은 크게 많지 않아보여도 덩치란 게 있잖습니까. 집에 와서 한번 더 세척합니다. 황기와 가시가 잔뜩 박힌 나무토막(무슨 나무라고 했는데 몸에 좋다는 것만 기억납니다.) 대추, 마늘, 녹두 등등을 넣고 푹 삶습니다.



 바로 이때 찹쌀을 넣어줍니다.

면보(라고 해야하나요 삼베주머니처럼 생겼기는 한데)에 찹쌀을 넣고 같이 끓여줍니다. 마트에서 파는 닭을 삶으면 국물이 뽀얗지만 토종닭은 누런 기름이 뜹니다. 어른들이 주로 약이 된다고 하는 기름이죠. 하지만 너무 많으면 속이 울렁거릴테니 적당히 걷어줍니다.


닭 육수를 머금은 찹쌀은 원래의 윤기보다 더 뽀얗고 반지르르합니다. 원래도 찹쌀 알이 하얀 색이었는데 이제 약간의 투명함까지 갖춥니다. 식욕을 당기게 하는 것에는 이만한 것이 없죠. 꼬들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안좋아할 수도 있겠네요. 조금 진 밥 느낌이 나거든요. 하지만 애초에 꼬들밥 좋아하는 사람이 찹쌀을 먹습니까? 쌀알의 촉촉함과 부드러움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다 먹을겁니다.


어쨌든 닭백숙을 할때면 늘 찹쌀밥에 간을 살짝 해놓은 상태에서 말아먹었지만, 육수와 함께 끓인 찹쌀밥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미 밥알 자체에 육수의 맛이 촉촉하게 배여있다고요. 이제 메인은 닭이 아닌 찹쌀밥이 됩니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은 많습니다.

늘 하던대로 소금간을 하고 잘게 썬 파를 올린 육수에 말아먹는 방법이 있죠. 속을 뜨뜻하게 해주고 양기를 보충하는 데 아주 최고입니다. 여기에 김치를 얹어먹어도 맛있죠. 약간의 새콤하고 매콤한, 아삭한 김치를 올려먹어도 좋고 달달한 파김치를 올려 먹어도 좋습니다. 온갖 봄나물과 먹어도, 집에 있는 나물반찬들을 처리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일 맛있는 것은 청양 넣은 간장소스인것 같습니다. 간장과 청양 이외에 무엇이 들어가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국물 푸느라 바빴거든요. 어쨌든 맑은 간장양념장에다 청양을 다져넣습니다. 그리고 그 양념장 한숟가락을 밥에다 뿌리고 비비듯이 먹습니다. 그럼 적당한 짭조름함과 청양의 알싸한 매콤함이 혓바닥 중앙을 탁 칩니다. 그리고 화끈거릴 무렵 보드라운 찹쌀밥이 포근히 덮습니다. 그 재미에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먹다 보면 밥그릇 바닥만 긁고 있습니다. 네, 다 먹어버린 것이죠. 아쉬움은 뜨끈한 국물 한 그릇으로 달래봅니다.










 쌀은 원래도 싼 편이 아니지만(사실 잘 모릅니다. 지금까지 외갓집에서 쌀을 공수해왔기 때문에) 찹쌀은 확실히 비쌉니다. 맛있으니까요. 사실 비싼 건 품종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그런 것은 잘 모릅니다. 그저 탈곡할 때 도리깨질 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지만 알죠. 쌀 말고 콩을 마당에다 한포대 부어놓고 도리깨질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제대로 들지도 못했던 것 같은데, 도리깨를 바닥에 텅 내려놓자 콩깍지들이 팝콘 튀듯이 튀었습니다. 빈 콩깍지를 슥슥 밀어내자 바닥에 깔아둔 천에는 마른 콩이 알알이 있었고요. 외할아버지는 아이구 잘한다, 하고 칭찬한 뒤 도리깨를 가져가 당신이 마저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일을 도왔다는 생각에 의기양양했죠.


외갓집은 자두농사와 쌀농사를 지었습니다. 자두는 지금도 따는 걸로 알지만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적보다는 규모가 줄었습니다. 그래도 외할머니는 고추밭에서 딴 고추며, 나물이며 자연친화적 식단에 없으면 아쉬운 것들을 잔뜩 주십니다. 할머니의 모든 요리를 사랑하지만 오늘 먹고 싶은 것은 외할머니 댁에서 가져온 찹쌀입니다.


배고파요. 뜨끈한 찹쌀밥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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