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유럽 여행에서 에펠탑이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친구들과 와인을 건배하며 다들 너무 행복했던 파리를 기억한다. 유럽 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 파리. 아직도 세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이기도 하다. 나는 파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파리에 친척들과 친구들이 살고 있어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은 파리를 찾곤 한다. 하지만 이번 파리 여행은 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선 나는 이번 파리 여행에서 스마트폰을 소매치기당했다. 워낙 소매치기가 악명 높은 곳이라지만, 직접 당해보니 정말 기분이 나빴고, 잃어버린 스마트폰으로 인한 손실이 물질적·정신적 손실로 이어졌다. 그날 친구 집에 초대받아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고 호텔로 돌아와 겨우겨우 친구의 연락처를 이메일에서 찾아 연락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늦게 찾아가게 되었는데, 만약 내 노트북까지 안 가지고 갔다면 아마 다시 집에 올 때까지 친구와 연락도 못 했을 것이다. 친구는 근사한 저녁을 만들어 놓고 그날 밤늦도록 연락 없는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나마 노트북 연락처라도 찾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무엇보다 스마트폰에 담긴 연락처와 사진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 스마트폰 가격보다 더 아팠고, 내 잘못도 아닌데 왜 더 주의하지 못했는지, 왜 아이클라우드에 미리 저장해 두지 않았는지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됐다. 그만큼 이런 사건은 사람을 멘붕에 몰아넣는다. 그렇게 소매치기를 당하고 나니 그날 이후 일정부터는 길을 걷는 것도, 기차를 기다리는 것도 모두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조심해도 낚아챈다는 걸 알고 나니 가방에 있는 지갑, 여권, 그 외 모든 귀중품에 대한 불안감이 몰려왔다. 안내 방송에서 계속 나오는 “소매치기가 있으니 물건들에 조심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런 일상을 파리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전화기를 소매치기당했다고 하니 같은 날 다른 일행도 스마트폰을 소매치기당했고, 또 다른 일행은 소매치기를 하려는 10대 아이들과의 실랑이를 보았다고 했다. 게다가 내가 경찰에 신고해서 찾을 수 있을까 물으니, 파리에 사는 친구는 프랑스 경찰은 소매치기 정도로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며 자포자기한 듯 웃었다.
이 아름다운 파리에 좋은 시간을 가지러 온 사람들에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파리에 온다는 것 자체가 소매치기 소굴로 들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줄 만큼, 특히 나처럼 동양인 여행객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으면 불안하고 께름칙해져서 힘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던 아름다웠던 파리는 어디에 있을까.
파리 여행 후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 후유증은 여전하다. 일단 없어진 나의 핸드폰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고, 한편으로는 내 노트북이나 지갑 등이 온전히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도 느낀다. 특히 가장 치명타는 당분간 파리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지하철을 그저 타고 내리는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조차 불안해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이 낭만의 파리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서글프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인생에 처음, 혹은 신혼여행처럼 특별한 여행을 위해 파리를 찾은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도시라는 것도.
아무 걱정 없이 길을 거닐 수 있는 여유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문득 예전에 깜빡 택시에 두고 내린 짐을 다시 찾아준 한국 택시기사님의 친절함이 그리워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