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JBHNbMgYAVA
“나 빌딩 없어요.” 딸들하고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덕담에 엄마가 대뜸 말씀하셨다. 무슨 소린지 몰라 어리둥절하시는 안전손잡이 설치 기사님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엄마의 뜻이 뭔 지 알 것 같았다.
뇌출혈 이후, 엄마는 우리 집의 아이돌이 되었다. 엄마의 사소한 일거수일투족은 뉴스거리가 되었고 사용하는 단어는 바로 유행어가 되었다.
우리 집 아이돌은 깊은 밤이 아니면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우리 가족은 엄마가 자고 있는 꼴을 절대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엄마가 자면 심심하니까. 엄마랑 장난치고 싶으니까.
아이 키우던 친구가 남편 욕을 한 적이 있다. 아이를 겨우 재워 놓으면 늦게 들어온 남편이 꼭 뽀뽀를 해서 깨워 놓는다는 것이다. 일단 일어나면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말이다. 우리 집은 매일매일 이와 유사한 전쟁을 치른다. 주무시게 놔두라고 서로를 말리다가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엄마를 깨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난리를 쳐도 엄마는 꽤 오랫동안 우리의 애정표현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애정을 구하면 구할수록 엄마는 더욱 무심해졌다.
전부터 조카와 나는 엄마의 볼 양쪽에 붙어서 뽀뽀를 하곤 했는데, 우리는 그것을 찌부짱구라 칭했다. 아프신 후 엄마는 더 이상 찌부짱구를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엄마의 반응은 이런 것이었다. “나 하나 두고 양쪽에서 이러는데, 안 귀찮겠냐?”
요즘 나의 새로운 기쁨 중 하나는 엄마를 예쁘게 꾸미는 일이다. 탁월한 패션 소화 능력을 칭송하자 엄마는 시크하게 말했다. “쳇! 지가 사서 입혀놓고선.” 엄마의 말투에서, 궁궐 안 모든 것을 지배하는 왕후의 풍모가 느껴졌다.
젊은 시절, 엄마는 한복 태가 좋았었다.
식사 중, 엄마는 갑자기 내 손목을 잡아끌더니 손바닥에 뭔가를 뱉었다. 씹다만 쇠고기였다. 언젠가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모 연예인이 자신의 매니저한테 했던 짓이었다. 엄마는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고 나는 그 자신감이 좋았다.
누군가는 숨겨놓은 빌딩으로 자손들을 불러 모은다는데... “누가 보면 우리 엄마, 빌딩 가지고 있는 줄 알겠어. ” 우리는 가끔 이런 농담을 했다.
사실 엄마는 우리에게 빌딩 이상의 것을 주셨다. 우리 형제자매에게는 적어도 애정결핍 같은 것은 없었다. 내 경우, 많은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지만 장점이 하나 있다면 남의 말을 잘 믿는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장점이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한번 친구라고 생각하면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넘겨짚거나 왜곡시켜 내 멋대로 해석하지 않는다. 추리력을 동원해서 팩트 추적을 하지도 않는다. 뒤통수 맞는 일도 더러 있지만 그래도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가끔 속기도 하는 이대로의 내가 좋다. 타인을 신뢰하는 나의 성향은 엄마로부터 기인한다. 엄마는 늘 내 말을 믿어주었고 또 내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었다.
요즘도 나는 엄마에게 가끔 말한다. “누가 보면 우리 엄마 진짜 빌딩 하나 있는 줄 알겠어.” 그러면 엄마는 받아치신다. “내가 실은 빌딩 몇 개 숨겨놨거든!” 요사이 엄마는 급격히 똑똑해지셨다.
이런 거 가지고 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