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히어로 & 악당 (이미지출처:ikunk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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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상에는 일반인이 갖고 있지 못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주변에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이러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껏 우리가 그러한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만큼 그들을 유심히 관찰하지 않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에는 모두가 인정하는 초능력자가 있다. 그는 그러한 능력을 이백 프로 발휘하여 남보다 일찍 임원 계층에 안착하였고 직장 내에서도 확고한 본인만의 자리를 사수하고 있다. 처음엔 나도 그 사람의 능력이 일반인에게는 없는 초능력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분은 영화나 만화에서처럼 하늘을 날며 눈에서 레이저 광선을 발사하는 초능력자가 아니다. 그러나 말 몇 마디로 상대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거침없는 욕설과 눈빛으로 상대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다른 종류의 초능력을 갖고 있다.
한 예로 사내에서 그분에게 호출을 당해 불려 갔다 온 직원들은 하나같이 귀신이라도 보고 온 듯 하루 종일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는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화장실에서 구토를 한다. 또 일부 직원들은 퇴근 전까지 우체통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점심식사도 거른 채 퇴근시간을 기다렸다가 마치 화생방 훈련이 끝나 출구로 뛰쳐 나가는 훈련병 마냥 사무실을 허겁지겁 빠져나가기도 한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행동하는 직원들을 보며 직장상사에게 꾸지람을 듣고 욕을 먹었다고 저렇게까지 유난을 떠나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초능력을 가진 그 ○○○ 상무라는 사람에게 불려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 상무가 나를 불러 다짜고짜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것인지 명확히 얘기를 해주지 않는 것이다. 처음엔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분에게 재차 설명을 부탁드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애매모호하고 두서없는 말 뿐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의 말에 다시금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나도 몰라."
말 그대로였다. 최상위 계층에게 지시를 받을 때부터 그는 그 지시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상위 계층이 두려워 그 지시 내용을 다시 물어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밑에 사람에게 명확하게 지시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명확한 지시도 받지 못한 채 무언가를 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에 놓여버렸다.
나는 주제도 방향도 모른 채 최상위 계층에게 빙의하여 마치 명확한 지시를 받은 것처럼 보고서를 작성했다. 마침내 내가 임의로 정한 주제로 작성된 보고서를 상무에게 가져가니 그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내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여러 주제를 가정해서 보고서를 종류별로 만들면 되겠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하고 연실 웃어댔다. 덕분에 나는 며칠 동안 야근을 하고 주제도 방향도 없는 보고서를 작성해야만 했다. 도착지도 없는 길을 무작정 가는 기분이 들어서 일하는 내내 힘이 나질 않았다.
’아, 이래서 다들...‘ 그때서야 나는 그가 초능력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그가 부를 때마다 다른 직원들과 똑같은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도 하고 그 사람의 어이없는 지시에 마치 입덧하는 임신부처럼 화장실에서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그에게 불려 갔다 온 날에는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건너뛰는 일이 다반사였고 하루 종일 몸에서 열이 났다가 추워졌다가를 반복하다가 퇴근시간이 되면 1초라도 빨리 회사 밖으로 탈출하려 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이렇게 만들 수 있다니 실로 그 사람의 능력은 대단했다.
사람은 누구나 초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초능력은 인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쓰일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영화 속 히어로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초능력을 가진 히어로입니까?
초능력을 가진 악당입니까?