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귀환

엄마와의 아홉 번째 이야기

by 스카치

https://youtu.be/wZfZiGgk3wA


하나... 둘... 셋... 엄마가 앞 접시에 크림새우를 담았다. 메인 접시의 음식이 줄어들자 위기감을 느낀 듯, 엄마의 손과 팔은 조금씩 빨라졌다. 뇌질환 환자의 움직임 치고는 빛의 속도였다. 준비된 새우가 더 있으니 식기 전에 드시라고 했지만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엄마의 식탐에 대해, 그 근원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어려서부터 소화불량에 시달리던 엄마는 위암 수술로 위의 70%를 잘라내야 했다. 치아와 잇몸도 좋지 않았다. 억지로 틀니를 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신통치 않은 앞니만으로 꼭꼭, 오랫동안 씹어야 했다. 그래서 남들 여러 개 먹을 동안 엄마는 하나를 붙들고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다. (한때 엄마의 몸무게는 37Kg였다.) 가끔 엄마 몫을 챙겨 드리기도 했지만 엄마는 소화가 안 된다며 거절하셨다. 그러나 많은 경우, 엄마는 자식들에게 특별식을 양보하셨던 것 같다. GOD의 어머니가 짜장면을 싫다고 했다면 우리 엄마는 소화불량이라는 카드를 제시했던 것이다. 우리 엄마 쪽이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수 있겠다.


엄마의 자식에 대한 희생정신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나로서는 오늘날 찾아온 엄마의 식탐이 너무나 신선하다. 이제야 엄마에게서 욕망을 발견하게 된 것 같아 귀엽고 사랑스러웠으며 심지어 소중하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니 뇌출혈 이후 엄마는 유독 ‘내’ ‘내 거’ ‘나의’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특히 자신의 물건을 아끼고 챙겼다. 낡은 효도폰도 지나치게 소중히 여겨 (전자파의 위험에도) 늘 옆에 두려 했다. 엄마의 모든 물건에 이름을 새겨드리는 게 어떨까 고민도 해보았다.



사실 엄마에게서 욕망을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내가 꼬마였을 때, 나는 엄마가 오랫동안 일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삶에 열정을 가진 자만이 장기간 일기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거울 앞에 가만~ 서있는데... 왠지 눈가가 뜨거워졌다. 나는 내 눈물의 정체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니까 엄마한테도 소중한 자신만의 인생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이 당연한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외로워졌다. 엄마에게 미안했고 동시에 나의 이중성에 혐오감도 느꼈다. 가족주의를 반대하고, 엄마에게 아빠와의 이혼을 권했던 나와, 엄마가 독립된 인격체임에 화들짝 놀라는 나는 과연 동일 인물인가?


엄마의 오래된 노트


뇌출혈 이후 엄마는 오히려 통증을 덜 느낀다고 한다. 숙면을 취해서 그런지 이전보다 예민함도 덜했다. 그러다 보니 3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주름도 펴졌다. (손상된 뇌 부위는 고통이나 예민함을 주관하는 부분 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해진 엄마는 자신의 욕망 표출에 주저함이 없었고 이전보다 더 행복해졌다. 엄마가 달라진 만큼, 우리 가족도 변했다. 그동안 우리 집은 자식들 입만 입이었다. 형평성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뭐든 엄마가 우선이다. 그리고 엄마 입만 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