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효녀라고?

엄마와의 여섯 번째 이야기

by 스카치

https://youtu.be/dB7A-eXSUDQ


사람들은 나를 효녀라 칭한다. 심지어 나의 절친은 내가 자기 주변에 실존하는, 3대 효녀 중 하나라고 한다.


불행히도 나는 효녀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구린 느낌이 든다. 효녀가수 ㅎㅅ씨가 생각나기도 하고. (세상 효녀들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저 내 성향이 그렇다는 것뿐이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가족 주의자로 규정지어지는 게 불편하다. 효녀라는 단어는 그 자체가 혈연주의 내지는 가족주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가까운 언니에게서 ‘니가 말하는 가족주의라는 게 대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족주의에 반대한다면서 내가 가족들에게 너무 잘한다는 것이다. 당황해서 금세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도 정리가 되지 않았으니, 남들이 이해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좋은 질문이었고 생각을 정리할, 바람직한 기회였다.


나의 뇌피셜에 의하면, 가족 구성원과 잘 지내는 것과 가족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가족 주의자 중에 부모 형제와 의절하고 외톨이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자신의 결핍 때문에 오히려 가족주의가 공고해지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 주의자는 세상의 모든 현상을 가족이라는 필터를 끼고 보는 사람을 말한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독립된 나 자신으로서(혹은 사회 일원으로서, 직업인으로서) 보다 가족의 일원으로서(아이의 부모로서, 배우자로서, 부모의 자식으로서) 여러 사안을 평가한다.


나의 지인이 가정을 가진 여성 종군 기자를 비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얼마나 야망이 크면 남편 있고 자식 있는 여자가 그런 선택을 하냐는 것이다. (평소 비교적 합리적인 사람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회부 기자가 종군기자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것처럼 말이다. 개인의 사정상, 혹은 기질상 위험한 일을 하기 어렵다면 애초에 사회부를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사지에 가지 않아도 되는 부서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물론 우리 엄마가 혹은 나의 배우자가 위험한 곳에 가겠다고 한다면 나라도 화가 날 것 같다. “꼭 당신이 가야 돼?” “왜 엄마야?” 나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혹은 그녀의 배우자도 딸도 아닌 내가 그 가족에게 감정이입을 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모두가 그런 식이라면... 도대체 독립운동은 누가 하고 소는 누가 키운단 말인가?



얼마 전 공전의 히트를 친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직업윤리를 저버리고 자신의 환자에게 마약류 약물을 제공한다. 중반 이후에는 내 아이의 아버지가 살인자여서는 안 된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살인 사건의 용의자인 전남편을 위해 경찰에 거짓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살인자여서는 안 되는 사람 같은 게 존재한다고 진심, 믿는 걸까?)


나는 이 드라마를 비판하려고 이야기의 소재로 삼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잘 만들어진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내가 놀란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인공이 비호감이라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그 비호감 요인을 그녀의 도덕성이나 성향에서 찾는 듯했다. 실정법 위반 혐의로 그녀를 감방에 보내야 한다고 말하면 다들 내 말을 우스갯소리 정도로 여겼다. 바람난 남편을 둔 와이프로서, 아들을 둔 엄마로서 그럭저럭 이해해주는 듯했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 속 모든 주인공이 적법한 행위만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족극에서 주인공이 법을 어기는 경우는 보통,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다른 방법이 없을 때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다른 선택에 대한 고민이 없다. 그런데도 감정이입이 된다고 하니, 정말이지 가족이란 이름의 필터는 만병통치 요술 안경인가보다.


능력이 부족해서 길게 늘어놓긴 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나는 가족 주의자가 아니며 그래서 애초에 효녀가 되기는 글렀다는 거다. 얼마 전, 설득의 기술이라는 강좌를 찾아 들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인 것 같다. 그저 내 생각을 근사치에 가깝게 표현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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