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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 Kim Oct 13. 2020

할머니 필라테스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들

필라테스를 하러 갔을 때의 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할머니 필라테스 선생님이 클래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필라테스 선생님이라 하면 떠오르는 필라테스로 다져진 늘씬하고 탄탄한 몸매의 젊은 선생님이 아닌 머리가 하얀 나이가 좀 있으신 필라테스 선생님은 새롭게 느껴졌다. 드디어 레슨이 시작되고 여리한 몸과 다르게 굉장히 카리스마가 넘치는 힘찬 목소리로 클래스를 이끌어 가셨다. 


다리를 쭉 뻗어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동작에 다들 뱃살과 다리를 부들부들 거리는 동안 선생님은 모든 동작을 완벽하게 우리 앞에서 하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작이야" 하며 심지어 장난까지 치는 여유까지 보여주신다. 클래스 안엔 20살 초반부터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이 함께 했는데 나이와 상관없이 선생님은 다르구나를 우리 눈앞에서 증명하고 있는 듯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필라테스로 다져진 그녀의 건강한 몸과 열정이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필라테스 강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 것일까. 그리고 나이가 들어 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젊은 사람들보다 약하거나 뒤쳐져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얼마나 오만한 마음인가.


나의  유럽생활에서 나를 종종 놀라게 하는 것은 아마 이런 것들 일지도 모르겠다. 당연히라고 치부되던 것들이 그렇지 않음을 보는 순간들 말이다. 유럽에서 생활하는 동안 난 통통한 체형의 유연한 요가 선생님을 만나적도 있고 임신한 볼록한 배와 함께 열정적으로 줌바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보았다. 말을 더듬고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광고회사의 부장을 만나적도 있다. 


어떻게 보이는 것과 사회적 편견에 상관없이 본질적으로 그들은 그들의 일을 굉장히 잘 해내는 사람들이고 그거면 되는 거 아닐까. 가끔 우리 사회는 불필요한 완벽주의를 기대할 때가 있는 듯하다. 공부도 잘해야 해, 얼굴도 예쁘고 잘생겨야 해, 키도 크고 몸매도 좋아야 해, 스타일도 좋아야 해, 피부도 좋아야 해, 머릿결도 좋아야 해, 센스도 있어야 해, 노래도 잘 불러야, 목소리도 좋아야 해, 운동도 잘해야 해, 동안이어야 등등 공식적으로 나와있진 않지만 누군가 비밀리에 나누어준 듯한 체크박스를 하나하나 체크하듯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인간형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런 불필요한 기대감들을 조금 덜어내고 나면 좀 더 본질적인 것들이 더 환하게 보일 것이다. 할머니 필라테스 선생님의 탄탄한 배와 다리 근육을 보며 그동안 운동을 미뤄왔던 나에게도 희망이 생겼다. 지금부터라도 운동을 시작하고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몸을 만든다는 것이 늦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꾸준히 관리를 잘한다면 나이가 많이 먹는다는 것이 꼭 젊은 사람들보다 신체적으로 뒤쳐진다는 의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말이다. 


인간은 자신이 무언가를 멈추기를 결심하지 않는 이상 타인이 누군가를 엉뚱한 선입견, 나이, 장애, 외적인 것들 등을 자신들 마음대로 정의하고 그들의 열정을 멈추게 해서도 안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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