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 처음 와서 느꼈던 것은 아이들이 다양한 스포츠를 잘한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름이면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주말이면 산에 가서 하이킹을 하며, 겨울이면 스키를 타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일들이라서, 어릴 때부터 다양한 스포츠와 레저를 접하며 자라서인지 아이들이 참 튼튼하고 건강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스위스 사람들은 일상에서도 다양한 이벤트에 스포츠를 접목시키곤 한다.
예를 들면, 매년 12월 제네바에서 열리는 주요 달리기 이벤트인 "레스칼라드 달리기" 또는 "Course de l'Escalade"가 있다. 이 대회는 제네바 구시가지에서 진행되며, 제네바가 1602년 사보이 공작의 침공을 방어한 역사적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다. 보통 12월 둘째 주 주말에 열리며, 정말 많은 가족이 이 행사에 참여한다. 이 행사에는 모든 연령대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코스가 마련되어 있어 경쟁을 즐기는 참가자뿐 아니라 "마르미트 경주"라는 퍼레이드형 달리기도 있어, 참가자들이 다양한 의상을 입고 축제 분위기 속에서 달리기를 즐길 수 있다.
나 역시 아이와 함께 작년에 이 이벤트에 참여해 경주를 완주했는데, 중간에 좀 힘들긴 했지만 아이와 처음으로 완주한 긴 달리기 이벤트라 정말 기억에 남는 뜻깊은 행사였다. 하루 종일 이날의 경주를 스위스 지역 TV를 통해 시청할 수도 있을 만큼, 제네바가 들썩들썩하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이렇게 큰 계획이나 비용 지출 없이 자연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고 믿는다. 나 역시 생각할 것이 많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집 주변 근처 산을 종종 오르곤 한다. 처음에는 산 오르기가 힘들었지만, 등산의 재미에 빠져들면서 보람을 느끼게 됐고, 힘들게 산 정상에 오른 후 바라보는 멋진 전경은 고생한 보람만큼 꿀맛처럼 달콤하게 느껴졌다.
아마 내가 여행을 다닌 어떤 곳보다도 스위스만큼 다양한 스포츠를 일상과 자연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 싶다. 그래서 종종 이곳의 높은 물가는 이런 삶의 질을 포함한 것이 아닐까 하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우리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생각해 보면, 건강한 삶이 가장 우선이 아니겠는가. 자연스럽게 운동을 즐기고 깨끗한 자연환경을 접할 수 있는 스위스는 그래서 가끔 지상천국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스위스에서의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에 문득 감사하게 된다.
매우 오래전 내 인생에 있어 처음 만났던 외국인 친구들이 스위스 친구들이었다. 참 평사시에 만나기도 힘든 스위스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 해외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 살짝 붕떠있던 나를 자신들의 파티에도 자주 초대해 주고 좋은 정보거리들을 알려주며 내 첫 해외생활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들 떠나면서 나보고 언젠가 스위스에 꼭 놀러 오라고 했었는데 내가 이렇게 스위스에서 살게 될 줄은. 그때 스위스친구들과 나의 마음들이 강한 힘을 뿜어 내서 나를 이곳에 이끌었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 밤하늘의 달이 동그랗게 웃고 있는 듯하다. 맑은 하늘에서 보는 달빛이라 그런지 더욱 반짝이는 것 같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