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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 Kim Oct 27. 2020

해외 생활하며 다시 바라보게 되는 서울에서의 삶

좋은 것들이라도 매일 당연하고 쉽게 접하다 보면 그것의 진가와 소중함을 모르고 있을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서울에서 살 땐 몰랐던 당연히 받아들였던 것들의 소중함을 유럽에서 생활하면서 깨닫게 되고 그것의 가치를 다시 보게 된다. 


오랜만에 한국에 놀러 갔을 때였다. 친정집 아파트 앞쪽에 슈퍼가 하나 있었다. 슈퍼보다 편의점이 더욱 많아진 세상에 슈퍼가 반갑기도 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슈퍼 아줌마는 외상을 아직도 받고 계셨다. 스프링 노트에 촘촘히 모나미 볼펜으로 삐뚤빼뚤 적어놓으신 외상 기록은 엑셀도 아니고 저걸 어떻게 다 정산하실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아 보였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군것질 거리를 사가며 외상으로 노트에 적어달라고 하면 아주머니는 "응 그래 아줌마가 적어 놓을게 엄마한테 얘기해라" 하시며 노트에 외상값을 기록하셨다. 솔직히 나도 한국에서 살았던 사람이지만 오랜 런던 생활 때문이었는지 그 광경이 새삼 놀랍게 느껴졌다. 요즘 같은 세상에 외상이라니. 유럽에선 있을 수 도 없는 일이다. 


게다가 슈퍼 아주머니는 어떻게 나를 그리도 기억을 잘하시는지 일 년에 한 번 방문하는 한국인데도 불구하고 매년 한국에 갈 때마다 " 어머 오랜만에 친정에 놀러 왔나 보네 ~!!" 하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종종 내가 한국에 없었던 동안의 우리 엄마 이야기도 해주신다. "아이고 어머니가 무릎이 않좋으셔서 걷는 게 많이 불편해 보이셨는데 지금 많이 좋아지신 거야. 걱정 많이 했었어." " 자주 놀러 와. 엄마가 이렇게 예쁜 딸 외국에 보내고 얼마나 적적하시겠어".


문득 슈퍼 아주머니의 이런저런 이야기 덕분에 나도 한국에 나를 알아봐 주고 우리 가족 걱정해주는 이웃이 있구나 하는 따뜻함을 느낀다. 해외에서 오래 살아도 사라지지 않는 이방인이라는 이 공허함을 자주 있어주지도 못하는 서울이 안아주고 어루 만주어 준다. 역시 이래도 저래도 나는 한국사람이구나. 그리고 이게 한국 사람의 정이라는 것이겠지. 그래 어쩌면 한국의 이런 평범한 일상이 난 그리웠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가는 길 그냥 지나치질 못하는 길가의 매콤한 떡볶이도, 임신한 몸으로 만두를 포장해 가려고 기다리고 있으니 요건 애기 꺼라면 만두 몇 점을 더 주시던 만두가게 아저씨의 친절함도, 일 년에 한 번 남짓 만날까 말까 하는 나를 언제나 반겨주는 오랜 나의 한국 친구들도, 오랜만에 보는 날 항상 기억해 주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주시는 동네 슈퍼마켓 아주머니도 유럽 타지에선 절대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오직 서울에서만 가질 수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들이 가를 타지 생활 때문에 혹은 덕분에 더욱 깨닫게 된다. 


서울에 살 땐 그저 평범한 일상처럼 느꼈던 서울의 삶의 소중한 가치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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