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인턴, 굴 먹고싶다
이것은 정신적 허기를 달래기 위한 새끼인턴의 먹부림3
배가 고픕니다.
오늘은 굴이 먹고 싶습니다.
며칠 춥다고 뜨뜻한 것만 먹었더니 산뜻한 것이 먹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얼음을 먹기는 좀 아닌 것 같고, 상큼한 과일도 땡기는 날은 아닙니다. 겨울 제철음식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다 하나가 생각났습니다.겨울이 되면 우리집에서 꼭 먹는것이 있습니다.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는, 외양과 냄새, 비릿한맛때문에 꺼리는 이들이 많지만 한번 맛들리면 기가 막히는 생물. 굴입니다.
굴밥
우리 집은 해산물을 싫어하는 동생을 제외하고 굴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굴밥을 해먹죠. 굴밥을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쌀을 잘 씻어서 안쳐놓고, 굴 한봉다리 사다 바가지에 넣고 잘 씻습니다. 깨끗해보여도 우리 눈에 안보이는 이물질들이 많을 수 있으니 박박 씻습니다. 그렇다고 내장이 터질정도로 세게 쥐면 안됩니다. 굴맛은 내장맛이라고요. 굴을 잘 씻었으면 밥솥에 앉힌 밥위에 올려줍니다. 굴만 넣기에 좀 그러면 무밥 할 때 처럼 무도 채썰어 넣어줍니다. 사실 무밥만 먹어도 달달한 것이 맛있지만 굴이 있으면 더 맛있잖아요? 맛있는게 두개나 있으면 맛도 두배죠.
밥을 준비 다했다면 이제 양념장이 있어야죠. 안타깝게도 양념장의 레시피는 아직 전수받지 못했습니다. 간장과 고춧가루, 약간의 꿀 혹은 매실액, 그리고 다량의 짠파 혹은 부추 쫑쫑 썬것, 마늘 등등이 들어가는 우리 집 '찍어먹는 양념장'을 꺼냅니다. 양념장을 적당히 덜어 밥 위에 올리고, 외할머니 집에서 공수해온 참기름을 쪼륵 붓고 슥슥 비벼줍니다. 그리고 크게 한 입 떠 먹습니다.
개인적으로 향을 잘 맡지 못합니다. 어릴때 천식을 앓았고 그게 지금은 비염으로 발현이 되어 냄새를 잘 맡지 못해요. 애들이 핸드크림바르고 냄새맡아봐 좋지?라고 할때마다 당황스럽습니다. 코에서 무슨 느낌이 드는 것 같긴한데 그게 뭔지 모르겠거든요. 식초나 독한 냄새, 이를테면 가죽에서 나는 화학약품냄새는 맡을 수 있지만 그것도 통증으로 느껴요. 하지만 이런 코에도 굴밥의 향기는 납니다. 기가 막히게요.
뭐라 표현하기 힘든 굴 특유의 향이 밥 위에 오르는 김에 섞여 확 느껴집니다. 입안에는 양념과 잘 조화된 굴밥이 굴러다니죠. 보들하고 촉촉하고, 해산물 특유의 해초맛도 나면서, 약간 고소하기도 합니다. 별다른 반찬 없이 밥만 먹어도 배부르죠.
매생이굴국밥
이건 비교적 우리집 최근 메뉴입니다. 어느 날 엄마가 매생이 한 팩을 마트에서 사왔죠. 그리고 그날 점심 매생이 굴국밥을 먹게 되었고, 저는 맛있어서 눈물을 흘렸죠. 뜨거워서 콧물도 조금 났습니다. 그 뒤로 굴철이 오면 겨울에 매생이굴국밥을 자주 해먹습니다.
