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엄마

엄마와의 열네 번째 이야기

by 스카치

https://youtu.be/eYwqKqY1DF4


퇴원 후 육 개월쯤 지나자 엄마는 조금씩 다정해졌다. 말도 길어졌고 심지어 기분 좋을 때는 뽀뽀도 해주셨다.


내가 “엄마 사랑해.” 하면 엄마도 “엄마 사랑해.”라고 했다.

내가 “열라 사랑해.” 하면 엄마도 “열라 사랑해.”라고 했다.

내가 “X나 사랑해.” 하면 엄마도 “X나 사랑해.”라고 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작은 언니는 크크 웃었고 조카는 “할머니! 이모가 욕 했어!” 하고 일러바쳤다. 그럼 나는 조카를 째려보며 말했다. “간신!”


한 번은 화장실 쪽에서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엄마를 변기에 앉혀놓은 채 자기 볼일을 보러 간 모양이다. (엄마의 용변 시간은 엽기적으로 길어서 계속 옆에 앉아 기다리기는 힘들었다) 엄마는 천진한 얼굴로 말했다. “막내야 사랑한다. 나 좀 내 자리에 데려다 달라.” 이후 우리 집에서는 달라체가 유행했다. 말끝마다 ‘달라’를 붙이는 건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나랑 놀아 달라’ ‘와서 안아 달라.’ ‘손을 잡아 달라.’


이때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우리는 오랫동안 생협에서 식재료를 공급받아왔다. 지금은 내가 하고 있지만 뇌출혈 전, 전화주문은 전적으로 엄마 몫이었다. 늘 친절했던 담당 직원분이 분만 휴가를 가게 되었는데, 용케 그녀를 기억해낸 엄마는 순진한 얼굴로 말했다. “아이 낳고 우리 만나요. 나도 고 사이에 다 나을 테니.” 아름다운 대화였다. 그 말대로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1년 후 엄마가 그분을 기억할 수나 있을지, 그마저 의심스러웠다.


저녁에는 휠체어가 도착했다. 이미 실내용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외출용을 하나 더 주문한 것이다. 새 차 생겼다고 좋아하실 줄 알았던 엄마는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난 언제 걸어 다녀?” 이제 곧 걸어 다닐 건데 왜 이딴 걸 샀냐고 따지시는 것이다. 잠시 머뭇거렸다. 엄마의 자신감은 높이 사지만 언제까지 희망적인 말만 해줄 순 없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다시 걷는 일 같은 건 없다고, 잘라 말해 줄 수도 없었다.


며칠 후였다. 외출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거실이 시끄러웠다. 나는 엄마에게 뭘 그렇게 열심히 찾고 있냐고 물었고 엄마는 짧게 대답했다. “2만 원.” 그러자 조카가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 꿈꾼 거라니까! 나랑 엄마가 구석구석 찾아봤잖아?”


나는 얼른 내 방에 가서 지폐 두 장을 꺼내왔다. 이어 화장대 아래를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은 언니를 탓하며 엄마 손에 2만 원을 쥐여 주었다. 이로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엄마를 완벽하게 속였다고 믿었던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엄마 옆에 누웠다. 저녁 인사를 하고 잠을 청하려는데... 엄마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고 싶어.”


내 귀를 의심했다. 나름 마음을 추스른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친절한 말투였지만 내용은 바보 같았다. “엄마 왜 그런 생각을 했어?”


기억을 더듬어보니 엄마는 요 며칠 행복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제는 “엄마 행복해?” 하는 내 물음에 끝내 답을 하지 않으셨다. 엄마에게 말을 씹히는 것쯤은, 흔히 있는 일이므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물론 나도 엄마가 마냥 즐거울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일일이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발로 걸어 다닐 때라고 언제 사는 게 만족스러웠던가? 나는 이렇게 자위하며 현실을 외면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뱉어낸 말은 충격적이었다. 나는 입을 열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말을 하면 슬픈 생각들이 형체를 갖추어 갈 것만 같았다.


그즈음 엄마의 야뇨 증상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었는데, 시트나 매트를 교체한 날만은 예외였다. (팬티형 기저귀를 하고 계시지만 소변이 밖으로 새어나갔다.) 어쩔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어 더 이상 교체할 시트가 없을 때도 있었다. 실수하지 않으려는 엄마의 강박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날도 엄마는 시트를 적셨다. 엄마의 우울한 상태를 아는 지라 “우리 할머니 키 씌워드릴까?”라고 하는 조카의 농담이 신경 쓰였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의 마음을 가족들에게 전하지 않았다. 언니는 엄마보다도 더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면 엄마에게도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볼에 뽀뽀를 하려 하자 엄마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안 할래, 미안해서.”


다음날 일을 마치고 집에 와 보니 엄마가 식탁에 앉아 나물을 다듬고 계셨다. 아무리 말려도 한 시간째 노동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온갖 관절염을 달고 사셨던 분이니, 오늘 밤 내내 끙끙~ 앓으실 게 뻔했다. 언니가 화난 목소리로 이제부터 나물은 절대 사지 않겠다고 하자 엄마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 이거라도 하고 있으면 사람 구실 하는 것 같잖아.” 순간 주방이 조용해졌다. 엄마가 말을 이어갔다. “난 회복될 줄 알았어. 근데 어려울 것 같아.”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언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눈짓을 했고 언니는 후다닥~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병원에서도 언니가 눈물을 보이면 나는 항상 이렇게 눈짓을 했었다.


엄마의 뇌에 고인 물은 영원히 제거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몇 달 동안 엄마의 상태는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아직 많은 것을 기억 못 하셨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기억해내셨다.


엄마가 갑자기 아이가 되어 버렸을 때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갑자기 철이 들어버린 상황도 견디기 힘들었다. 엄마가 똑똑해질수록 현실인식능력이 향상된다면,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즐겁지 않다면... 뇌가 회복되는 것이 과연 축복이기만 할까?



나는...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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