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첫 해외여행

엄마와의 열 번째 이야기

by 스카치

https://youtu.be/obT1HrXH7j4


생각해보니 우리가 함께 했던 첫 해외여행(비록 여행사 패키지였지만) 때도 엄마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냈었다.


방콕에 도착한 날이었다. 엄마가 화장실에 간 사이, 호텔방으로 여행 가이드들이 찾아왔다. 불편한 점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는데, 대화중에 농담과 웃음이 오갔었다. 그들이 떠난 후 화장실을 나온 엄마는 내게 심술을 부렸다. 요약하자면 다들 나한테만 잘해준다는 것이다.


자려고 누웠는데, 벨이 울렸다. 패키지 일행 아저씨들이 술을 먹다가 전화를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녁 먹을 때 엄마가 나를 방송작가라 소개했었다. 간혹 작가에게 (자기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라면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나는 거절했고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그런데... 사건은 다음날 일어났다. 엄마가 전화 건 아저씨의 부인에게 어젯밤 일을 일러바친 것이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따져 물었더니... 세상에나! 이유는 더 기가 막혔다. 엄마는 그 여자가 마음에 안 들어서 한방 먹이고 싶었다는 것이다.


둘째 날 밤에도 사건은 있었다. (실은 매일 밤 끊이지 않았다) 가이드의 인솔로 2,30대 사람들끼리 락카페에 갔다. 모던하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고 가성비 또한 좋았지만 그 멤버로 노는 것이 크게 재밌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혼자 호텔방에 남아있는 엄마가 신경 쓰였다.


한시 반이 다 되어 돌아오자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서울에서도 그렇게 매일 기다리게 하더니 이국땅에 와서까지 자기를 방치해뒀다는 것이다. 심지어 엄마는 내게 베개까지 던졌다.



매일 아침 우리 일행은 로비에 모였다. 총인원은 무려 60명. 시간 엄수는 필수였다.


그날도 일찍 준비를 마친 나는 문고리를 잡고 초조하게 엄마를 기다렸다. 요즘에야 모녀 여행이 흔해 빠졌지만 당시엔 엄마와 딸 커플은 찾아보기 힘든 조합이었다. 그래서 작은 실수에도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전 날 분노로 잠을 설친 탓인지 엄마는 그날 아침 유난히 준비가 늦었고 결국 우리는 약속시간보다 10분이나 늦게 로비에 도착했다. 천만다행으로 꼴등은 아니었다. 우리 다음으로 지각생 부부가 나타나자 가이드의 리드에 의해 모두 박수로 그들을 맞이했다. 간발의 차로 민폐의 아이콘을 면하는 순간이었다. 만약 우리가 저 박수를 받았다면... 나는 당장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진 것은 점심식사 때였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지각 부부와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고, 나는 시시한 농담을 던져가며 나름 그들의 무안함을 풀어주려 했다. 아직도 그들의 낯빛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다.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로비 박수 사건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불만은 왜 우리 모녀에게는 박수를 안 쳐주냐는 거였다! 엄마는 박수의 맥락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여자분의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 변명도 할 수 없고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엄마의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아줄 수도 없는, 어정쩡한 표정 말이다.


멤버가 추가되거나 변경되었지만 엄마와 나는 그 후로도 함께 해외여행을 다녔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엄마는 언제나 그중 최고로 태국여행을 꼽았다. 병실에서조차 손자 손녀들에게 태국여행이 얼마나 완벽했는지를 자랑했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엄마는 정말 그때의 일들을 기억 못 하시는 걸까? 아니면 첫 해외여행이므로 나쁜 일들은 죄다 지워버리신 걸까? 내 기억으로 그 3박 5일은 엄마와의 관계에 있어서 최악의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태국에서의 불화를 언급한 적은 없다. 혹시나 기억을 지웠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거고, 좋지도 않은 일을 굳이 되살릴 필요는 없으니까.


누군가 말했다. 여행은 눈을 뜨고 꾸는 꿈이라고. 특히 그 시절 우리 엄마들에게 해외여행은 너무나 특별한 이벤트였다. 지난했던 인생에 대한 보답이랄까. 기대감이 너무 큰 나머지 자기가 그린 그림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거나 스크래치가 나면 가이드에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엄마의 베개 투척 정도는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일 만했다. 엄마가 내게 뭔가를 던진 것은 처음이지만, 그 물건이란 것이 고작 베개인 데다가 결과적으로 내 몸을 제대로 맞추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내 발가락 끝, 전방 10센티를 조준했던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급격한 인격변화는 좀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맘에 안 드는 아줌마에게 부린 심술까지는 그렇다 치자. 지각 부부에게 행한 주책은 또 뭐란 말인가?



좀 전에 밥을 다 먹은 조카가 후식으로 빼빼로를 돌렸다. 토끼가 홍당무를 먹듯 엄마는 앞니로 콩콩콩... 막대 과자를 먹어치웠다. 신묘한 장면이었다! 우리가 요청하자 엄마는 한 번 더 진기명기를 선보였다. 오물오물 차근차근 찬찬히 야무지게.


우리의 시선을 받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진심 행복해 보였다! 그렇다. 엄마는 우리 오 남매를 키우면서 늘 가려진 인물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평소 박수에 고파했다는 것과 태국에서의 박수 에피소드를 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곰곰이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이 엄마에게 한 번이라도 박수를 쳐준 적이 있었는지 말이다.


그날 우리는 엄마에게 여러 차례 힘찬 박수를 보냈고 모처럼 기분이 좋아진 엄마는 열화와 같은 성원에 보답하는 예쁜 미소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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