매생이를 사서 깨끗하게 씻습니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잖아요, 우리 가족 먹을 것에는 불순물 하나라도 들어가면 안된다. 우리 엄마도 예외는 아닙니다. 뭔가 미심쩍어보이는 불수물은 싹 씻어낸 뒤 그릇에 담아둡니다. 매생이는 나중을 위해 쓰일 예정이죠. 굴도 똑같이 씻고 다른 그릇에 담아줍니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냅니다. 만약 국밥이 아닌 매생이굴떡국을 하고 싶다면 지금 물에 불려둔 떡국 떡을 넣으면 됩니다. 떡이 반쯤 떠오르기 전에 굴을 넣고 익기를 기다립니다. 어느정도 다 익었다 싶으면 계란물을 풀어 넣어주고, 파도 넣어줍니다. 칼칼함을 원한다면 청양과 후추를 넣습니다. 다 익었다, 그러면 이제 매생이를 넣어줍니다. 매생이를 넣고 절대로 오래 끓이면 안됩니다. 그럼 매생이 색이 거무죽죽하고 맛없는 색이 나옵니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히 끓인 매생이는 새파란 녹색, 비취와 비슷한 색을 띱니다.
매생이는 뜨겁습니다. 잘못하고 한입에 확 집어넣었다가는 입천장을 데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미운 사위에 매생이국 준다'는 속담도 있지요. 먹고 입이나 확 데여라, 하고요. 하지만 매생이는 피부미용과 숙취해소에 효고가 있으며 혈관질환을 개선해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철분이 많아서 빈혈개선에도 좋고요. 굴은 또 아연과 철분 등이 다양하게 함유되어있어 콜레스테롤 감소에도 도움이 됩니다. 다시 말해 보약이라는 소리죠.
향긋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느 매생이와 굴을 먹고, 칼칼한 국물을 떠먹다보면 온몸의 추위가 풀리고 노곤해집니다. 돼지국밥처럼 육고기가 들어간 국밥과 달리 속이 기름지지도 않고 깔끔합니다.
생굴
하지만 역시 굴은 뭐니뭐니해도 생물로 먹는게 제일 아니겠습니까. 신선한 제철굴을 구해다 초장에 딱 찍어먹으면 그 맛이 환상이지요. 날것을 먹으니 소주도 마셔줍니다. 물론 소주마신다고 위가 소독 될거였으면 진작에 구충제를 먹을 필요가 없었겠지만 말이에요. 그냥 술먹고 싶은 어른들의 낭설입니다. 한두잔은 괜찮은데 술이 만약 달고 그날따라 쓰지 않다면 잔을 내려놔야합니다. 분명 주량을 넘길때까지 마시고 새벽에 술병을 앓을테니까요. 그러니 기분좋게 생으로 굴만 즐깁시다.
신선한 굴을 먹으면 어느순간 달짝지근한 맛도 느껴집니다. 설탕이나 사탕의 단맛은 아닌데, 해산물 특유의 향과 맛에서 나오는 단맛입니다. 멍게의 맛이 간혹 씁쓸할때도 있지만 신선한 멍게는 먹고 난 다음 입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때 입안에서 단 맛이 납니다. 그게 멍게 향일까요? 그렇다면 저는 혀로 향을 느끼네요. 멍게 살 자체의 맛은 좋아하지 않지만 횟집에서 멍게가 나오면 꼭 먹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신선한 해산물은 짭짤한 바다내음과 함께 향긋한 단 맛이 있어요.
미끌거리는 굴을 젓가락으로 딱 집어 초장에 푹 찍어서 입안에 넣습니다. 그리고 급하게 꿀떡 삼키지 말고 천천히 씹습니다. 초장맛이 입에 확 들어와서 입맛을 돋구고, 뒤이은 굴의 내장맛을 즐기는겁니다. 그 다음 미끌한 굴의 씹는 맛을 잠시 즐기는거죠. 꼭 바나나를 처음 먹은 기영이마냥 '이게... 바다...?'하며 먹습니다.
한입 한입이 즐거워요.
집이 아니고 아직 자취를 하는게 아니다보니 생물을 사서 먹는 게 부담스럽습니다. 손질이며 먹고 쓰레기버리는 것 까지 일이죠. 그래서 나중에, 나중에라고 속삭이지만 가끔 밤에 마트에 가면 수산코너에서 할인붙여놓은 굴을 볼때면 눈이 막 돌아갑니다. 꼭 한봉지 집었다가 진정하자고 중얼거리며 내려놓죠.
배가 고파요.
굴 먹고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