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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 Kim Oct 23. 2020

내성적일 권리. 내성적인 게 죄는 아니잖아!


유럽에선 내성적인 성격이라도 미팅 등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경우 매우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다들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마디도 안 하고 그저 앉아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힐끔힐끔 눈치를 줄 때도 있고 종종 "넌 어떻게 생각해?"라고 질문을 던져 대화에 참여하게 이끌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도 안 하고 조용히 앉아 웃고만 있으면 자칫 자신감이 없거나 존재감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외향적인 성격 ( Extrovert )는 파티, 모임 등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힘을 얻는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앞쪽에 앉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것을 즐긴다. 반면 내향적인 성격 ( Intorvert )인 성격은 조용히 집에서 책을 읽거나 영화 보는 것 등 조용한 자신만의 시간을 통해 힘을 얻고 너무 많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쉽게 피곤함을 느낀다. 이 둘의 성향은 거의 반대라고 보면 된다. 


원래 외향적인 성향으로 타고난 사람들에겐 해외에서의 단체 생활과 회사 생활등이 조금은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향의 사람들에겐 자신의 천성과는 상관없이 외향적 인척을 해야 하는 상황이 꽤 자주 생긴다. 그래서 종종 내성적일 권리가 없어 보인다고 느껴진다. 한국에 살았을 땐 조용한 성격의 사람은 저 사람은 조금 과묵한 성격이라고 인정을 하고 조금 쑥스러움을 많이 타거나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도 한 성격의 카테고리로 받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이론상으론 사람의 성향이 다양함을 다 알고 있는 듯해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거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 되기가 십상이다. 


나는 외향적 인척 하는 내성적인 사람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선 사회성 버튼을 눌러 다양한 사람들과 사교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미팅 등에서 나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망설임 없이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면 즐거웠건 아니었건 일단 기가 빨린 느낌이다.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다시 충전해야 한다. 외국에서 몇 년을 생활하다 보니 생존을 위해 이런 모순적인 성향의 사람이 된 것도 같다. 그리고 이건 나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얼마 전 여러 외국인 엄마들과 커피타임을 가졌다. 역시나 왁자지껄 다들 숨도 안 쉬며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중 내 옆에 앉았던 엄마가 자신의 일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하며 사실 자신은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워낙 모임 초기부터 명량하게 대화를 이끌어 가던 그녀의 그런 고백은 다들 에이 말도 안 돼. 전혀 그렇지 않다는 답변 세례를 받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회사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외향적인 사람인 것처럼 폴싱 ( Forcing : 어쩔 수 없이 하게 만들다. ) 하는 것뿐이지 평상시엔 자기 엄청 조용하고 쑥쓰럼이 많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엄마는 평상시 학교 주변에서 사람들을 만나도 살짝 눈웃음을 하는 정도로 조용히 이동할 뿐 적극적으로 안부나 스몰토크를 나누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날의 커피타임의 수다스럽고 대화에 적극적이었던 그녀의 모습 역시도 아마 그녀의 내성적인 본캐라기 보단 외향적 인척 하는 그녀의 부캐였으리라. 


세상엔 외향적인 사람만큼 내성적인 사람들도 정말 많다. 그리고 그건 잘못된 것도, 자신감이 없는 것도 아닌 그저 사람의 성향 중 하나일 뿐이다. 심지어 내성적인 사람은 그 성격만의 차분함과 꼼꼼함의 장점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유명인들 중 아인슈타인, 빌 게이트, 스티븐 스필버그, 뉴턴, 링컨 등도 사실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마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내성적인 척해봐 라고 하면 반대 성향의 사람인척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도 있을까? 내성적인 사람에게도 내성적일 권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숫기가 하나도 없냐 혹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나대는 거야 라는 다른 성향의 사람들에 대한 오해와 색안경 대신 각자 다른 성향의 사람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서로의 장단점 등을 절충하기가 더욱 쉬워지기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리 외향적 세상이라도 자신의 내향적 장점 등을 잘 활용하고 가끔은 오해를 받기 전에 솔직히 난 내성적인 사람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역시도 필요한 것 같다. 나의 내성적일 권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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