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 비도 오는데?

엄마와의 열한 번째 이야기

by 스카치

https://youtu.be/8-bMFDhhP9E


홍콩 여행은 작은 언니와 조카도 함께 했다. 태국여행 다음이니 이 또한 어마 무시하게 오래전 일이다.


여행 마지막 날, 종일 장대비가 내렸다. 물건 교환을 위해 백화점에 가려는데, 엄마가 막아섰다. 그딴 물건, 그냥 포기해 버리라는 것이다. 오지 마을도 아니고 홍콩 같은 대도시에서 비 좀 온다고 밖에 나가지 말라니! 더구나 우리에게는 우산이라는 문명의 도구가 있지 않은가?


평소에도 엄마는 비 오는 날, 내가 밖에 나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다. 일 하러 나갈 때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곤 하셨다. “어디 가, 비도 오는데?”


옥신각신 끝에 드디어 합의에 도달했다. 조건은 엄마가 동행하는 것이었다.


갈 때는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혼자일 때보다 시간이 두 배쯤 걸렸다. 다리가 아픈 엄마는 나름 속도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나한테 욕먹을까 봐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큰 문제없이 백화점 일을 해결하고 호텔로 돌아가려는데, 미친 듯 퍼붓는 빗줄기 사이로 트램 정류소 푯말이 보였다. 혹시 호텔까지 한 번에 가는 노선이 있다면 엄마의 다리를 편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른 달려가 노선표를 확인하고 있는데... 이때 빠아아아아앙~~~~ 고막이 터져버릴 것 같은 경적소리가 울렸다. 트램 하나가 돌진하고 있었고 맞은편에서도 또 다른 트램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그 난리를 만들어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의 사랑스러운 엄마였다! 엄마가 바지와 신발을 적시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트램의 트랙을 따라 걷고 있었던 것이다! 코끼리가 오든 탱크가 오든 관심 밖이었다. 너무나 순수한 엄마의 얼굴에서는 백치미까지 느껴졌다.


엄마는 트램이라는 교통수단이 트랙 위를 지난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고 자기 때문에 이 소란이 났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설명하지 않았다면 아마 영원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나는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너무 화가 난 탓에 한 단어도 더듬지 않았다. (외국에서 싸울 땐 역시 현지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가 최고다.) 트램 기사 아저씨가 엄마를 못 봤으면 어쩔 뻔했냐? 귀가 막히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요란한 클랙슨 소리를 듣지 못할 수가 있냐? 승객들이 얼마나 엄마를 욕했겠냐? 싸구려 바지랑 신발 젖는 게 뭐 그리 대수냐? 그리고 백화점으로 출발할 때부터 입에서 계속 맴돌던 말을 뱉어냈다. 언니랑 조카랑 같이 호텔방에 가만있을 것이지, 왜 따라나서서 이 사단을 내냐?


서울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분노가 식지 않았다. 아침에 일 하러 나가는 나에게 늘 그렇듯 엄마는 조심하라고 했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받아쳤다. “엄마랑 다니는 게 젤 위험하거든!”


서울에 돌아오자 나의 분노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러나 얼마 후 그 난장판을 다시 떠올릴 만한 사건이 생겼다.


산책을 마치고 정원이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별안간 먹구름이 몰려왔다.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무사히 아파트 주차장 문을 열고 뛰어 들어오는 순간, 엄마는 내 팔에 매달려 껑충껑충~ 뛰셨다. 고작 비 좀 피했다고 이렇게까지 신날까 싶었다.


잠 자기 전에 별생각 없이 오늘 하루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엄마에게 물었다. 질문의 핵심은 점심 먹으러 들렀던 식당과 카페 중 어디가 더 좋았냐는 것이었다.


엄마의 대답은 단호했다. “비 안 맞은 거.” 나는 그때 깨달았다. 엄마에게 최악의 상황은 비를 맞는 것이구나!



오래전 베트남 호이안에 홀로 머무를 때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밤새 내린 비로 도시는 커다란 호수가 되어있었다. 이곳에서는 늘상 있는 일인 듯, 여기저기 숨어있던 영업용 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식당에 가기 위해 배 하나를 골라 탔고 헤엄도 치고 빌딩 클라이밍까지 해가며 어렵게 2층 식당(1층 식당은 모두 잠겼으므로)에 진입했다. 흠뻑 젖은 속옷을 입은 채 식사를 했지만 아직도 멋진 기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엄마에겐 비밀이다. 속옷이 젖는다는 상상만으로도 몸서리치실 테니. 게다가 가축과 오물이 함께 떠다니던 물이었다.)


호이안에서의 경험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지만, 보통의 경우 배낭 여행자에게 비는 달갑지 않은 존재다. 여행 중에 비가 오면, 정말이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 처음 갔을 때는 20일 내내 비가 왔었다. 날씨가 좋아 배낭여행자의 성지로 불리던 운남성이 이리 배신을 때릴 줄이야. 타 지역으로 이동할 생각도 해봤지만 당시 대륙 전체가 기상 이변 상태였으므로 그마저도 포기해야 했다. 할 수 없이 눅눅한 숙소에서 오들오들 떨며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나도 그다지 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나와는 클래스가 다른 것 같다.


비에 대한 엄마의 포비아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포탈에 비 소식이 뜨는 날이면 나는 늘 엄마와의 신경전을 준비해야 한다. 내가 가방만 만져도 엄마는 안전손잡이에 의지해 몸을 일으키며 말씀하신다.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 격앙된 톤으로 “어디 가, 비도 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