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힙합을 알아?

엄마와의 네 번째 이야기

by 스카치

https://youtu.be/vmVTjtQj3Fk


오후 내내 한숨을 쉬셨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 다친 사람들 그리고 대통령의 안위 등 모든 게 걱정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당분간 여의도 근처는 얼씬도 말라고 당부하셨다. 영문 몰라하는 내게 엄마는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국회가 무너졌잖아? 넌 젊은 애가 그것도 몰라?” 지난밤 빔프로젝트로 천장에 쏘아 올렸던 드라마가 문제였다. 엄마는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


우리는 힙합 영상을 누워서 본다.


팟캐스트에서 내가 좋아하는 카테고리는 범죄, 미스터리였다. 나와 붙어있는 바람에 엄마는 자연스럽게 프로파일러나 전직 형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노출되었다. ‘시체 절단’이라든지 ‘교살’ ‘액살’ 같은 단어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엄마는 언제부턴가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나는 영상과 팟캐스트를 모두 포기했다. 대신 음악을 듣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취향이 문제였다. 불행히도 나는 그 많은 장르 중 힙합에 빠져 있었다. 힙합 중에서도 거칠고 상스러운 쪽을 선호했다. 그 바람에 엄마는 진종일 오도 가도 못한 채 자리에 누워, 평생 들어보지 못한 욕설을 받아냈다. 모국어만으로도 부족해서 평생 관심도 없던 타국의 언어로까지! 다소 마이너 한 취향의 막내딸 덕분에 난데없이 힙한 노후를 보내게 된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엄마의 귀가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내가 나 편하자고 믿어버린 나이브한 생각이었다. 세상에는 발음을 전혀 뭉개지 않는, 지나치게 딜리버리가 좋은 래퍼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swag!


그날도 음악을 틀어놓고 밥을 먹고 있는데, 난데없이 ㅅㅂㄴ! 란 욕설이 튀어나왔다. 셔플 모드였던 모양이다. 언니와 조카가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뭔가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얼렁뚱땅 무마하기에는 발음이 너무나 정확했다. 음절 하나하나를 콕콕 짚어 귀에 꽂아주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이 노래가 19금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그제야 큰소리를 쳤다.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 등급 심사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창모처럼 대중적으로 알려진 뮤지션의 노래는 죄다 19금을 주면서 이렇게 하드코어 한 노래를 지나치다니! 정말이지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나 나의 절규는 나조차도 감동시키지 못했다.


짧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고 나는 조카에게 빔프로젝트 채널권을 넘겼다. 조카는 할머니를 위해 요즘 핫한 트로트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엄마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했다. 트로트는 촌스럽다는 것이다. 전에 종일 보셨던 뉴스도 거부하셨다. 엄마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힙합뿐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프시기 전에도 옛날 노래를 좋아하시진 않았다. 차라리 아이돌 노래를 선호하셨던 것 같다. 그렇다면 엄마는 드디어 인생 음악을 찾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붙잡고 싶으신 것일까?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뇌출혈 이후 엄마는 곰살맞게 이런저런 말을 하는 법이 없으니까. 설사 말을 한다 해도 본인의 취향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엄마 스스로도 자신의 취향을 알지 못할 지도.


나는 매일 힙합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엄마 옆에 누워 이런저런 수다를 떤다. 저스디스의 발음이라든지, 기승전결 형식 파괴에 도전하는 노창과 래원의 실험정신이라든지, 키스 에이프의 분홍 돌고래 셔츠라든지, 릴 타치의 유니크한 하이톤이라든지, 김심야의 벌스라든지... 이런 얘기에 엄마는 무척 즐거워하신다. 누가 누군지 구분하지 못하지만 그런 건 별반 중요치 않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과거 나를 볼 때와 비슷한, 흐뭇한 눈빛으로 넉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80여 년 만에 우리 엄마에게도 인생 아이돌이 생긴 것이다.


내년 엄마의 생일에는 넉살 굿즈와 브로마이드를 준비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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