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상이 닮았다!

엄마와의 다섯 번째 이야기

by 스카치

https://youtu.be/QPEsNjcBF2c


엄마의 헤어스타일은 뽀글이 파마였다. 쓰러지신 날도 파마 예약을 잡아 놓은 상태였다.


나는 뽀글이가 (적어도 우리나라 중년 여성들에게) 해방 이후 최대 메가 히트작이 된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태어나서 단체로 맞는 예방 주사에 누군가 뽀글이 애호 바이러스를 넣은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물론 뽀글이는 잘 뻗치지 않고 손질이 편하다. 그러나 과연 그런 이유만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까?


뽀글이는 예쁘지 않다! 어떤 각도에서도 황금비율을 자랑하는 극소수 미모의 소유자를 제외하고, 이 머리를 하는 순간 여성의 외모(남성조차도)는 초토화된다. 패션 감각이나 지적 수준도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비주얼이 하향평준화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에게는 ‘하향’보다 ‘평준화’ 쪽이 더 심각할 수도 있겠다.


보통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앞뒤면과 같다. 뽀글이의 최대 단점이 모두가 다 똑같아 보이는 것이라면, 어쩌면 장점도 그 지점에서 찾아야 할지도. (이어지는 문단은 전적으로 나만의 뇌피셜임을 미리 밝혀둔다)


우리 엄마들은 튀지 않는 것이 미덕인 나라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집단에서 따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난하게 묻힐 수 있는 스타일이 안전했을 것이다. 게다가 아줌마로서의 동질성 유지가 정서적 안정까지 가져왔다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녀들을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그 선택에 대해 경외감마저 생겼다.


우리 엄마 역시 그런 맥락으로 50년 이상 뽀글이를 고집했는지도 모른다. 마치 다른 스타일은 존재 가능성조차 없다는 듯 말이다.


병실에 있을 때, 엄마의 머리카락은 파마가 풀린 채 한없이 늘어져 있었다. 몇 달 사이에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길이로 자라 있었던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는 엄마의 앞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고무줄을 이용해서 뒤로 묶었다. 그런데, 의외로 어색하지 않았다. 정갈한 모습이 (어른들 잘하는 말을 빌자면) 깎아놓은 밤톨 같았다. 특히 난생처음 드러난 이마는 참으로 고왔다! 엄마의 이마는 지나치게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모난 데라곤 없었다. 머리카락 난 모습도 매끄럽고 자연스러웠다. 연예인을 제외하고, 나는 이렇게 예쁜 이마를 본 적이 없었다. 무려 50년 이상 이 명품 이마를 뽀글이로 가리고 있었다니!


머리 묶은 엄마, 호호아줌마 닮았다!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엄마의 포니테일 실루엣이 나의 그것과 똑 닮아있다는 것이다! 아니 내 두상이 엄마의 그것을 똑 닮아있었다!!!


나는 엄마와 끔찍하게 사이가 좋았지만 우리가 피가 섞였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정말이지 어디 하나 비슷한 데가 없었다.


외모로 말하자면, 나뿐 아니라 형제자매 모두가 짙은 눈썹과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아빠를 닮았다. (아빠의 조상 중 누군가가 고려시대 아라비아 상인이 드나들던, 쌍화점 출신인지도 모르겠다) 성격도 아빠와 가까웠다. 내 경우는 푼돈에 인색하고 큰돈에 거침이 없는 기질이 아빠와 유사했다.


반면 엄마와는 교집합이 크지 않았다. 둘 다 신경이 예민하고 남을 귀찮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 특질을 가지고 있지만 고작 이런 것이 핏줄의 근거가 될 순 없다. 피가 섞이지 않은, 나의 친구들 역시 대부분 이런 품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끼리끼리 친한 법이고 어차피 친구란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므로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엄마와는 식성조차도 다르다. 엄마는 생선구이나 조림을 즐기는 반면 나는 같은 물고기라도 익힌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엄마와의 혈연관계를 의심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엄마 뱃속에서 손가락부터 나왔다. 제일병원 그 달의 신생아중, 손가락이 멍든 채 태어난 아이는 내가 유일했다. 그러니까 아이가 바뀌는 드라마는 없었다는 소리다. 그리고 설사 출생의 비밀이 있었다 해도 나와 엄마의 연대감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공통점 찾기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면 억지로라도 공통점을 찾는다. 썸을 탈 때, 그 행위는 절정에 달한다. 옆에서 보면 실소가 나오지만 당사자들은 연신 감탄사를 터뜨린다. 엄마와 유사한 두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무릎을 칠 만한 사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쾌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난 엄마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닮고 싶은 법이니까. 상대가 혈연관계로 엮여있다 해도 예외가 될 순 없다.


엄마는 이제 다시 미용실에 갈 수 없게 되어서야 인생 헤어스타일을 찾았다. 이로써 엄마는 미모를 찾았고 나는 엄마와의 공통점을 찾았다.


엄마의 고무줄, 나의 고무줄


예전에 소설 속 어떤 아버지는 아들과의 공통점을 발가락에서 찾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우리 모녀는 두상이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