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 불리는 것

엄마와의 열다섯 번째 이야기

by 스카치

https://youtu.be/A8O3MlB8Pds


퇴원 직후 엄마의 말투는 참으로 불량했다. 내가 사랑한다고 하면 빈정대듯 대꾸했다. “많이 사랑해(봐).” 한마디로 그러든지 말든지~였다.


나의 또 다른 애정표현에도 “얘는 하두 이러니까 진실해 보이질 않아.”라고 하셨다. 보다 못한 언니가 막내한테 왜 그러냐고 항의를 할 정도였다.


사소한 것을 챙겨드릴 때면 나를 흘겨보았다. “얘는 가끔 보면, 지가 나를 낳은 줄 알아.”


이런 걸 업보라 하나? 과거, 나는 이성적인 말로 가끔 엄마를 섭섭하게 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엄마는 틈만 나면 가족들 눈을 피해 혼자 돌아다니셨다. 엄마가 비틀거릴 때, 놀라 소리를 지르거나 달려가서는 안 된다. 우리가 호들갑을 떨면 사고가 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이 키울 때와 비슷하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천천히 다가가 엄마의 몸을 붙잡고 나면, 그때야 비로소 혼자 다니면 안 된다는 것을 주지 시킨다. 물론 매번 공염불이 되고 말지만.


우리에게 야단맞으면 풀이 죽던 엄마는 어느 순간 반격을 시작했다. “그럼 어떻게 해? 이제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는데.”


엄마의 시크함이 심술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조카는 할머니가 중2병에 걸렸다고 했다. 미운 여든 중반. 엄마의 사춘기는 그렇게 한동안 지속되었다.


엄마는 하루 여섯 차례, 시간에 맞춰 세 가지 안약을 눈에 넣어야 했고 몇 번에 걸쳐 한 움큼의 약을 복용해야 했다. 게다가 잇몸약과 양배추 등 맛이 일도 없는 건강보조식품을 먹어야 했다. “너는 왜 나만 보면 이런 거 주냐?” 느닷없이 엄마는 나를 원망했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오랜 관계를 유지하려면 자주 만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좋은 소리만 듣고 싶으면 적어도 간병 같은 것을 해서는 안 된다. 맨날 맛없고 쓴 약만 주지, 하지 말라는 것 투성이지... 환자 입장에서 간병인이 예뻐 보일 리가 없다.


얼마간 지속된 엄마의 심술은 집착으로 진화했다. 정말이지 엄마는 나를 꼼짝도 못 하게 했다.


일하러 나가는 나에게 엄마는 늘 귀가 시간을 물었다. 내가 대답을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손가락을 꼽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야무지게 말했다. “다섯 시간 남았다!” 이어 아무리 바쁘다고 호소해도, 엄마는 나무늘보의 속도로 일어나 손수 나를 배웅했다.


귀가 길에는 엄마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엄마는 나를 마중 나오겠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 올 거냐고 물으면 데갈데갈(?) 굴러서(라도) 가겠다고.


나의 부재를 가장 힘들어하는 시간은 역시 밤이었다. 엄마는 저녁 내내 시계만 뚫어지게 쳐다보신다고 한다. 내가 들어오면 긴장이 풀린 엄마는 밤새 끙끙 앓으셨다. 심지어 열이 나서 의식을 잃으신 적도 있었다.


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밤 외출을 자제한다. 밖에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아서지만, 실은 그 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나도 엄마랑 같이 지내는 시간이 제일 즐겁기 때문이다.


한참 내게 틱틱~ 댈 때도 솔직히 나는 엄마를 원망해본 적이 없었다. 뇌출혈 이후, 엄마는 나를 대놓고 엄마라 불렀다. 상태가 좋아진 지금은 돌려서 말하곤 한다. “그러게.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할 걸.” “내가 엄마 말을 안 들어서...” “나도 엄마가 좋아.” 이런 식으로.


병원에 계실 때, 엄마는 나를 못 알아보신 적이 많았다. 오히려 다른 식구들보다 그 횟수가 잦았던 것 같다. 그렇게 모든 걸 헷갈려하셔도, 그래도 나외의 다른 사람을 엄마라고 부른 적은,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동안 잊고 지냈지만 엄마에게도 과거에 엄마가 있었다.

우리 엄마가 10대 후반일때

자리에 누우신 외할머니는 변변히 병원 한번 가보시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엄마에게 항상 애틋했던 사람,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

엄마는 나를 그렇게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엄마라 여기는 엄마를 내가 어찌 단 한순간이라도 원망할 수 있겠는가?



엄마가 콧물을 흘리자 조카가 놀리기 시작했다. 자기도 독감 걸렸을 때 (할머니한테 옮을까 봐) 자가격리했다며, 할머니도 이모랑 떨어져 지내야 된다고. 그러자 좀 전까지 휴지를 찾던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 감기 아냐!” 그 말을 하는 와중에도 엄마의 코에서는 콧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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