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 불가론

엄마와의 일곱 번째 이야기

by 스카치

https://youtu.be/YJgL-DhekEE


효녀라 칭해지는 것에 대한 나의 감정은 사실 싫다기보다 억울한 쪽이다. 마치 누명을 쓴 기분이랄까? 혹은 분에 넘치는 평가가 마음에 걸리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효녀가 될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선, 우리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둘째 언니가 중학생이었으니까 내가 일곱 살쯤 되었을 때다. 언니가 가출한 친구를 집에 데려왔다. 엄마는 잠시 망설이다가 하룻밤을 재워주기로 했다. 나는 어린 마음에 엄마가 언니 친구 집에 전화를 할까 봐 두려웠다. TV에서 그런 이야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엄마는 딸 친구의 전번을 알아내 몰래 전화를 한다. 그러면 그쪽 엄마가 집에 찾아오고 모녀는 눈물의 상봉을 한다. 주인공 엄마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본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오지라퍼 부모가 칭송받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그런, 짜증 나는 드라마는 없었다. 일단 우리 엄마는 딸의 수첩을 뒤질 사람이 아니었다. 순둥순둥 예뻤던 언니 친구는 엄마가 정성껏 구워준 불고기와 굴비를 맛있게 먹고 다음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나는 딸의 뒤통수를 치지 않는 우리 엄마가 자랑스러웠고, 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엄마는 공부하라는 그 흔한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단, 집안끼리 앙숙이었던 사촌과 같은 반이 되었을 때는 예외였다.) 주변 사람을 귀찮게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엄마는 한국전쟁과 가난 탓에 제도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대비,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었다.


2003년에 방영했던 ‘눈사람’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형부와 처제의 사랑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소재를 다뤘는데, 그래서인지 보기 불편하다는 평이 많았다. 만듦새에 비해 시청률 추이도 좋지 않았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남녀 주인공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한 말씀하셨다. “주위에서 참 난리도 치네. 지들이 좋다는데.”


최근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영상을 자주 돌려보는데, 거기 나온 의대 출신의 지원자를 보며 또 한 말씀하셨다. “가수가 낫지. 평생 아픈 사람 상대하는 직업이 뭐가 좋아?” 물론 엄마가 딴따라 세계의 어려움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엄마는 판검사나 의사 따위에 연연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 점은 오랜 시간 지켜본 내가 보증한다.


물론 엄마도 그 시대 사람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내가 중학생일 때 엄마 아빠는 자주 싸웠다. 나는 두 분은 전혀 맞지 않으니 이혼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었다. 그때 엄마는 내 얼굴을 빤히 보시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엄마는 한 번도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나도 더는 밀어붙일 수 없었다. 가족의 일원이니까 내 의견을 밝힌 것뿐이고 결정은 엄마의 몫이니까. 게다가... 엄마의 인생이 안쓰러워서 한 말이지, 자식 입장에서 부모의 이혼이란 게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 더구나 나는 아빠와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다.


과거에도 지금도, 엄마는 내가 아는, 가장 멋진 사람 중 하나다. 그런데 운 좋게도, 우연히 그 사람이 우리 엄마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랑 친하게 지낸다. 그러니까 엄마에 대한 나의 사랑은 자식 된 자로서의 의무감이나 효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엄마를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나는 인류애 차원에서 내 할 도리만 했을 거다.



사람들이 효녀라 칭하는 것은 보통 칭찬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그 선의까지 의심한 적은 없다. 그러나 인간됨이 모자라고 미성숙한 탓에, 가끔은 나도 모르게 발끈할 때가 있다. 나는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것이다. 효녀가 아니고 그저 엄마와 사이가 좋은 것뿐이라고!


나의 돌발 행동에 사람들은 어이없어했다. 그들에게 나는 칭찬에 화를 내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캐릭터로 비쳤다.


비록 욕은 먹었지만 내 뜻이라도 제대로 전달했느냐? 하면... 물론 아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사람들은 코끼리만 생각하니까. 내가 부정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는 여전히, 아니 전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효녀로 각인되니까.


그래서 요즘 나는 사람들에 의해 ‘참으로 성격이 이상한, 찐 효녀’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