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95Nt3DZ6XaQ
엄마는 혼자 걷지 못하셨다. 발을 내딛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몇 걸음 이내에 주저앉거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나 스스로 걸을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엄마는 매번 혼자 움직이려 하셨다. 손에 쥐여 드렸던 차임벨은 무용지물이었다. 당시 엄마는 ‘추우면 이불을 덮는다’ 같은 간단한 연관관계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심지어 자신의 얼굴 위 눈과 코조차 구별하지 못하셨다.
문제는 역시 밤 시간이었다. 세 시간에 한 번씩은 화장실에 가야 했는데, 타인에게 폐 끼치는 것을 질색하시는 엄마가 잠든 나를 깨울 리 없었다.
새벽에 놀라 눈을 떠보니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엄마가 발견된 곳은 화장실 앞. 엄마는 마룻바닥에 얼굴을 대고 쓰러져 계셨다. 그리고 발에서 튕겨나간 슬리퍼 한 짝은 멀리 저만치에 떨어져 있었다.
엄마의 완소 슬리퍼
어르신들은 가벼운 골절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특히 욕실은 사건 사고가 많은 곳이다.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죽는 장소는 bathroom’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대문 밖은 위험하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글이었다. 그러고 보니 엘비스 프레슬리도 변기 위에서 사망했다던데...!
욕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변기와 욕조에 설치할 손잡이가 반드시 필요할 것 같았다. 침대에서 화장실 가는 길에 설치할 기둥과 바닥에 깔 충격 완화 매트도 주문했다. 이어 ‘안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물품들을 닥치는 대로 구매했다. 침대용 난간이라든지, 마사지샵에서 쓰는 깔개 따위도 검색해 보았다. 덕분에 나는 난생처음 인터넷 쇼핑몰의 VVIP로 등극했다. (돌이켜보면 그중 절반은 요긴하게 쓴 것 같다)
화장실 가는 길
마찰도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슬리퍼 대신 안전한 덧신을 권했다. 이전에 슬리퍼가 벗겨져 넘어질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저항은 생각보다 강했다. 그렇지 않아도 기저귀에 소변 보신 것 때문에 잔뜩 골이 나있던 참이었다. 슬리퍼를 쥔 손은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엄마와의 기싸움에서 참패한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중요한 건 슬리퍼가 아닌 것 같았다.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왔다!
일단 엄마를 거실로 모셨고 내 방 침대 매트리스를 끌고 와서 엄마 침상 옆에 깔았다. 내가 끙끙대며 짐을 옮기는 것을 지켜보던 엄마는 인류애가 빛나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도와줄까?”
코로나 이전, 배낭여행에 심취했던 나는 이렇게 기꺼이 엄마의 껌딱지가 되었다.
내 옆에서 곤히 잠든 엄마를 바라보다가 문득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는 뇌출혈 이후 잠보가 되었다! 평생 엄마의 하루 수면시간은 두세 시간밖에 되지 않았었다. 그나마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셨었다. 참으로 긍정적인 변화였다.
캐릭터도 변했다. 엄마는 전과 달리 무뚝뚝한 사람이 되었다. 뭔가가 필요하면 손가락으로 가만히 가리키거나 툭~ 한 마디 던지는 게 다였다. 웃어주시는 것도, 다정한 말도 인색해졌다. 잠든 얼굴조차 뚱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친절에 쓰였던 에너지가 온전히 수면의 양과 질에 집중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캐릭터는 시크해졌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엄마는 자면서도 옛날처럼 내 옷자락을 꽈악~ 붙들고 있었다! 무의식 중에 엄마는 나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거의 3년이 지난 지금, 엄마는 더 이상 나의 옷자락을 움켜쥐지 않는다. 그러나 단 한순간, 잠드는 순간만큼은 달랐다. 엄마는 내 몸 어디 한 부분에, 그러니까 그것이 얼굴이든 팔이든 다리든 하다못해 머리칼 한 가닥이라도... 당신의 손가락을 대고 있었다. 그래야만 안심이 되어 잠들 수 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