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뜨라 에세이) 내가 치유되면 내 조상도 치유됩니다.

by 릴라 도요



엄마나 나나 전날 저녁에 해 먹고 남은 음식을 보온도시락에 싸다니곤 한다. 마주 보고 함께 점심 먹던 어느 날, 다 먹고 도시락 통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엄마가 말씀하신다.


엄마: “이렇게 뜨거운 물 부어서 서너 번 헹구고 희지로 닦아 놓으면, 나중에 집 가서 설거지하기가 훨씬 편해!”


나: (놀리며)“엄마, 희지 말고 휴지로 닦으면 안 돼? ㅋㅋㅋ”


엄마: “ㅋㅋㅋ알았졍~ 휴-지. 아따~ 우리 전라도는 어쩔 수 없어야~”


나: “에이, 나도 전라도 사람이랑 같이 사는데? 그것도 쌍촌동 사람이랑.”


외갓집도, 시댁도 광주 쌍촌동(현. 상무동)이다. 결혼하려고 보니 외갓집에서 5분 거리였던 것!


엄마: “그니까~ 그거 참 신기하지. 그 멀리 핀란드까지 가서 쌍촌동 사람을 만나고 말이야. 요새 내가 양자역학을 공부하는데, 세상에 그냥 일어나는 건 없더라고. 다 이유가 있고, 그에 따라 끌어당김이 생기고… 죽음도 끝이 아니야 “


나: “맞아. 상태 변화지!”


엄마: “그래! 맞아. 양자 세계를 공부하다 보면 불교도 더 잘 이해하게 돼. 진짜 재밌어.”


나: “응, 그런 걸 알면 사소한 것들에 덜 집착하게 되고, 삶이 좀 가벼워지지!!”


엄마: “그래, 진짜 그래.”



감히 깨어남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깨어남’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몇 해 전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며 위태로워 보이기만 했던 때를 생각하면 우리가 이런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다.


나를 알아갈수록 내 경계를 바로 세울 수 있었고,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 힘들어하더라도 내가 나를 먼저 보살필 때야 비로소 타인도 있는 그대로 볼 여유가 생겼다.

진실과 진실 아닌 것이 걸러질 때 부모님 사랑이 더 잘 느껴졌다. ‘이건 엄마의 상스까라구나.’

‘그럼에도 이걸 주고 싶어 하는구나.’

우리네의 드라마만 보는 게 아니라 보다 다면적인 사랑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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